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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us Oct 26. 2023

생일 = 기프티콘 주고받는 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선물함에 기프티콘이 몇 개나 있을지 궁금하다.

더불어 1년에 주고받는 기프티콘이 얼마나 될지 한번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다.


1년 전 까지도 내 카카오톡 선물함 안에는 쌓여있는 기프티콘이 꽤나 많이 있었다. 치킨, 피자, 커피, 등등.

개인적으로는 존재자체를 잊고 살다가 유효기간 연장알림이 와서 인지했던 적도 많이 있다.

내 취향이 아닌 것들도 있었고 배달 주문 때는 사용하기 퍽이나 번거롭기 때문에 미뤄뒀던 것들도 있었던 것 같다. 보통 생일선물이나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개념이라 실물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구태여 확인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는 환불이라는 방법이 마음에 걸려 하지 못했다.


현시점 나의 선물함에는 조금은 계륵 같았던 기프티콘이 하나도 없다.

평소보다 사용량을 늘렸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주된 이유는 더 이상 기프티콘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 결정의 계기는 문득 느꼈던 기프티콘 주고받기의 덧없음이었다. 물론 진심 어린 생일축하나 주고받는 마음 자체가 무상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생일마다 기계적으로 전송되고 수신되는 기프티콘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는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어떤 치킨을 좋아하더라? 이 피자 가게가 집 근처에 있으려나? 하는 고민부터가 내일 써야 할 체력을 일부 끌어다 쓰는 느낌이었다. 받을 때도 자주 이용하는 품목이 아닐 경우 작게나마 느껴지는 무언가가 마음 한 편에 뭉쳐 든다.


내 가족, 친구, 지인인데 고작 기프티콘 보내주는 게 피곤해? 나름 신경 써서 보내준 걸 애물단지라고 여기는 거야?라고 하실 수 있다. 맞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때로는 내가 말하고 있는 다소 효율적이지 못한 행동이 인간관계 유지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도 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써 내려가 보고 싶다.

나 또한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축하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기프티콘을 많이 활용했다. 보내주고 상대방이 좋아하면 나도 뿌듯했고 받았을 때는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구나를 느끼며 흐뭇하기도 했다.

30대가 넘어가며 맞이하는 복합적인 요소들로 긍정적인 감정을 주던 행동에도 염증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인간관계에서 작은 부담을 덜어내고 싶은 내적 아우성이었을까. 기프티콘 주고받기를 끊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나이가 먹어감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해두고 싶다.


내 생일은 2월이다. 몇몇 1월 생을 제외하면 생일이 빠른 편이라 보통은 내가 먼저 기프티콘을 받게 된다.

내가 받아놓고 주지 않는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은 될 수 없다.

내 생일에 기프티콘을 받지 않아야 이 굴레에서 벗어나 1년에 한 번씩 서로 생길 수 있는 약간의 부담을 던져 버릴 수 있다.

가장 빠른 방법은 모든 가족, 친구, 지인에게 생일 전부터 아무것도 보내지 말아 달라고 광고하는 것. 하지만 바보 같은 방법임이 분명하다.

조금은 길게 보는 편이 낫겠다. 일단은 받고 같은 해 상대방의 생일에 내가 축하와 함께 마지막 기프티콘을 주고 대화의 마지막에 말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어쩌면 끊어내기를 진행하던 1년간은 내 생일이 잊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대화의 종말에 기프티콘은 이제 주고받지 말자는 문장을 꺼내게 되면 상대는 나와 관계를 끊고 싶은 건가? 조금은 기분 나쁘게 또는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감정소모를 해야 하는 인간관계는 거의 다 정리가 되었지만 아무리 친해도 자칫 무례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싫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사람들의 성격에 맞춰 핑퐁게임을 끝내갔다.

1년간의 프로젝트. 마일스톤을 옮길 때마다 마음의 짐이 100그램씩은 덜어진 것 같았다.


생각보다는 모두 흔쾌히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받아쳐서 내가 너무 소심했던 건지 상대방도 내심 끊어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올해는 의도했던 것처럼 기프티콘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축하 메시지는 기프티콘이 빠지며 생긴 공간에 더 밀도 있게 채워졌다.

"생일 축하해", "맛있게 먹어", "고마워" 대부분 짧게 끝내던 방식에서 작게나마 더 신선한 생일 축하메시지나 전화 통화를 하며 치킨에 맥주 한잔 하자 하며 오히려 대화가 길어지고 만날 구실을 더 찾게 되는 좋은 경험이 없다.

기프티콘이라는 게 자주 보는 관계에서도 물론 주고받지만 내 경우에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자주 볼 수 없는 관계에서 우리 자주 볼 수 없지만 너에 대한 마음은 아직 이만큼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도 있었다.

기프티콘 주고받기라는 100그램의 부담을 줄인 만큼 100그램의 센스를 담아 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굴 보며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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