brunch

매거진 사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예신 Mar 31. 2024

어른의 설렘에 관하여

About nostalgia



토요일 늦은 오후 친한 형의 집들이를 위해 석촌에 다녀왔다. 석촌호수 바로 앞에 위치하여 롯데타워가 훤히 보이는 형의 집은 전망이 일품이었다. 평소 산이든 바다든 도시든 너른 전망 자체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본 전망은 브런치에 몇 자 적을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석촌과 잠실을 처음 와본 것도 아니고, 롯데월드타워에 안 가본 것도 아닌데 말이지.

나에게 석촌과 잠실은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은 추억이 새겨져 있는 동네다. 부산에 살던 초등학생 시절 여름 방학이 되면 서울에 살던 외삼촌은 매번 차를 끌고 내려와 나와 동생을 픽업하여 서울에 데려가곤 했다. 서울이란 대도시를 TV로만 접했던 나와 동생에게, 1년에 한번 서울 구경 가는 건 매우 특별한 이벤트였다.


서울 외갓집에 도착해 하룻밤 잔 다음 날 롯데월드에 갔었는데, 전날밤 설렘 때문에 가슴이 콩닥거려 잠을 제대로 못 이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샌 뒤 아침 일찍 일어나 외삼촌과 잠실 롯데월드로 했다.


차량 정체와 인파를 뚫고 롯데월드 출입구에서 입장 대기하고 있을 때부터 느껴지던 엄청난 흥분감이란! 이윽고 입장할 차례가 되어 입구를 통과해 롯데월드 한가운데의 스케이트장, 공중의 풍선비행, 그리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후렌치 레볼루션을 보며 방방 뛰었던 기억 다.

아까 형네 집들이를 마치고, 형네 부부와 인파로 북적이는 석촌호수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저 멀리 자이로드롭과 아틀란티스가 운행하는 게 보였다. 어린 시절 놀이기구를 보며 느꼈던 설렘이 기억 속에서 생생했다. 그러나 그걸 지켜보는 내 심장은 때처럼 콩닥거리 않았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었으나, 마음은 무덤덤했다. 어른의 용어로 말하면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은 것이다.  


웬만한 것들을 다 경험해보았기에 예측 불가능한 것이 거의 없는, 그래서 짜릿함이나 설렘 같은 감정을 느끼기 쉽지 않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약간은 울적해졌다. 왜 남자 성인들은 주식이나 비트코인처럼 예측이 잘 안 되는 것에 탐닉하고, 여자 성인들은 잘생긴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열광하는지 약간은 알 것 같았다. 왜 어른들은 그 모양일 수밖에 없는지, 어른이 되어 보니 비로소 알 것 같다.


어른의 눈으로 본 어른의 설렘이란 그런 점에서 참 슬픈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