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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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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Mar 03. 2021

마흔에 비혼으로 산다는건

끊임없는 질문에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하는 것

며칠 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지인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잘 살고 있냐는 가벼운 안부와 함께 어김없는 물음이 시작됐다. 


"그래 좋은 소식은 없고?" 

"만나는 남자는 있어?" 

"그래, 그래도 연애는 해라" 


그동안 나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충분히 알렸기에 마흔이 되면, 이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 안부인사로 결혼 유무를 물어보는 이들이 종종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을 찾는다면,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한다'는 설득의 과정이 '밥은 먹고 다니냐?' 정도의 그저 그런 안부인사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있어 불편한 안부 인사다. 


처음부터 비혼 주의는 아니었다. 한창 연애를 즐길 스무 살, 서른 살에 연애나 결혼보다 우선시되는 일이 많았다. 자기애가 강한 성격 탓에 주변에 큰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보이지 않는 감정의 미묘함을 조율하는 연애보다 노력한 만큼 확실한 성과가 되어 돌아오는 '일' 이 더 화끈하고 흥미로웠다. 그러다 보니, 설령 호감을 갖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얼마 못가 시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이유는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결혼한 지인들의 모습이 내 기준에서는 그닥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결혼 후, 연락이 뜸해지는 건 비일비재였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도 남편, 시댁, 아이의 이야기뿐이었다. 본인의 취향과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고, 이 모든 일들은 '너도 결혼해봐.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라는 말로 인해 대단한 일로 포장되어버렸다. 


결정적으로 내가 삼십 대에 그냥 비혼으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꽤 나름 멋진 인생을 살던 지인들이 결혼으로 인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결혼이란 게 꼭 필요한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소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모든 관심사가 결혼으로 쏠렸다. 마치 이 결혼이란 레이스에서 절대 도태되면 안 되는 생각에 경쟁하듯 결혼을 얘기했다. 그 과정 속에서 지인들은 '결혼'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나를 질책했고,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실망했고, 서운했다. 그러면서 점차 '결혼'이란 사회적 규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이혼 부케라는 불리는 조금은 슬프고 황당한 이야기다. 나를 포함한 중학교 친구 3명이 있는데, 서로의 가정사도 스스럼없이 얘기할 만큼 꽤 친한 사이다. 이 중, 한 친구가 20대 중반에 결혼을 하게 됐고, 당시 남자 친구가 있던 또 다른 친구에게 부케를 주었다. 그리고 5년 뒤, 먼저 결혼했던 친구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혼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2년 후, 부케를 받았던 친구가 결혼을 했고, 그 친구의 부케를 우여곡절 끝에 내가 받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두 번째 친구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혼을 했다. 받은 부케 말려서 결혼한 친구 선물해주면 오래 산다는 말에 유리병에 이쁘게 담아두었는, 결국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버려졌다. 우리끼리는 이혼 부케의 저주(?)라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는데, 이혼 부케는 핑계일 뿐, 이 친구들을 비롯해 유달리 주변에 돌싱들이 많다 보니, 결혼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게 있다. 


이렇게 이런저런 사연과 생각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은 남의 일이 되어버렸고, 비혼 주의가 되었다.


기혼자들이 볼 때 지금의 나의 모습이 나름 편해 보이거나, 영글지 않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일상의 흥미와 재미, 역경과 고난을 스스로 발견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기에 비혼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원동력도 생기고, 나름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흔이 된 지금,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은 없다. 아직도 결혼보다는 더 중요시되는 일이 있을뿐더러, 주변의 관심보다 개인의 삶의 행복에 더 관심이 많다. 단, 한 가지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설픈 사회적 위치와 삶의 가치관이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지금 나의 비혼의 삶이 썩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외로워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결혼해",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가 걱정이야"라는 위로로 위장된 어설픈 말들로 내 삶의 가치관을 흔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척, 위로하는 척하며 물어오는 결혼 안부 인사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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