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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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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Jun 01. 2022

덕업일체의 삶, 좋지만은 않습니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언제까지 공존할 수 있을까?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하는 게 아니래요. 나중엔 그 일이 싫어진데요."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와니에게 영민이 건넨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면 좋은 거 아닌가? 근데 왜 싫어진다는 거지?'.

당시, 명확한 꿈이 있던 나로선 공감할 수 없는 대사였다. 그냥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변명이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공감할 수 없었던 저 말의 의미를 조금은 깨닫고 있다.


무슨 계기로, 어떤 매력에 빠져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학창 시절부터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다. 꿈의 여정길이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탈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덕업일체의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마냥 행복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만들어 가는 순간들이 즐거웠다. 어려운 프로젝트로 인해 야근과 철야가 매일같이 반복될 때도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로 마무리되었을 때 느껴지는 홀가분함과 짜릿함은 그간의 힘듬을 한 순간에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그 매력에 중독되어 수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최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  일을 계속할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잦아졌다. 건망진 이야길  있겠지만, 나름 해볼만큼 해봤고, 올라갈 만큼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많은 일을  수도,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나에게 어떠한 즐거움과 행복을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의 짜증과 힘듬을 이겨내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느껴지는  짜릿함과 성취감에 여전히 취하긴 하지만,   짜릿함의 화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지겹다'는 말을 자주 달고 산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길이 지겹고, 쉬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가 지겹다.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내가 지겹고, 클라이언트만 달라졌지, 결국 유사한 업무들을 하고 있는 상황이 지겨워졌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과 재미가 지겨움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었다.


연애도 오래 하면 지겹지 않은가? 덕업일체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같다. 어떻게 매일 일이 즐겁고 신나기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직업이 되어버린 순간 생계수단이 되어버렸고, 지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잠시 떠나려고 해도, 더없이  용기를 필요로 하다 보니, 점점  싫증 나는  아닌가 싶다.  옛날 영화  영민이 와니에게 했던 "좋아하는 일이 나중에 싫어진다" 말처럼 말이다.


최근 배우 윤여정님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칠십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고, 그에 따른 성과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때, 지금의 이 일을 감사하면 할 수 있을까? '정년'이라는 게 있는 직업이니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진 않겠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칠십이란 나이에도 이 일을 즐겁게 생각하고 감사하며 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해방되고 싶어, 꿈틀거리고 있는 지금의 내가 말이다.  그 나이가 되었을 때도 무언가를 행복하게 하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덕업일체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지만, 앞으로도 덕업일체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굴하고 현재의 내가 바라는 건, 지금의 일이 더 싫어지기 전에, 그나마 미세하게나마 내 몸에 남아있는 순간의 짜릿함이 다 사라지기 전에, 신세한탄 그만하고 계획하던 일들을 빨리 시작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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