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레슨, 혼란하였으나

by 익호

살면서 그 누구한테도 외향적이라는 소리는 못 들어봤지만 나름 사회인으로서의 대외적인 연결끈은 놓지 않고 살아왔다 여겼었는데. 그 가느다란 연결고리조차 서서히 곯아 떨어져버렸음을 실감한 것은 팬데믹 이후, 유행처럼 번진 집콕 문화에 잠식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먹고살기 시작한 요 몇 년 사이를 되돌아보면, 거의 칩거라고 해도 될 만큼 두문불출하는 나날들이 이어지는 때가 많은 것이다. 관성이란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라 하던데, 과연 날이 갈수록 외부 세계에 대한, 특히 다수의 사람들과의 접촉에 대한 면역이 사그라들고 있음을 체감한다.


주말 피크타임은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대다. 중요한 볼일 또는 일 년에 고작 두세 차례 있을까 말까 한 친구와의 약속도 웬만하면 평일 낮시간으로만 선을 그은지 오래되었다. 첫 레슨 날짜를 정할 때도 정적인 관성에 이끌려 평일 낮시간으로 운을 띄운 나. 그러나 이것이 내 첫 레슨 선생님이 될 J를 곤란하게 만든 모양이다. 그는 연주활동을 병행하고 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기본은 회사원이기에, 평일 낮에 한가로이 시간을 낼 수 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제시한 몇 개 날짜들을 조심스레 모두 물리며 ‘퇴근 후라면 너무 늦지 않겠냐’며 웃는 그. 사회적 경험치라는 게 그저 나이를 먹는 것 만으로는 체득할 수 없는 것임을 다시금 쓰게 삼키는 나였다.


재고 끝에 마련한 선택지는: 금요일 저녁, 토요일 오후, 일요일 낮.

그중에서 레슨 후 귀가시에 그나마 가장 한산할 듯한 일요일 낮으로 의견은 좁혀졌다.


자,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연습에 매진할 일만 남았다.


내가 들고 갈 곡은 단 하나. 소나티네, 그중에서도 9번 곡.

이 곡은 뇌리에도 귓가에도 솔깃하게 남아 있는 곡이다. 클레멘티의 소나티네 시리즈 중에서도 아마 가장 유명하다고 할만한 곡으로, 어린 시절에 직접 손을 댄 적은 없지만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치던 곡이기 때문이다. 발랄하게 튀는 스타카토와 빠른 스케일, 그리고 고전 소나타라면 으레 등장하는 클라이막스의 긴 트릴이 인상적인 곡으로, 밝고 경쾌한 클레멘티의 소나티네들 중에서도 손꼽는 넘버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시절엔 콩쿠르용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했다는데, 그러고 보니 학원 주최 발표회에서 많은 원생들이 이 곡을 쳤던 것도 같다.


어린이를 위한 큼직한 인쇄판으로도 두장 남짓한 짧은 곡인데다가, 연속된 화음 스타카토 부분이 좀 헷갈리기는 해도 구조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크게 까다롭지 않다. 다만 단 한 가지, 이미 이야깃거리로 꺼낸 적 있는 긴 트릴 부분만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복병이라 할 수 있겠다. 손가락을 마냥 빨리 굴리기만 하는 게 트릴 연주의 속뜻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심심히 받아들인 터지만, 그럼에도 음표를 많이 욱여넣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 어딘가와 손가락 언저리에 미련처럼 남아있는 걸 느낀다. 물론 레슨을 코앞에 두고서 여기에 모든 시간을 죄다 빼앗길 순 없는 일, 나는 애초에 결심했던 대로 타협한 형태의 트릴을 준비해 가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간의 맹연습 후, 첫 레슨을 마치고 돌아왔다.

감상을 풀어야 할 텐데.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정식으로 청중을 상정한 첫 번째 연주라는 의미를 포함시키더라도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지는 못했다고 해야 하겠다. 다만, 이 불만족이 레슨 퀄리티로 인해 생긴 것은 분명히 아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의문과 혼란에 압도되어 도무지 뭘 배웠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듯하다.


첫 번째로는 피아노라는 현물 그 자체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수십 년 만에 처음 만져 본 ‘진짜 피아노’는 감촉부터 음색까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꽤 달랐고, 도무지 귀에 박히지 않는 ‘안 예쁜’ 음색이 이제껏 디지털피아노에 익숙해진 내 귀 때문인지, 혹은 수없이 마구 굴려지면서 조율 조정도 제대로 못 받은 연습실 피아노 탓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레스너인 J 왈 ‘이 정도면 상태 괜찮죠’ 라는데… 피아노라는 악기가 본디 이렇게 나사 빠진 소리가 난다는 얘긴가? 신품이라도 이것과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건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문다.


