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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us Oct 29. 2023

우리 집 옆 요양원

피어난 미움이 이해로 질 때

7년쯤 됐을까 우리 집 옆에 있던 주택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 집보다 높게 지어지는 바람에 트여있던 시야가 가려져 아쉬웠다. 건물이 모두 지어지고 그저 또 들어서는 빌라라고 생각했던 건물은 요양원이었다. 내게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많고 치매에 걸리신 분들이 계셔서 가끔은 큰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매일 있는 일도 아니고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 요양원 옆에 사는데 몇 년이고 큰 지장은 없었다.  


작년 초여름 즈음. 할머니 한분이 낮시간 깨어있으신 동안에는 계속해서 큰소리를 지르시고 요양보호사 분들을 부르셨다. "아줌마! 이리 와봐", "언니", "이봐요" 부르는 호칭도 다양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하며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 더 많이 듣게 된 것도 있다.

낮시간이었고 이제 곧 여름이라 에어컨을 틀면 창문을 서로 닫을 테니 들리지 않을 소리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가을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 할머니는 우리 집 창문 쪽에서 멀리 이동했는지 조용하셨다.


2023년 올해 봄부터 다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그 할머니는 아닌 것 같지만 달리 확인할 길은 없었고 확인할 이유도 없었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이 주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일이 바빠지고 코로나세력이 약화하며 출근하는 일도 늘어나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체력의 문제였을 까 새벽시간 때도 들려오는 고성에 종종 잠도 깨고 듣기 썩 좋지 않은 화내는 소리로 아침을 맞이하니 죽을 맛이었다.

같은 패턴의 짧은 문장을 반복하시는 탓에 더 예민해지는 나였다.


하지만 요양원에 찾아가 창문들 닫으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기엔 아픈 사람인데 어쩔 수 있겠나 싶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많이 더워지기 전까지 즐길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을 포기하고 우리 집 창문을 싹 다 닫고 지내기엔 너무 답답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한동안 갇혀 있었다.


매일 마음 안에서 양가감정이 들었다. 내 권리도 주장 못하는 바보 같은 내게 화가 나는 반면 아픈 게 죄도 아닌데 그리고 일하시는 분들은 오죽할까 하는 마음 약해지게 하는 생각들.


주택에 살다 보니 층간 소음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왜 그렇게 뉴스에 소음 관련 사건, 사고가 많은지 감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적응 아닌 적응을 해가며 시간이 지났다.

무더위가 저 멀리 다가온다. 한 달 정도 후면 창문 다 닫고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얼굴 한 번 못 본 고성만 지르던 할머니. 어쩌면 미웠던 옆집 요양원 할머니가 다른 말을 계속 외치신다.

 ’또 시작이시네 ‘ 하며 한숨을 쉬던 나는 괜스레 마음이 뭉글해짐을 느꼈다.


“우리 엄마 이말자(가명)” “우리 엄마 이말자” “우리 엄마 이말자예요”

요양보호사 분이 근처에 오시는 때면 조금은 자랑하듯 웃는 투로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할머니.


나이가 먹어도, 정신이 쇠해지며 흐려지는 중에도 엄마는 잊지 못하는구나. 그립고 보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사무치는구나.

소음 때문에 피어났던 미움은 연민으로 그리고 더 큰 이해로 지고 말았다. (내가 감히 연민이라는 단어를 써도 될지 모르겠다.)


겪어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아파트 층간 소음도 윗집에서 사정상 미안하다고 하며 먼저 양해를 구하면 아랫집에서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스트레스도 덜 하다고 알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의도치 않은 단방향 소통이었지만

내 마음 어딘가는 요양원 창틀 너머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도 할머니의 엄마이름 소개는 계속되었고 여전히 쉽게 적응되지 않는 고성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는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조용하신 날에는 궁금했고 다시 시작되는 날에는 아직 건강하시네 생각할 정도였으니.


최근에는 날이 쌀쌀해지며 창문을 닫아놓고 지내다 보니 요양원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년 봄에 창문을 열었을 때. 다시 건강한 외침을 듣게 된다면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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