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 잊힌 기록 너머로

by 익호

용량이 거진 가득 찬 스마트폰을 구제하기 위해 사진첩을 훑다 보니 수년 동안 쌓인 사진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았다. 요 몇 년 사이는 나이듦의 서글픔이 비치는 게 싫어져서 셀카도 잘 찍지 않게 되었는데도, 풍경이며 음식이며 잡다한 기록물이며… 족히 삼천장은 넘을 사진을 하나하나 스와이프하면서 그 대부분이 찍고 난 이래로 단 한 번도 꺼내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 기록의 시대다.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 사랑하는 이의 표정, 놓치고 싶지 않은 계절의 변화를 앞에 두고 모두들 반사적으로 스마트폰부터 꺼내 든다.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기록하려 드는 게 우선인 것이다. 그러나 편의에 위탁한 그 기록들은 태반이 두 번 다시 꺼내어질 기약이 없으며, 나처럼 물리적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야 겨우 꺼내 보겠으나 이미 그날의 온도나 냄새와 같은 감각은 날아가버린 지 오래다. 손 안의 화면은 선명하게 기억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그곳을 바라봤을 순간의 나는 흔적조차 없다.

초견 연습을 필두로 기술적인 향상을 꾀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도 뿌듯할 만큼의 성과는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벤션에서 골라낸 첫 과제도 아직 손에 어색하긴 하나 어찌어찌 처음부터 끝까지 멈춤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수준에는 올랐다. 그러나 잠들기 전이나 차를 마시는 시간같이 온전히 스스로에 집중하는 때에 가만히 오늘의 음악을 더듬어 보자 하면, 정작 내가 연주했던 것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채곤 한다. 손끝은 반복된 움직임을 통해 의심 없이 음을 따라갈 수 있는데, 육체의 기억력이 뚜렷해질수록 마음속 음악은 오히려 희미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연습 시간이 쌓일수록 감각의 해상도는 점점 선명해지지만, 그 심상은 음악이라는 본질에서 더욱 멀어지는 모순의 상태. 처음 악보를 펼쳤을 때의 설렘이나, 한 음 한 음 더듬거리며 연결하던 순간의 긴장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악보를 펼치면 음을 좇는 게 아니라 인쇄된 음표를 따라 그저 손가락의 위치를 맞추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나는 분명 피아노 앞에 앉아있지만, 연주자로서가 아닌 재생 로봇으로서인 것이다. 반사적으로 기록해 온 사진들이 뚜렷한 데이터만을 남기고 기억을 휘발시켜 버렸듯이, 손끝의 운동이 거듭될수록 음악을 향한 감정은 증발하고 만다.


언젠가 유튜브의 누군가가 암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암보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외워 침으로써 손끝이 기억하는 것 너머로 음악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난 피아노를 시작하고 나서 아직 단 한 번도 악보를 외워서 연주해 본 일이 없다. 어쩌면 난 이제껏 악보라는 ‘안심 도구’에 의존한 채 기계적인 재연만을 되풀이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리듬게임의 음표를 순서에 맞춰 정확히 누르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듯이.


암보. 인벤션을 통째로 외우는 건 내게는 아직 부담이다. 대신 초견용으로 사용했던 악보를 꺼내 몇 곡 시험 삼아 외워보기로 했다. 그 단순한 몇 마디들은 대단한 노력 없이도 금방 외워 칠 수 있었지만, 악보를 놓고 치는 연주에 비해 음악에 더욱 다가갈 수 있었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이제껏 한 번도 내 손과 건반을 직시하면서 연주한 적이 없었다는 걸 알아챘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까. 시선의 변화는 그 자체로 신선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내 손이 이런 식으로 움직였던가? 지금 치는 음들은 건반 위에선 이런 모양이구나. 내겐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늘 악보만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버릇이 붙어 있었나보다. 어쩌면 이는 내가 기록에 의존해버릇 해 왔다는 명백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깨달은 점이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은 그날 잠들기 전이 돼서야 알았다. 자리에 누워 낮에 외워 쳐 본 음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니, 전에 그랬던 것과는 다르게 퍽 선명하게 뇌리에 그려지는 게 아닌가. 전체는 무리더라도 빈 오선지가 있다면 대강 그려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손끝의 무의식만을 좇는 연주가 아닌 음과 음 사이를 마음으로 잇는 연주라는 말 뜻이 무엇인지 잡힐 듯도 하다. 쉽고 명확한 기록에의 의존을 벗어나 희미하고 불안하더라도 능동적으로 기억을 뒤적거리는 행위. 그것이 암보의 진의일까.


손끝의 기술을 갈고닦는 동안 놓쳐온 것이 어쩌면 음악 그 자체였을까. 악기 연주를 목표로 하면서 음악을 놓치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물론, 기술의 향상은 악기 연주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악보나 여러 기록에 의존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음악을 따라 내면에 새기어지는 경험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눈과 귀를 열고, 내가 하고자 함이 단순한 재연이 아닌 연주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해야 한다. 기록의 편의성에 의존해 어떠한 장면도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기껏 열심히 연습한 곡이 내 낡은 스마트폰 사진첩에서 감흥 없이 지워진 수백 장의 사진처럼 되어버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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