카오스는 레슨 내용에서도 이어졌다.


‘화음을 칠 때는 액션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으로’

‘타건에만 의식을 쏟지 말고 손가락을 들어 올릴 때의 감각에도 집중’


아니, 내가 피아노의 기계적 구조를 그래도 조금은 아는데. 액션이라는 게 깊게 누른다고 더 들어가지는 않는데. 그리고, 한번 친 손가락을 어떻게 떼든 무슨 소용이 있다고… 무의미해.

마음속 소리를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만, 의문은 뭉게뭉게 피어올라 비로소 터질 듯했다. 시큰둥해진 나를 눈치챈 듯 친절히, 몸소, 하나하나 시연해 보이는 J. 그러나 내 귀로는 도무지 두 연주 사이의 분간이 서질 않았다.


“좀 더 깊이요, 손을 들어 올릴 때도 의식하면서요.”

“미안한 말이지만, 난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


“지금이야 당연히 모르죠. 그래도 자꾸만 의식하면서 연습하려고 해 봐요. 뭐, 일단 지금 소리는 좋아요”


?

지금 소리가 좋은데 뭘, 더, 왜 해야 하지?

어디를 어떻게 의식하라는 거지?

건반 악기에서 이미 울린 소리를, 의식좀 한다고 해서 바꿀 수가 있는 거였어?


피아노라는 게 건반을 눌러서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것쯤이야 누구나 시시하게 아는 일이고, 그 타건의 강약과 타이밍의 조합으로 무수한 경우의 수를 낸다는 것은 경험으로 안다. 그리고 그 조합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 또한 직접 겪은 바 있기에 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패턴을 음악이라 부른다.


J는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줄곧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감도 잡지 못했다.


그저 악보 읽는 능력이나 손가락 돌아가는 모양 등에 집중해 왔었고, 그것들에 대한 피드백을 얻으리라 예상했었는데.

J는 오늘이 내 생애 첫 레슨이라는 걸 까먹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초보라도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는 그것에 대해 내게 알려주려 하는 걸까?

마침내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한 듯했지만, 그 의문점을 풀기에 두 시간의 레슨은 너무나 짧았다.


레슨 전 연습할 요량으로 총 세 시간을 빌린 그랜드피아노 룸은 끝없는 물음표의 밀도와 그것과는 동떨어진 손가락의 열기 속에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듯했다. 홀로 연습할 때는 한 시간 채우기도 지루해서 견디기 어려웠었는데. 신선한(혹은, 뜨거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배움에는 강제성이 꼭 있어야 함이란 이런 때를 두고 말하는 건가. 레스너라는 존재가 곁에 있는 것 만으로(비록 온갖 의문과 혼란을 야기하긴 할지언정) 사람을 이토록 집중케 만드는 것인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오로지 혼자서 답파해 보겠다고 선언했던 내가 실은 몹시도 오만방자한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자라나던 참이었는데, 그 생각에 유의미한 확답을 끼얹는 듯했다. 혼란투성이인 내 첫 레슨에도 의의의 순간이 있다면, 이쯤에 두어야 하지 싶다.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을 마음은 아직까진 들지 않아도, 이번처럼 가끔씩 누군가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받는 기회를 마련한다면, 더 일찍 숙달할 수 있으려나. 특히 지식과 실력의 절대량 자체가 부족한 현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수준이 오르고 나서부터는 대면 레슨이라는 형태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과 같은 무수한 의문과 혼란이 닥치리라는 점이 버겁기도 하지만, 한편 그것들이야말로 실로 나를 성장시키는 재료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예감이.


***


레슨에는 부작용도 한 가지 있었다. 준비해 간 곡을 더는 치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점. 현장에서 얻어온 것을 바탕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곡이 곡다워지리라는 것쯤 머리로야 잘 알지만, 좀처럼 묵은 악보를 펼치고 앉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곡을 갖고서 요 며칠사이, 그리고 당일 현장에서 너무도 소진해 버린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불완전연소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레스너 J가 ‘지나간 곡은 신경 쓰지 말고 척척 새 곡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추천했다는 점이다. 초보 수준에서는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 경험의 풀 그 자체를 늘리는 ‘양적 확장’의 전략이 훨씬 유리하다는 뜻이리라.


큰맘 먹고 실행으로 옮긴 대면 레슨. 혼란과 의문이라는 찝찝함만 잔뜩 달고 온 건 아닌지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앞으로의 방향성과 그 추진력에 관한 힌트는 얻었다.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 또한, 앞으로 차차 밝혀내면 될 일이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한 번 경험해 본 참이다. 첫 술에 배부른다면 그건 그것대로 맥빠지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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