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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수 Aug 28. 2024

셋째 고양이 뚱이 배탈사건

그래, 조그만 너도 나와 같은 생명체구나

글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내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여덟 마리 고양이 중 셋째 뚱이가 거실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워낙 엉뚱한 성격이라 ‘쟨 또 왜 저러나’ 하고 그저 있었지.


그런데 얘가 마치 사람이 내는 가성처럼 “아아! 와아아”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우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아주 잠시 조용하더니, 후다닥 뛰어가는 발소리.


수상함을 감지하고 나가봤더니, 맙소사! 이 녀석이 화장실을 코 앞에 두고, 거실 한가운데에다가 묽은 응가를 한가득 저질러 놓은 것이다. 아주 경악을 금치 못하며 뚱이를 불렀다. “뚱이야 너어~!” 그 소리에 뚱이는 바쁜 발소리를 내며 구석진 어딘가로 흔적도 없이 숨어들었다.


코를 쥐며 바닥을 닦아내고, 탈취제를 뿌린 뒤 다시 작업을 하는데, 이건 도무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그날저녁. 엄마와 얘기를 나누다가 뚱이가 낮에 저지른 일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되게 간단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큰 일 보기 전에 소리를 질렀다며? 아마 배가 너무 아파서 자기 딴에는 힘들어서 소리 질렀을 거야. 게다가… 묽었다며… 후후. 배 엄청 아팠나 보네. 무사히 일 치르고 나서는 시원해서 뛰어다녔겠지. 이제 배가 안 아프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 맞아. 쟤가 고양이라고 해도 사람처럼 방귀도 뀌고, 밤에 먹은 게 소화가 되다 보니 복통이 올 수도 있는 거지. 아파서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화장실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신호가 터진 거였구나. 한편으로는… 너무 안쓰러운 일이었네.


그래놓고선 큰 일을 바닥에 본 건 생각도 안 하고, 더 이상 배가 아프지 않으니까 후련하게 뛰어다니다가 나한테 혼날 것 같으니까 숨었단 말이지.


이~ 요망한 고양이.

그런데 우습고, 귀엽고, 불쌍하고, 안아주고 싶은 이유는 이 이상하고 엉뚱하지만 순수한 고양이를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이겠지.


다시는 없을 명장면을 목격한 나로서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인 것 같아서 글로 박제한다.


뚱이… 이 똥쟁이.

건강해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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