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초콜릿 테이스팅과 감각의 훈련
초콜릿은 단순히 단맛을 즐기는 간식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초콜릿은 와인, 커피, 차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고도의 향미 세계를 품고 있다. 카카오 품종에 따라 전혀 다른 플레이버를 지니며, 발효는 산미와 바디감을, 로스팅은 향의 스펙트럼을, 정제와 배합은 텍스처와 균형을 결정한다. 한 조각의 초콜릿 속에는 생산지의 토양, 기후, 발효 방식, 제조 기술이 응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콜릿을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단맛을 즐기는 일이 아니라, 카카오가 걸어온 여정을 감각으로 되새기는 행위다.
초콜릿 테이스팅은 곧 감각을 사회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이다. 초심자는 단맛과 쓴맛만 인식하지만, 훈련된 미각은 자스민, 베리, 허브, 토양, 너티함, 시트러스 같은 세밀한 차이를 포착한다. 예컨대 가나산 카카오는 흑차와 흡사한 흙내음과 묵직한 바디감을, 마다가스카르산 카카오는 라즈베리와 같은 산뜻한 산미를, 에콰도르산 카카오는 꽃향기와 캐러멜 같은 부드러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감각만으로는 오래 남지 않는다. 향미는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언어로 붙잡아야 한다. ‘꽃향기가 난다’라는 막연한 표현 대신 ‘은은한 라벤더 향이 스친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말할 때, 비로소 취향은 교양으로 전환된다.
테이스팅은 단계적인 과정이다.
1. 먼저 눈으로 표면의 윤기를 관찰하여 전체적으로 표면이 얼룩 없이 균일하고 일정한 색상이면서 반짝거리는 광택을 보이는지 확인한다. 템퍼링이 제대로 된 초콜릿일수록 광택이 살아있다.
2. 초콜릿의 표면을 손끝으로 만져보아 거친 입자가 느껴지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카카오 버터보다 녹는 점이 높은 식물성 대체 유지를 사용한 초콜릿은 체온으로 잘 녹지 않는다.
3. 초콜릿을 부러뜨려 경쾌한 소리가 나는지 여부와 스냅성으로 경도를 체크한다. 무른 느낌이 든다면 상온에서 장시간 노출 되었거나 유화제를 과도하게 사용하였을 확률이 높다. 카카오빈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수분을 초콜릿 제조 시 로스팅과 콘칭을 통해 충분히 제거해야 높은 경도의 초콜릿을 얻을 수 있다.
4. 초콜릿을 맛보는 첫 번째 과정은 입 안에 넣기 전에 일단 고유의 향을 후각(嗅覺)으로 즐기며 1차적인 노트를 기록하는 것이다. 서늘한 상태에서 보관 중이었다면 실내 온도가 18~20℃인 장소에서 10~20분 정도 방치시켜 초콜릿 향이 충분히 발현되도록 한다.
5. 천천히 한 조각을 혀 위에 올려놓는다. 입안에서 서서히 녹이는 동안 단맛, 산미, 쓴맛의 균형을 느끼고, 뒷맛에서 남는 여운을 음미한다. 입천장에 남는 카카오버터의 질감, 혀끝을 스치는 미세한 산미, 목 뒤로 번지는 카카오의 깊이는 모두 집중과 언어를 통해서만 온전히 포착된다.
<자료제공 : Lindt>
이런 과정을 거치며 테이스팅은 단순한 미각 경험이 아닌, 시각·청각·촉각까지 동원하는 종합적 감각 훈련으로 확장된다. 이 훈련은 단순히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감각을 의식적으로 훈련할 때 비로소 아비투스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문가 집단, 교육 제도, 미디어 담론이 감각을 명명하고 위계화하며, 그 틀 속에서 개인의 미각이 교양으로 인정된다. 테이스팅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며,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과정은 곧 교양적 훈련이자 합법적 취향을 승인받는 사회적 절차다.
와인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식탁이 다르듯, 초콜릿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소비 방식은 달라진다. 전자는 취향을 선택의 근거로 삼지만, 후자는 단순히 가격이나 브랜드만을 기준으로 소비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초콜릿이 ‘간식’이나 ‘선물용’으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의례적 소비는 활발하지만, 초콜릿을 테이스팅하며 취향을 기록하고 교양의 일부로 즐기는 문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일상적으로 다크 초콜릿을 조금씩 맛보며, 브랜드와 산지, 스타일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미각의 차이가 아니라, 소비를 교양으로 끌어올리는 사회적 아비투스의 차이를 보여준다.
결국 초콜릿 테이스팅은 단순히 입으로 먹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뇌로 해석하고, 언어로 붙잡으며, 다른 이와 공유하는 교양적 훈련이다. 초콜릿이 입안에서 서서히 녹아 펼쳐지는 카카오의 쌉싸래함, 바닐라의 은은함, 로스팅된 향의 깊이까지 모든 감각을 집중해야만 비로소 맛볼 수 있다. 초콜릿은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간식에서 교양의 매개체로, 기호품에서 아비투스로 승격된다. 그리고 이 훈련을 지속하는 순간, 초콜릿은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