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피아노 선생님인 J. 그의 눈높이가 내가 레슨에 대해 막연하게 품고 있던 기대치와는 사뭇 달랐다는 것을 한차례 소개했었다. 지인이라는 포지션과 성인 취미생이라는 한없이 무해한 이름표. 그 둘 사이에서 설렁설렁한 자세로 첫 레슨에 임했으나 예상치 못한 속도감과 깊이감에 완전히 깨부수어졌었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당혹감과 의문점만이 남은 레슨이었지만, 회수를 거듭해 가면서 점점 J의 방식이 취미생의 입장에서도 납득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분야든 전문과 비전문의 영역을 극명하게 나누려 함은 애초에 잘못된 접근 방식일 것이다. 전공이든 취미든 배움의 긴 여정 앞에서는 동등한 출발선상에 서야 하며, 다만 그 둘 사이에는 소화해야 할 범위와 투자해야 할 시간의 양적 차이만 존재할 뿐인 것이다. 평소에는 익살스러운 성격이지만 약속된 시간 동안만큼은 입시생을 대할 때와 구별 없이 가르치는 프로페셔널한 J가 있기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조금은 든든하다.
뚜렷하게 기울어진 햇볕에서 가을을 느낄 만하던 어느 오후, J가 연락해왔다. 그가 속해있는 단체에서 향상 음악회라는 걸 하는 모양인데, 나보고 보러 올 생각 없느냐면서.
향상 음악회, 그게 뭘까.
J의 설명을 옮겨 적자면, ‘말 그대로 기량 향상을 위해 치르는 정기 행사’라는 듯. 원칙적으로는 무관객 행사지만 단원들이 초대하는 인원 정도는 관행상 허용되니 부담 갖지 말고 보러 오라는 이야기다.
‘대관료가 아깝기도 하고요’
그야 그럴 것도 같다. 객석을 텅 비워 두기에는 모처럼 공연장을 빌리는 실속이 없다.
청중 없는 쓸쓸한 연주는 코로나 때 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덧붙이는 J.
연주회라면 어느 정도 관객이 차 있어야 의욕도 솟고 적당한 긴장감도 얻을 수 있을 테니, 그 말 또한 납득이 간다.
주말이라곤 해도 별다른 일정이 없는 처지이기에 그날 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음악회 비슷한 것에라도 갔었지. 십여 년 전 스케이트를 타다 얼굴뼈를 골절하는 바람에 남은 회차를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취소해야 했던 서울 바로크 합주단 때였나. 아니면 미국인 지인의 팬심에 엉겁결에 따라붙어 간 임동혁의 리사이틀 때였나. 둘 다 흐릿할 만치 오래된 일이라 어느 쪽이 마지막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당일 생각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한 나는 급하게 꽃집을 찾아 수국 섞인 꽃다발을 하나 사들고 조계사로 향했다. 땅거미가 진 초가을의 바깥공기가 꽤 쌀쌀한 날이었다. 로비에는 나처럼 초대받아 왔을 법한 이들이 드문드문 서성이고 있었고, 공연이 코앞인 순간임에도 피아노며 바이올린이며 또 이름 모를 관악기며 할 것 없이 마구 섞여 들려오는 막바지 연습 소리가 급하게 청각을 자극했다.
여기서 난 참으로 이상하게도,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흔한 바깥 나들이조차 내게는 이벤트인지라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긴장할 만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심상치 않은 두근거림이었다. 홀로 집안에 틀어박혀 지낸 기간이 이미 한도 초과였을까.
누가 보면 오늘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 중 하나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잔뜩 상기된 얼굴과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난 곧 시작될 첫 연주에 집중하려 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곧바로 집중할 수 있었다. 클래식과 크로스오버와 현대 음악으로 넘나드는 자유로운 프로그램. 긴장감보다 웃음과 친근함으로 채운 무대들은 실수도 제법 튀어나왔지만, 그 또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한 번은 클라리넷 솔로 주자가 타이밍을 놓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만한 해프닝조차 공연을 즐기는 데에 있어 전혀 마이너스로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껏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는 사이에 요동치던 가슴은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단원들이 모두 나와 합창한 유재하의 넘버를 마지막으로 공연이 파했고, 시끌벅적한 공연장 복도로 느지막이 빠져나온 나는 구석에서 단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J를 찾아 꽃다발과 인사말을 전하고 곧바로 공연장을 나섰다.
*
어둠이 깔린 조계사 경내를 걸어 내려오면서, 무대 경험이란 게 공연 예술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차근히 생각해 보았다. 취미 삼아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음악이란 결국 듣는 이를 상정해야 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나는 그토록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하고 말이다. 독학이라는 미명하에 늘 혼자서만 궁리해 왔고, 영상물 속의 막연한 티칭이나 J의 의문 가득한 가르침도 애써 자기류로 끼워맞추려고만 했었다. 그뿐인가, 연습할 때는 늘 헤드폰을 낀 채로 홀로 들을 뿐, 가족에게조차 연주를 들려준 일이 이제껏 없다.
두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오늘 무대에서는 크고 작은 실수가 꽤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청중들이 그것들에 얼마나 개의치 않았는지. 연주자들은 어땠는가. 준비한 것을 100% 내보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야 그들 속에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 두려움은 결코 없었다. 오늘 향상을 위해 피나게 거듭해온 노력은 고작 실수 한두 번으로 그 빛이 바래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두려움은 커녕, 오히려 음악이라는 큰 틀 속에서 한없이 자유롭지 않았던가.
하농에서 손가락이 생각만큼 돌아가지 않는다며 피아노를 접어야 하나 고민했던 얼마 전의 내가 참으로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레슨을 포함하더라도 이제 겨우 몇 발자국 뗀 참이다. 왜 난 이렇게 늘 성급하고 잘난 체를 하게 되는 것인지. 타고난 성격 탓일까. 나이에 조급함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우정과 선의로 큰 대가 없이 레슨을 봐주는 J가 있다. 자신의 영역에서만큼은 취미생 나부랭이를 앞에 두고도 진지하게 임하는 이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나는? 피아노를 평생의 취미로 삼기로 선언까지 한 마당에, J의 반의 반도 진심이지 않았음은 부끄러워 해야 마땅하지 않나.
진심이라고 하나 실상은 대단한 것도 아니다.
‘피아노? 어차피 나 혼자만을 위한 취미일 뿐’
그런 두려움을 감춘 허세일랑 잠시 거두고, 한 번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을 만드는 데 도전해 보는 것.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평생 무대라는 것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고, 또 스스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청중은 공연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레스너인 J가 있다. 내 음악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을 향해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모자란 재능과 필연적으로 마주칠 실패에서 비롯하는 자괴감—이를테면 하농에서 느낀—에서도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