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부터 처음으로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간 막연히 레슨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긴 했어도 계속 미루고만 있었는데, 올해 마침 거주지를 옮기면서 삶에 조금의 틈이 생겨 레슨을 결행하게 된 것이다.
동네의 피아노 학원은 비교적 자유롭지 못한 스케줄대로 '자주' 들락거려야 하기에 애초에 후보에서 제외했고, 클래식 피아노 전공생에게 개인 레슨을 비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내 리듬에 가장 적합할 듯싶었다.
그것은 레슨의 목적이 애초에 특정한 곡을 배우고 싶다거나, 혹은 테크닉적인 궁금증을 해갈하고 싶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독학으로만 더듬어 가는 나날이 길면 길어질수록 점점 늘어가는 어떠한 종류의 '불안감'을 덜고 싶은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혼자서 해 온 것이 나름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레슨 횟수는 지금까지 열 번을 채 넘기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그동안 한 번 바뀌었다.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성인이 되어서 무언가를 배울 때는 참 이런 점이 문제다. 머리가 굵고 주워들은 것이 많은, 그리고 삶의 에티튜드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는 우리 어른들은, '그건 좀 이상한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보일라치면, 곧장 그의 모든 부분을 은연중에 부정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손가락, 손등, 손목, 그리고 온몸의 불필요한(혹은 불필요하다고 내가 굳게 믿는) 움직임을 연습 과정에서 꾸준히 강요받게 되면, 다음 순간 그의 가르침의 모든 부분이 의심스러워지고 만다는 것. 물론 그 강요 속에 어떤 큰 그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8살짜리 꼬마였으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으려나...
물론 선생님을 바꾸게 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꽤나 합리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신체적 조건'이 레스너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체크포인트라는 것을 도중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되도록 나와 비슷한 체구, 비슷한 손 크기의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이 좋은 듯싶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는 좀처럼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보다 작은 체구와 아담한 손을 가진 여자 선생님, 반대로 훌쩍 큰 키와 러시아 피아니스트마냥 큰 손을 가진 남자 선생님에게 배운다면, 그들은 내가 가지는 신체적 조건에서 오는 테크닉적인 한계, 그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핑거링에 관해서 아마 쉽사리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왜 굳이 그 손가락 번호를 정했나요?' 혹은 '왜 이 손가락 번호를 못 쓰세요?'.
음악적인 취향도 고려에 넣어야 할 대상이다. 나는 낭만주의 음악에 딱히 관심이 없다. 쇼팽같이 시대를 초월한 작곡가의 곡은 언젠가 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외에는 딱히 마음이 끌리는 작곡가도 없는 편이다. 오히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좋아하고, 특히 바흐를 연주해보고 싶어서 피아노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내 최종적인 목표는 바흐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바흐를 사랑하는 피아노 레스너 분들도 차고 넘치게 많지만, 보통은 지금 내 수준에서 바흐를 치길 권하는 선생님은 만나기 쉽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선생님도 줄곧 모짜르트 소나타만 가르쳐주시고 있으니)
여하튼, 레슨을 시작한 것 자체는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왜 혼자 할 생각만 했을까 싶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모든 피아니스트가, 그리고 그 위대한 쇼팽이나 베토벤, 바흐조차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성장했는데, 대체 내가 뭐라고.
디지털 피아노에 익숙해진 손으로 어쿠스틱 피아노를 쳐 본 소감을 말하자면, 딱히 큰 감동은 없었다. 디지털 피아노는 어쿠스틱 피아노와 다르지만, 또 그렇게까지 다르지도 않다는 기존의 입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물론 '터치'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섬세한 터치의 차이를 이끌어낼 만큼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아직까지는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사실, 디지털피아노와 어쿠스틱 피아노의 차이만큼이나 '어쿠스틱 피아노들끼리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되고.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레슨을 서로 다른 연습실의 서로 다른 피아노에서 받았는데, 만져본 모든 피아노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달랐으니까(터치, 음색, 울림, 고음부와 저음부의 음량 차이 등등...).
취미 피아노는 장기전이다. 처음 시작했던 만큼의 열정은 이미 사그라들었고, 연습 시간도 여전히 부족한 상황. 그러나 올해 시작한 레슨은 월 1회가 될까 말까 하는 느린 템포로라도 꾸준히 받아볼 생각이다. 10년쯤 뒤에는 원하는 바흐의 작품을 즐기면서 칠 수 있길 바라며, 내 삶에서 피아노는 그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