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피트니스 열풍이 대단하다. 나 또한 남자로 태어나 좋은 몸과 건강한 신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운동 시설에 가 본 적이라곤 20대의 끝자락 도쿄에 머물던 시절, 딱 한 번 일일권을 끊어서 방문했던 도쿄체육관이 전부다. 그마저도 수영장 이용이 주목적이었고, 그 전으로도 후로도 체육관 비슷한 시설에는 발끝도 들여놓은 적이 없다. 자의식 과잉 기미이기도 한 나는 공용 시설이 주는 여러 가지 압박—집단이 주는 압박, 규칙 준수의 압박 등—이 꽤 부담이었던 것 같다.
그런 나조차도 서른 살을 넘어서부터는 운동의 필요성을 피부 아래로부터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 신경과민과 소화불량의 콤보 덕에 평생을 살이 붙지 않던 타입이었던 나도 어느덧 군살이라는 존재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잔인한 연령대에 진입한 것이다.
운동은 해야겠는데 운동 시설에 가기는 여전히 꺼려지고, 그렇다고 야외에 나가 걷는 일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방황하다 차선책으로 홈트라는 걸 시작하게 된지 이제 두 해쯤 지났다. 대단한 프로그램이나 기구를 갖추고 하는 것은 아니긴 해도 적당한 강도의 맨몸 운동을 주기적으로 실천(하려 노력) 중인 요즘. 물론 이 정도의 노력 갖고는 필요한 운동량을 채우기엔 턱없이 모자라지만, 체력에 심각한 저하를 아직까지는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건 그나마 해 온 운동 덕이었다고 믿고 싶다.
맨몸운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노력을 쏟고 있는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턱걸이인데, 이게 웬만큼 쉽게 볼 종목이 아니다. 단순히 힘으로만 당긴다고 해서 갯수가 잘 늘지도 않는 건 물론, 전신 근력과 신경계의 협응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라면 단 한 개조차 당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근육과 신경계를 기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물론 정확한 자세와 충분한 운동 볼륨 그리고 휴식일텐데, 특히 휴식의 중요성을 요 두 해 동안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었다. 첫해에 아무리 노력해도 서너 개가 한계였던 턱걸이를 한 주 정도 통으로 쉬고 나서 다시 시도했을 때 전보다 오히려 더 수월하게 당겨지는 걸 몸소 체험했을 때다. 근력 운동에서 휴식이야말로 성장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피아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피아노를 취미로 삼겠다고 공표한 이래로 난 거의 매일같이 쉼없이 건반을 만져왔더랬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런 쳇바퀴 돌리는 식의 연습 방식이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않음을 점차 느끼고 있다. 특히 하농같은 엑서사이즈를 많이 친 날에는 손가락 마디마디와 신경에 예리한 통증이 생겨 며칠 동안 가시지 않을 때가 많다. 마치 과도한 운동 후에 찾아오는 근육통처럼 말이다.
주목할만한 경험도 하나 있다. 매일 연습을 이어갔을 때보다 강제로라도 며칠 쉬게 되었을 때 손가락이 훨씬 잘 돌아가는 걸 체험한 것. 물론 길게 쉰 만큼 음 읽기나 핑거링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생기기야 하지만, 대신 미스 터치 같은 실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특히 한참 동안 해결보지 못했던 테크닉들—트릴 같은—이 신기하게도 수월하게 연주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몇 차례 겪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사실 악기 연주와 운동은 닮은 구석이 많다. 사용하는 근육과 신경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국 내 몸을 정교하게 컨트롤한다는 점에서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관련된 전문 연구가 존재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생각했을 때 악기 연주 숙달의 절반쯤은 신체능력 그 자체에 달려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피아노 연습에도 운동처럼 ‘적절한 휴식’이 필수라는 이야기가 될 텐데. 매일매일 억지로 시간만 채우는 타성에 박힌 연습을 고집하기보다 신체적, 정신적인 컨디션을 살펴가며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편이 더욱 효율적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아이디어가 연습하기 싫을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갖가지 핑계들 중 하나에서 삐져나온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홈트를 통해 체득했던 성장의 느낌을 피아노에서도 한 번 얻고 싶은 마음만큼은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휴식이라는 이름의 내려놓음이 연주 능력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죄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취미 생활이란 게 애초에 의무감보다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고, 세상 만사 무리한 반복보다는 적절한 리듬이 항상 더 중요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믿기에, 한번 쯤 시도해 보아도 여전히 손해는 아닐 것이다.
다만 ’쉬어도 된다‘라고 일단 정하고 나면 그 결정이 나태함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남는다. 턱걸이를 해오면서도 ’오늘은 성장을 위해 쉬는 날‘이라며 스스로를 속인 적이 무지하게 많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오버 휴식’은 성장에 도움은 커녕 오히려 퇴보만 일으킨다는 점도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고.
또 한가지, 휴식이라는 공백 자체가 죄책감 혹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운동 중독자들이 흔히 근손실을 두려워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의 막연한 불안감이 실력 저하로 현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 말이다.
물론 지금 내 수준에 잃어버릴 실력이란 게 과연 있느냐고 자문해 보자면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