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체력의 부재는 취미생에겐 숙명과도 같지만, 인벤션에 입문한 이후부터 그 무기력함은 전보다 훨씬 날카롭게 실감되고 있다. 하염없이 아쉬운 기초력 중에서도 가장 시달리는 분야는 바로 악보 읽는 능력인데, 다성부 음악의 익숙지 않은 패턴은 한 마디를 제대로 읽어내는 데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음표 하나하나를 확인하느라 곡 전체의 흐름을 익히는 데 지장이 상당함을 느낀다. 이만치나 느려서는 리딩 단계부터 쉽게 지치기도 하거니와, 앞으로 시간을 충분히 들이더라도 과연 이 곡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피어오르게 한다.
그렇게 불안감이 자포자기로 얼굴을 바꿀까 두려워 일찌감치 연습에서 벗어난 어느 오후,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90년대의 마지막 해에 중학교 졸업반이었던 나는 학과 공부에 슬슬 관심을 잃어가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른들 중 누구도 그런 날 꾸짖거나 타이르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여름방학 즈음에는 빈둥거리기에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는지, 난 가족 누군가가 사 두었다 방치한 일본어 학습지를 짐짓 꺼내어 읽는 척, 공부 비슷한 것을 한다는 모양새로 켕기는 마음을 얼버무렸고, 그렇게 우연찮은 며칠간의 책상 앞 집중을 통해 처음으로 언어라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낡아빠진 내용의 지루한 교재는 나를 책상 앞에 그리 오래 붙들어놓지는 못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언어적 호기심이라는 것에 눈을 뜬 나는 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디선가 테이프로 더빙해 갖고 온 지브리 초기작들을 틀어 놓고 들리는 대로 받아쓰고, 쓴 것들을 모아 종이 사전을 뒤적거리는 식으로 혼자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뭐, 공부라기보다는 차라리 놀이 같은 거였다. 체계도 없이 닥치는 대로 듣고 중얼거리고 또 써댔을 뿐인. 처음엔 열 가운데 대여섯은 제대로 받아적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무작정 끄적이기를 멈추지 않고 또 가끔 마음에 드는 표현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누가 듣든 말든 미친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다니던 기억이 난다. 시험 삼아 응시했던 그 해 겨울 JLPT 3급에 단박에 합격한 걸 보면 그런 카오스적 학습법도 나름의 효과는 있었던 모양인데, 사실 지금 생각해도 퍽 신기한 구석은 있다. 아직은 뇌가 충분히 말랑한 10대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었으리라, 그리 생각할 뿐이다.
흔히들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굳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뇌의 가소성—새로운 것을 잘 흡수하는 능력—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한다. 열다섯살의 내 뇌는 무작위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넣더라도 알아서 패턴을 찾아 데이터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가소성이 충분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러한 뇌의 가소성은 열 살만 지나도 점차 굳어갈 운명이라고 하지만. 다만 어린 뇌가 차곡차곡 쌓은 데이터들을 가지고 상황을 추찰하여 적확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뇌의 또다른 탤런트—결정 지능—만큼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공교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어른들에게는 희망적인 이야기 아닌가. 단지 이 결정 지능이란 게 피아노 같은 배움 활동에 있어서는 발목을 잡는 애로가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 방증이랄 것까진 없지만, 피아노에 도전하고 나서부터 어째 매일매일 더 신중해지고만 있는 듯한 내가 있다. 알다시피 시작하기 전부터 교재를 고르는 데에만 한세월을 보냈고, 연습보다는 분석에 더욱 시간과 열을 쏟아온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인벤션에 입문하기까지의 과정만 봐도 순탄치 않았다. 열 다섯 곡의 난이도를 순서대로 정리한 자료를 국내외 사이트를 뒤져가며 비교해 보기도 했고, 첫 도전 후보로 추려낸 1번과 4번 곡 사이에서도 며칠을 고민했었다. 간신히 결정한 1번 곡을 앞에 두고도 과연 내 수준에 적합한 곡인지 끝까지 의심했고, 그 의심은 여태껏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습 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마디마디마다 주저하고, 의심하고, 상황 파악을 우선시하는 매일이다. 그렇게 지레 지쳐서 내뱉는 상투구 한 마디도 쌓이고 쌓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지’
인생을 통해 쌓아 온 빅데이터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되려 나를 겁쟁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좌절할만한 일은 아니다. 조금 황당하긴 해도. 열다섯살의 ‘되는대로 모든 것을 흡수하는 뇌’는 이제 없고, 내게 남은 건 어른의 ‘겁쟁이신중한 뇌’뿐이지만, 가진 것이 초라해도 그것밖에 없다면 어떡하나. 최대한 써먹을 수밖에. 낡은 뇌의 빅데이터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해답을 내놓으려나? 사실 이미 갈 길은 정해졌다. 어른의 뇌가 ‘빅 데이터’를 통한 상황 판단 능력에 탁월하다면, 피아노에 관한 빅 데이터를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욱여넣어서. 무식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이미 성공을 한 경험이 있기에 어느 정도 희망을 본다.
피아노에 있어서 빅 데이터란 뭘까. 첫 번째로는 역시 많은 악보를 접하는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새로운 악보를 읽어내는 능력 즉 ‘초견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초견력. 처음 보는 악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 언어로 치자면 철자와 문법, 어휘를 익혀 처음 보는 문장도 술술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의 내게는 악보의 검은 부분이 그야말로 ‘암호 해독’의 영역에 가깝지만, 초견력이 붙으면 독보 자체에 에너지를 크게 쏟지 않고도 피아노의 빅 데이터를 쌓기 분명 수월해질 것. 더불어 새로운 곡을 배우는 데 지금처럼 필요 이상의 신중함도 줄어들 테고 말이다.
과제는 정해졌지만, 당면한 문제가 하나 있다. 마땅한 교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한국에 출판된 초견 관련 교재들은 대부분 ‘연주자의 수준보다 한두 단계 쉬운 짧은 곡들의 모음집’ 정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전문적인 초견력 향상을 위한 교재는 없을까. 해외로 눈을 돌려 아마존을 돌아다니던 중 쓸만한 초견 연습 교재를 발견했다. 내용을 잠깐 살펴보자면,
한 곡이 8마디의 내외의 짧은 구성이고
다양한 조성과 박자, 화음 진행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짜여 있으며
무엇보다 ‘예견’(연주 전에 악보를 미리 훑어보며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는 과정)에 대한 안내가 잘 되어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
당분간은 인벤션을 한 곡씩 천천히 숙독해 가며 동시에 초견 연습에 집중해 볼 생각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들고 가면 지칠 테니 체르니 같은 다른 교재는 잠시 보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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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삼십대를 훌쩍 넘어 피아노를 시작한 게 아쉽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학원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전공의 길로 향했더라면, 그게 아니더라도 십년만 일찍 시작했더라면 적어도 취미 수준에서는 제 것이 되고도 남지 않았겠느냐면서.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타고난 성정 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면 과거를 후회하는 일이 적다는 점인데,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강제가 있었다 한들 피아노를 계속했을 가능성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만약 그러한 강제가 있었다면 다시는 피아노를 돌이켜 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언어 학습을 스스로의 방식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든 것처럼, 흥미란 저절로 피어올랐을 때만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피아노라는 악기가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나 의미를 갖게 된 것도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알맞은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충분히 신중하고 분석적인 ‘어른의 뇌’를 갖추고 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였기에 그동안 내 안에서 숨죽인 채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