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ading Lady May 18. 2020

우리 사랑, 지금이 리즈

네가 할머니가 되어도 네 살 너의 귀여움에 대해 얘기할 것 같아.

나의 첫째딸 소율이는 엄마를 제일 좋아한다. 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소율이의 마음속 1위 자리를 빼앗겨본 적이 없다. 놀 때는 아빠랑도 할머니랑도 심지어 도우미 이모님이랑도 잘 놀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이를테면 잠잘 때나 아플 때 힘들 때면 결국 엄마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해달라는 걸 다 해주는 오냐오냐 타입의 엄마는 전혀 아니다. "아빠보다 엄마가 좋지?"라며 아이의 애정을 시험하거나 갈구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에게 하지 말라는 것도 가장 많고 혼내기도 제일 많이 하는 엄마를 신기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그냥 내가 엄마라서.

나는 소율이의 사랑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사랑에는 이제까지 아주 작은 일말의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소율이는 항상 엄마의 관심에 안정을 찾았고, 엄마가 아픈 것에 마음아파했고, 엄마가 다른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엄마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예쁘다고 쓰다듬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선에서 본인의 사랑을 마음껏 말한다. 가끔 엄마가 자기 말을 안 들어줘서 삐치더라도, 혹은 사정상 잠깐 떨어져 있게 되더라도, 나는 소율이가 결국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을 것을 안다. 이는 정녕 연애하면서도 쉽사리 느껴보지 못한 두터운 신뢰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엄마만 찾는 껌딱지라 힘들다고 불평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 경험이 쌓이고 쌓이자 나는 참 단단해졌다. 이제는 그것이 실제로 나의 자존감을 강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경험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엄마가 되어 강해지는 이유는 책임감 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사랑을 받기 때문이구나. 어쩌면 나는 내가 주는 것보다도 더 많이 받고 있구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이 사랑은 언젠가 변해버릴 걸 안다는 거다. 아이가 지금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만큼이나 나중에 나보다 친구나 남자친구를 더 사랑하게 될 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쉬워서 꼭 부여잡고 싶다. 정말,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해 두고 싶은 우리의 사랑. 매일매일 흘러 넘치는 달달한 에피소드. 심지어 아침에 너무 사랑스런 일이 생겨서 꼭 글로 써 놓으리라 생각하고 저녁에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그 사이 새로이 생긴 에피소드들 때문에 까먹어 버려 글로 남기기에 실패하는 나날들. 아마 내 인생에 이런 날이 다시 없으리라 느껴지는 그런 행복한 시간을 산다.

지금, 우리 사랑의 리즈 시절이다.



라이스페이퍼 한 장으로 모자를 만들었다가 안경을, 마스크를, 스카프를 만들며 까르르.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감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