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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Apr 17. 2022

젖은 신발, 차가운 손, 그날의 아쉬움이 시작이었다.

2011년 겨울, 쉴 새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뉴욕 센트럴파크를 하염없이 걸었다. 발목 위까지 쌓이는 눈과 질퍽이는 거리로 인해 어느새 신발은 다 젖어버렸다. 낭만이 점차 고난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디든 들어가 몸을 녹였으면 좋겠는데, 어째 내 시야엔 온통 눈 덮인 공원뿐이었다.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미로 속에 갇혀 몸도, 머리도, 마음도 얼어버렸다. 


지난, 2008년 겨울, 2박 3일 현지 패키지여행으로 반나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방문한 이래, 나한테 뉴욕은 아쉬운 도시였다. 분명 뉴욕을 갔다 온 것 같은데, 아무런 추억이 없는... 무척이나 아쉽고 그리운 도시였다. 그래서 꼭 다시 방문해 뉴욕의 감성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는데, 하필 강추위 속 폭설과 함께 찾아온 거다. 


처음엔 모든 게 좋았다. 눈보라 치는 추위도 시크한 도시 분위기에 어울리는 매서움이라고 생각했다.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보고, 타임스퀘어도 가보고, 록펠러센터도 가고... 짧은 휴가로 온만큼 최대한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기고 싶었다. 맑은 날씨가 여행의 국룰이라고 하지만, 눈 내리는 뉴욕의 겨울을 느껴보는 것도 특별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눈 덮인 센트럴파크에 들어 선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메트로폴리탄을 가야 하는데, 이왕이면 센트럴파크를 지나 겨울 낭만을 느끼며 가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당시 공원 크기에 대한 감도 없었던 터라, 가벼운 산책 정도라 생각하며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갇혀버렸다. 


질퍽이는 거리로 신발은 다 젖어버렸고, 발가락은 꽁꽁 얼어버렸다. 머릿속은 온통 어디든 들어가 몸을 녹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거리 악사의 연주가 들렸지만, 나에게 그 모든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어디든 들어가야 한다는 집념으로 공원 이곳저곳을 헤매다 드디어 카페 한 곳을 발견했고, 헐레벌떡 들어갔다. 


"내가 꿈꾸던 뉴욕은 이게 아닌데...."


섹스 앤 더 시티 속 이야기처럼 럭셔리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크함 속의 숨겨진 러블리한 매력은 느낄 수 있는 여행이 되길 바랬는데, 뜻하지 않는 생존 게임을 하게 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정신없이 주문한 따뜻한 커피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힘겹게 맨탈을 다시 잡아가던 순간, 창 밖에 보이는 어느 연인의 여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꽤 유명한 센트럴파크 레스토랑이었다.)



쓸쓸함, 외로움, 아쉬움, 부러움, 따뜻함..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창 너머 바라보던 어느 가족의 행복한 저녁식사 바라보면 느꼈던 그 외로움과 쓸쓸함, 부러움과 아쉬움 등의 감정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의 꿈의 도시였던 뉴욕이었는데, 이곳에 대한 기억이 고생과 아쉬움으로만 남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 순간 막연하게 결심했던 것 같다. 


"뉴욕에 다시 와서, 꼭 기필코 4계절을 경험하리라."


일주일 남짓의 짧은 시간을 보내기엔 아쉬운 도시임이 분명하니, 꼭 날 좋은 어느 날 이곳을 다시 찾아 화창한 날부터 궂은 날씨까지.. 일상을 보내다 가리라!! 고 생각했다. 그리고 3년 뒤, 2015년 한여름 나는 뉴욕을 다시 찾았다. 다시 찾은 뉴욕은, 그동안의 아쉬움을 달래주듯 나에게 여유로운 일상을 선물해줬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보내며, 절대 서두르지 않고, 하루에 하나씩, 정신없이 복잡한 공간에서 느끼는 일상의 여유로움..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그때 그 시절의 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나둘씩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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