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in Ducasse Le Chocolat Ganache
*2015. 4. 25에 게시한 글을 수정 및 코멘트를 얹어 재게시하였습니다.
*당시 크래프트라는 표현을 썼는데 매뉴팩처로 정정합니다.
연남동(지금은 성수동) 쁘띠그랑 수희님 덕분에 리뷰하게 된 알랭 뒤카스 르 쇼콜라 가나슈.
알랭 뒤카스는 2013년 살롱 뒤 쇼콜라 파리에 초콜릿을 출품하면서 본격적인 초콜릿 메이커 대열에 합류하였다. 워낙 유명한 셰프니 따로 언급할 필요 없이 자세한 일대기는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영화를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173576
빈투바 초콜릿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에 내추럴 플레이버 콘셉트의 초콜릿을 출시한 것이긴 하나 알랭 뒤카스 초콜릿을 빈투바 카테고리에 넣기는 다소 애매하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알칼리 처리를 거치지 않은 카카오를 그대로 사용하므로 원료 자체는 빈투바라 할 수 있지만, 미국식 크래프트 초콜릿 small batch, bean to bar 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규모 장비가 아닌, 대형 초콜릿 공장에서 쓰이는 뷸러 Bühler 그룹의 장비들이 다수 보이기 때문.
한마디로 재료는 빈투바지만 대량 생산을 위한 대형 장비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매뉴팩처MANUFACTURE 라는 표현을 패키지 전면에 새긴 것으로 보인다.
크래프트지에 유광 금박을 넣으니 꽤나 고급스러워 보인다. 당시에는 드물었으나 최근에는 분야 상관없이 많이 보이는 조합이다.
매뉴팩처는 19세기 초에는 수공업자들을 모아 각자의 능력에 맞게 일을 맡기는 분업형 제조 형태의 초콜릿을 의미하였으나, 현대에는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형 초콜릿을 의미한다. 커버추어, 컨펙셔너리 초콜릿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크래프트지 바닥에 폴리에틸렌 레인으로 구분을 두어 비교적 가지런하게 배열된 것을 볼 수 있다. 일반 가나슈 초콜릿 패키지는 상자 안에 빼곡하게 채워 넣어 서로 간의 이탈을 막는 형태가 대부분인 것과 비교된다.
가나슈 각각의 느낌을 정리하기보다는 전체적 느낌을 총평하는 것으로 본 포스팅을 정리할까 한다.
알랭 뒤카스 르 쇼콜라 가나슈를 맛보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 초콜릿이 대중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초콜릿일까? 하는 것이었다. 분명 야생적인 향이 다채롭고 복잡하다는 것은 대중성을 대놓고 포기한 부분이다.
가나슈 초콜릿 각각의 이름은 사용된 재료의 메인 플레이버 flavor 로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알랭 뒤카스 가나슈는 이름을 알고 맛을 보는데도, 그 특징을 쉽게 캐치하기 상당히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향이 많이 느껴진다.
좋게 표현하자면 복합적인 플레이버가 다채롭게 발현된 것이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이취(異臭)의 간섭이 심해 플레이버에 대한 학습이 없는 상태에서는 불쾌취(不快臭, offensive flavor)로도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야생적인 플레이버가 느껴지는 가나슈 초콜릿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시도이자 알랭 뒤카스만의 개성을 표현하기엔 충분해 보이지만, 오히려 가나슈의 메인 재료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단점 또한 갖고 있다는 것은 과연 바bar 형태를 벗어난 한 입 크기의 가나슈/프랄린 초콜릿에 적합한지는 대중이 판단할 몫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빈투바 초콜릿이 예전에 비해 업체도 많아지고 상품군도 다양해져서 크래프트 초콜릿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은 분명해 보인다.
크래프트 초콜릿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인공 감미료 무첨가 및 무알칼리 처리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알칼리 처리가 된 초콜릿들은 마치 다 나쁜 초콜릿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커버추어 초콜릿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제나 향이 정확하고 일정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향미와 가나슈의 재료와 완벽한 궁합을 위해서라도 늘 같은 향을 유지할 수 있는 일관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러한 일관성을 제공하는 것이 커버추어 초콜릿의 최대 장점이다. 쇼콜라티에 또한 정확한 맛과 향미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커버추어를 선호하는 것이다.
음식 브랜드의 영속성을 위한 가장 절대적으로 차지하는 요인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맛'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와인처럼 빈티지 개념이 반영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향미를 즐기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물리적 장치만으로 일관성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디저트로서의 초콜릿은 과일처럼 단맛과 신맛의 적절한 조화, 그리고 가능하면 우아한 향미와 풍부한 질감을 선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대부분의 다른 디저트에서도 기대하는 요소들은 이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로지 기분 좋은 달콤함으로 승부하는 디저트에서 가공되지 않은 야생적인 풍미가 느껴진다면 그것이 과연 디저트라 부르기 어렵지 않을까? 디저트 자체는 재료 가공의 정점에 해당하는 기술을 선보이는 요리라는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빈투바를 포함하여 알랭 뒤카스의 가나슈는, 고급 초콜릿을 이해한 소수만이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식가를 위한 고급 시장이 형성된 분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향미 관점에서 정점에 해당하는 고급 초콜릿인 빈투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레이버를 이해하는 선행 학습 과정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단계적 경험을 거쳐 초콜릿에 대한 스펙트럼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알랭 뒤카스의 초콜릿은 정말 색다르고 또 한 번의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