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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의별짓 Jul 22. 2023

발리에 가거든 요가를 해라!

발리행 티켓 발권에  걸린 시간 약 48시간. 순식간이었다.


'발리 같이 갈래요?'

밀려드는 업무로 지친 내게 한줄기 빛처럼 쏟아진 선배의 말에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Yes를 외쳤다. 그 당시 나의 상태로는 누구랑 가든,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출발 한 달 전, 갑작스러운 합류였지만 다행히 여행메이트들은 나를 스스럼없이 받아주었다. 늦게 합류한 만큼 발리에 대한 지식이 없던 나는 일행 따라 정해진 루틴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솔직히 계획 짤 여력도 없었다. 평소 혼자 즉흥여행을 즐겨했던 터라, 여럿이 가는 여행은 오랜만이었다. 덕분에 낯선 땅에서 구글맵 한 번을 켜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멍 때리는 기분. 실로 오랜만에 느꼈다.


도착 첫날. 며칠 늦게 합류한 나를 위해 준비했다면, 일행들은 우붓에서 꽤 유명한 요가반에 데려갔다. '웬 요가?' 했지만, 발리에서 요가는 한번 해봐야 한다며 일행들은 앞장서서 숙소를 나섰다.


어리둥절 따라나서 요가반. 울창한 정원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방이 탁 틔인 크고, 작은 공간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요가를 한단다. 거울로 사방이 둘러싼 건물 안을 생각했는데, 하늘, 나무, 바람을 느끼며 하는 요가라니.. 꽤 낭만 있겠다 싶었다. 



저녁 8시. 우리는 커다란 돔 안으로 들어갔다. 야외수업을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어두침침한 불빛과 코 깊숙한 곳을 자극하는 향내음 모두 낯설었다. 


'댕~.'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선생님의 이런저런 넋두리가 시작됐다. 무슨 말을 저리도 하나 싶었는데, 원래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동작을 수행하며, 몸 이곳저곳을 늘리기 시작했다. 뻣뻣하기로 소문난 몸인데, 늘리고 늘리는 동작을 따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도 많으니까 대충 해도 별로 티 안 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나 다들 요가를 잘하는지, 오히려 뻣뻣한 내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다니며 수강생들의 자세를 잡아주던 선생님은 어느새 낑낑대는 내 옆으로 다가와 손으로 몸을 누르기 시작했다. '헉!' 굳어진 몸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 어서 이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했다. 


한 번이면 족하다 생각했다. 탁 틔인 야외수업이 궁금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낯선 땅에서 이색체험 제대로 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요가에 진심이었던 일행들은 이틑 날, 다른 요가 수업을 찾아 나섰다. 이번엔 알체미 요가 하우스다.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그때 깨달았다. '발리 요가하우스는 넓은 정원이 필수구나'. 이곳은 요가반 보다 조금 더 모던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정원 사이 보이는 오두막 텐트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가지런히 놓인 요가매트가 우릴 반겼다. 텐트 사이로 보이는 꽃과 나무, 그리고 때마침 내리는 빗소리는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이날의 수업은 어제보다 조금 더 액티비티 한 동작들이 많았다. 릴랙스 요가도 따라 하기 힘들었는데, 몸을 더 비틀어야 하는 이날의 수업은 진짜 더 따라가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 난 동작을 따라 할 생각을 버리고 그냥 가만히 앉아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차피 요가는 마음 수련인 것을, 마음을 비우는 평안 해졌다. 


우붓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요가반도 가봤고, 야외 요가라는 색다른 체험도 해봤으니, 충분하다 생각했다. 평소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던 내게 이만하면 충분했다. 하지만 다음날, 난 일행과 함께 우붓 시내에 위치한 래디언틀리 얼라이브에 도착해 있었다. 솔직히 이날, 나의 멘탈은 살짝 나가있었다. 열정적으로 동작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뒤로 한채, 마음 수련에 집중했다. 모두들 어찌나 동작을 잘 수행을 하는지, 그 공간에서 나는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3일 연속된 요가 수업.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 메이트들이 발리 여행을 계획한 첫 번째 목적 중 하나가 요가 때문이었다고 한다. 계획 짤 때 집중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고,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나의 안일함이 만든 결과였다. 


우붓을 떠나는 다음 날 아침, 일행들은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인만큼 선라이즈 요가를 하겠다며 숙소를 나섰고, 나는 결국 Give up을 외쳤다. "다녀와요. 난 그냥 숙소 근처 카페에서 좀 쉴게요"


발리 다녀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도 우리는 종종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나눈다. 다들 이제와 하는 얘기라며, 우붓에 머물던 4일 내내 요가를 갈거라 생각하진 않았다고 한다. 찾아 놓은 요가 클래스 중, 2개면 충분했다고 한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열심히 했다며, 서로에게 핀잔 섞인 웃음을 내비친다. 아마도 그 당시, 살짝 긴장된 관계가 만들어 낸 성실함 같은 거였나 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우붓에서 경험한 요가 클래스는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긴 했다. 특히 알체미 요가 수업 때 들었던 빗소리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절대 혼자 여행을 했다면, 경험하지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다신 없을 여행소재긴 하다. 이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발리 하면 요가가 가장 먼저 생각나고, 그걸 함께 했던 여행 메이트를 생각할 때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발리 여행 이후, 주변에서 발리에 대해 묻는다면, 꼭 요가를 한번 경험해 보라고 말한다. 그들의 웰니스 문화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니, 동작을 잘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그곳에서 함께 숨 쉬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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