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예신 Oct 12. 2024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서 든 생각들

Mulling over HanKang and her writings.

지난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이런저런 감정이 교차했다.

그녀의 수상은, 문학이라는 아름답고도 불투명한 영토에서 어떤 외길을 오래 걸어간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때 한강 작가의 지근거리에서 문학을 탐구했지만, 지금은 그 대척점 어디에선가 둥둥 표류하며 이따금 문학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입장이 되어서인지 더욱 요상한 감정이 들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불확실한 이 세계 속에서 글로 자기 자신과 혹은 세계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때는 나에게도, 문학에 오롯이 투신해보려는 용기가 충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2016년경 같이 문학 공부하던 몇몇 동지와 선배(한강 작가의 후배)들이 한강이라는 선배가 차려준 집밥을 먹거나, 종종 그녀의 차를 타고 귀가했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국문과 시 세미나에서 활동하던 당시, 지금은 평론가가 되신 홍 모 선생님께서 한강 작가의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추천해 주셨는데, 아마 그게 내가 처음 읽은 한강 작가의 책이었던 것 같다.

그 책을 통해 처음 접한 한강의 문장에는, 지금도 적확한 단어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읽기도 여러 번 했다.

2016년 2학기 때였나, 정희모 교수님의 문장 분석 수업 과제로 그 책의 한 챕터를 분석해서 제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난 어느새부턴가 문학으로 남은 나날을 계속 싸워낼 용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등단까지 했음에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내린 평가가 너무나 박했고, 문학이라고 하는 것의 무용함에 대하여 회의감이나 반발심에 시달리기도 했다.

(문학은 무용하기 때문에 억압하지 않고, 그렇기에 유용하다는 고 김현 평론가의 역설적인 해석에 지금은 동의하고 있다)

결국 나는 내가 오래 했던 공부들을 스스로 무용하게 만들어버렸고,

심지어 한때 나의 토대가 되었던 세계를 완벽하게 부정해버린 뒤 다른 세계로 훌쩍 떠나버리고 말겠다는 치기 어린 반발심을 발동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 피드의 상단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다소 엉뚱한 분야의 저자가 되어 버렸다.

나의 울타리를 한참 벗어난, 크립토라는 독특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덕분에 내 인식의 지평이 크게 넓어졌으니 내 선택을 딱히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본질적으로 내 것이 아닌 영토에서 소작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는데, 내 인생을 돌이켜본다면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 같다.  

무용하다고 느낀 것을 떠나 유용해보이는 것들을 선택했지만,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세계조차도 본질적으론 무용하다는 레슨을 얻게 된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추측컨대, 한강 작가가 그녀에겐 가장 유용했을 문학의 영토에서 오래 뿌리 내리며 살았다고 하더라도 무용함회의감을 겪어보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걸어냈고, 글로써 계와 싸워냈기에 이번 수상의 쾌거를 얻은 게 아닐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대 방문기: 학생 좌익운동의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