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악기를 배우는 이들 중 상당수가 평생의 목표로 삼는 곡, 소위 ‘인생곡’이란 것을 마음 한켠에 품고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선망했으나 채 배우지 못했던 곡, 좋아하는 연주자의 시그니처 레퍼토리, 혹은 그저 막연히 마음을 끄는 모티프들… 그것들을 언젠가 내 손으로 직접 연주해 보고 싶다는 순진한 포부는 우리를 악기라는 고행길로 몸소 뛰어들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나처럼 성인이 되어 클래식 피아노에 도전하는 이들은 어떤 곡을 인생곡으로 꼽고 있을까. 사람마다 취향마다 제각각이기야 하겠지만, 득표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분명 낭만시대의 곡들이지 싶다. 구체적으로는 쇼팽의 에튀드나 발라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같은 곡들 말이다.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그 곡들이 빼어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시대의 취미생들에게는 일종의 ‘최종 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도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극적인 감정기복과 비르투오소적인 테크닉으로 청각은 물론 시각의 영역까지 사로잡는, 이른바 ‘무대효과’가 보장된 곡들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인간 감정에 노골적으로 다가서려 하는’ 스타일의 악곡에는 마음이 크게 이끌린 적이 아직 없다. 그에 앞서, 내게는 아직 ‘인생곡’이라 이름 붙일 만한 곡도 하나 없다. 다만 언젠가 도전해 보고 싶은 작곡가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목록의 제일 윗부분에는 언제나 바흐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애초에 피아노가 아닌 쳄발로를 배우고 싶어 했었다. 스무살 언저리에 우연히 접했던 바흐의 건반 협주곡들에 매료된 뒤부터 그러한 마음이 자라났던 것 같다. 다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비전공생 신분으로 쳄발로와 같은 고악기를 만질 기회란 극히,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또 고악기란 태생이 너무나도 섬세한 까닭에 혹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연주법은 물론, 악기 관리법까지 스스로 통달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비용과 기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쳄발로를 접게 된 나는, 그 대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나 피아노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건반으로 한정해 보더라도 세상에는 수많은 바흐 스페셜리스트들이 있고, 취미로 피아노를 치는 이들 가운데에도 바흐를 사랑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낭만시대 음악에 비해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은 적은 듯하다. 왜 그럴까?
화려함의 부재라는 게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유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낭만시대 음악에 비하자면 무대 효과가 부족하다. 작을 땐 한없이 섬세하고, 클 땐 천둥처럼 꽝꽝 울리며 클라이막스로 치달아 마침내 청중의 갈채를 유도하는 그런 극적 효과 말이다. 실제로 비슷한 난이도의 두 시대 곡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볼 때, 바로크시대의 곡이 낭만시대 곡에 비해 훨씬 슴슴한 인상을 준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시대음악에 대해 별다른 이해가 없는 청중을 앞에 두고 아무리 잘 표현해 내 봤자 ‘뭔가 있어보이는 것 같긴 한데, 글쎄…’ ‘그렇게 맛깔나는 곡은 아닌 것 같네’와 같은 반응이 나오기 십상인 것이다.
실제로 바흐 연주는 듣기에는 편안하지만 연주하기엔 까다롭다고 호소하는 연주자도 많다. 극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 어려운 와중에 연주 자체도 부담이라니. 인기가 적은 것도, 누군가의 인생곡 후보에 쉬이 오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내겐 바흐 연주의 까다로움 자체가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바흐의 건반 음악 대부분이 ‘다양한 성부를 하나의 악기로 연주 가능하다’는 건반 악기만의 아이덴티티이자 최대의 장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형태로 작곡되어 있다. 모든 손가락이 제각각의 가수라도 된 양 시종일관 동등한 기술과 기교를 뽐내며 노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초보자 입장에서는 간단한 곡조차도 리딩 단계부터가 난관일 수밖에 없고, 암보는 더더욱 어렵다. 바이엘과 체르니로 익숙해진 독일 고전 시대 음악에서 즐겨 등장하는—오른손 멜로디, 왼손 반주—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음악, 즉 다성부 음악(Polyphony)의 특징이자 특장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초보자에겐 올려다보기에도 힘든 산. 그러나 이제껏 해온대로만 임해서는 쉽사리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그 까다로움이 있기에 잘 소화해 냈을 때의 성취감은 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각 성부가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음악으로 어우러지는 순간에 느껴지는 묘한 감동. 그것이 내가 바흐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바흐 입문으로 흔히들 꼽는 2성부 인벤션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사실 독학 초기에 살짝 맛만 보았다가 곧 한계를 느끼고 한참 뒤의 과제로 미뤄두었었는데, 지난번 음악회를 다녀온 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실력이 충분히 찰 때까지 묵혀 두자는 것도 분명 합리적인 판단이겠으나, 모자랄 때일수록 오히려 높은 곳을 적극적으로 두드려 보는 것이 향상을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훌륭한 연주를 듣거나 했을 때 별안간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연습하고 싶어지는, 취미생이라면 한번 쯤 겪어봤을 그런 짓이 난 흥감이 연주회 이후 내 안에서 식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하농에서 좀처럼 말을 듣지 않던 내 왼손은 여전히 둔하다. 오른손이라고 딱히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이 초라한 열 명의 가수들을 데리고 ‘완전한 하나의 노래’를 표현해 내야 하는 바흐의 곡들은 이제껏 해 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전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하루이틀 집중해 봐야 단 몇 마디도 정복하기 쉽지 않다는 걸 리딩 단계에서부터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이번에는 풀 죽지 말고 한 발자국씩 나아가 보리라 마음을 굳혔다.
내가 만족하고, 또 남들도 들어줄 만한 바흐 연주를 완성하기까지 앞으로 몇 년이나 걸릴지는 미지수지만, 그 여정의 초석을 조금 일찌감치 쌓아보기로 한다. 언젠가 목적지 근처에 도달하더라도 화려한 갈채보다는 고독한 성취 정도만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크게 상관없다. 음악이란 언제나 청중을 향하는 예술임을 슬슬 인정하기는 해야겠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피아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개인적 성취에서 오는 묘미라는 점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