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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R Dec 19. 2020

4.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 남자는 젊었다.

아마 내 또래이지 않을까 싶었다. 머리는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스스로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얇은 테이프로 눈꺼풀을 고정해 눈을 감겨 놓은 것이었다. 왼쪽에는 캠코더가 매달려 있었다. 계속해서 그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촬영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지난 몇 시간 동안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고르게 숨을 쉬며 잠들어 있을 뿐.


흰 시트 위로 한쪽 팔이 삐죽 나와있었다. 마침 내가 있는 쪽과 가까운 팔이라 잘 보였다. 그의 팔은 매우 건강해 보였다. 오래 누워있던 사람의 팔이 아니었다. 꾸준히 운동을 한 듯 단단해 보였고 무엇보다 피부가 보기 좋을 정도로 그을려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여름까지는 바깥에서 보통 사람처럼 지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무더운 나라로 여행을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파도가 높은 바다를 골라 서핑을 하고 해변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날이 저물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를 마셨을지도 모른다. 그 남자는 그런 여행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었다.


멍하니 그의 팔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빠가 나쁜 꿈을 꾸는 사람처럼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프지 않을 정도로 힘을 주어 아빠의 어깨를 눌러 눕힌 후 다시 앉았다.


2019년 초가을, 다시 돌아온 병원에서의 새벽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던 남자는 옆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이었다.


그 날 새벽엔 이비인후과 병동 앞 의자가 아니라 중환자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 위에 몇 시간 동안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자세를 고쳐 침대 난간에 팔을 올린 후 턱을 괴고 앉았다.


이번 수술 후에는 섬망(譫妄)이 찾아왔다. 섬망이라는 단어는 그날 처음 들어보았다. 의식이 돌아왔다며 잠깐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아빠는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이름이 무엇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된 듯싶었다. 몇 번이나 정맥 라인을 뽑고 침대에서 나가려 해 붕대를 이용해 팔을 묶어둔 상태였다. 전형적인 섬망 증세라고 했다.


구글에서 섬망을 검색해보았다. 몇몇 병원의 의료 정보 게시판 같은 곳에 자세한 설명이 쓰여있었다.

나이가 많은 환자나 큰 수술을 마친 사람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혼돈 증세. 장소와 날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함. 중환자실 환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데, 창문도 시계도 없는 실내에 격리되어 정상적 감각 자극을 박탈 당해 혼돈이 가중되기 때문. 도움이 되는 것은 간접조명과 창문과 시계, 그리고 익숙한 사람이 옆에 있는 것. 돌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구속 장치가 필요할 수 있음. 사람에게는 정말 온갖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싶었다.

게시판 글을 읽어 내려가며 엄마에게 섬망이란 무엇인지 설명해주던 나는 마지막 문장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섬망 증세를 겪는 환자의 40-50%는 1년 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남. 나는 게시판이 띄워져 있던 창을 닫아버렸다.


요컨대 중환자실의 환경은 섬망 증세를 더욱 악화시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섬망 증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었다. 중간에 구속용 장갑이라는 것을 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의료기기 가게에 가서 물어보니 장갑 두 짝을 꺼내 주었다. 구속용 장갑은 벙어리장갑처럼 생겼는데 손바닥 부분에 딱딱한 판이 들어있어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다. 혼자서 벗을 수 없도록 손목 부분도 단단히 묶을 수 있다. 장갑을 사와 간호사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다음 면회시간에 들어가 보니 그 장갑을 낀 아빠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구부려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구부려도 소용없다는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다가 면회시간이 끝나버렸다. 나가려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임무를 전달하는 스파이처럼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가지 말고 그냥 조용히 남아 계세요. 옆에 가족이 있으면 확실히 상태가 안정되는 것 같아서요. 누군가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가져다주었다.


보호자들이 모두 나간 후 나는 슬며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있든 말든 다들 너무 바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면회 시간 외에 중환자실 안에 있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늦은 시간에도 그 안은 대낮보다 밝았다. 간접 조명은커녕 엄청나게 강한 백열등 조명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환자들의 상태나 약물의 이름이나 눈금 같은 것이 잘 보이지 않으면 큰일일 테니까. 일하는 사람들은 집중력을 잃으면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눈을 뜨고 있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모두의 머리 위에 링거액이 몇 팩씩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알 수 없는 의료기기들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알림음이나 경고음 같은 것들이 수시로 울렸다. 의료진들은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여기서 잠이 드는 것이 더 대단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그날 밤 중환자실 안엔 섬망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반대쪽 끝 자리의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는 정말 시원스럽게 욕을 하고 있었다. 너무 직접적인 욕설이라 계속 듣고 있으니 기분 나쁨이 사라질 정도였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쪽도 중간에 보호자를 들어오게 했다. 할아버지의 부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들어와서는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는 그러건 말건 목소리를 높여 욕을 하며 힘있게 침대에서 탈출하려 했다. 거의 침대를 들어올릴 기세였다.


그 할아버지를 보다 보니 아빠도 욕을 좀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오히려 그러면 간호사 선생님께 죄송스럽긴 해도 내 마음은 더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말없이 침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원래 욕을 안 하던 사람이라 그런가. 안 하다가 갑자기 하려면 그건 그것대로 또 어렵겠지.


그나저나 아빠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는 걸까? 만약 삶과 죽음의 경계 같은 것이 있다면 그런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조금 전 열심히 읽었던 섬망에 대한 설명 중 한 부분을 떠올렸다.  


-버틸 수 없는 고통을 겪어 감당하기 힘들 때 나타나기도 한다.


아빠는 너무 큰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그건 대체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나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어 조금 불안해졌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느껴졌는지 아빠는 안정되어갔다. 시간이 좀 더 지나니 움직임이 잦아들었고 얕은 잠에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옆에 와서 잠시 아빠의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안도하며 지나갔다. 나도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


그리고 그때쯤 옆 침대의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

팔을 태워가며 지내던 여름에 그는 자신이 이렇게 누워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우연히 옆 침대에 배정된 50대 중년 남자의 보호자가 자신의 팔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팔은 꼭 죽음과 삶이 얼마나 가까운 것인지에 대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라는 것이 얼마나 얇고 연약한지. 그리고 그 경계에 놓이게 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지.

아니, 애초에 경계가 있다는 말은 틀렸고 차라리 항상 이어져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지.

나는 백열등 아래에서 그 팔을 바라보며 죽음이 그 어느 때보다 나의 가까이에 와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전쯤에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구름다리를 건너 암병동을 통해 반대쪽 큰길로 나왔다.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텅 비어있었다. 잠시 길가에 선 채로 중환자실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며칠 후 다행히 아빠의 증세는 호전되었다. 병원 게시판에서 본 글이 맞았다. 창문이 있는 병실로 옮긴 후에는 섬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읽어주지 않았던 마지막 문장도 결과적으로 맞는 말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그 후 한 해를 채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그날 새벽, 아빠와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던 젊은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삶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의 상태 또한 심각해 보였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또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놀랄 만한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는 하니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토록 얄팍하다면, 죽음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스윽 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매해 여름마다 그 사람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팔을 태우고 있었으면 좋겠다. 2019년에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 하고 사람들에게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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