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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Sep 08. 2016

아이들은 자기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

아이들은 자기 먹을 것 가지고 태어난다


내가 학생 시절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고교시절 때 가장 싫어하던 아니 가장 혐오하던 말이 이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다르게 많은 인구가 큰 문제라고 생각되어서 산아제한에 대하여 정부에서 크게 홍보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접하는 소식들은 아무 능력 없는 부모들이 무분별하게(?) 아이들을 낳아서 제대로 양육하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사는 모습들이었다.  목표로 하는 산아제한에 대하여 군대식으로 몰아붙였던 당시의 군사정권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시작되어 ‘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일반 시민들은 이러다가 조만간에 ‘두 집에 자녀 하나만 낳자’로 문구가 바뀔 것이라는 풍자적인 이야기도 돌았다.


지금이야 하나만 낳아도 대단한 것이니 이 표어들이 잘 와 닿지 않겠지만 그 당시는 자녀가 둘만 있는 집은 거의 드물었고 적어도 3명 많은 경우는 7-8명도 제법 있을 때였다.

이랬던 이 나라가 불과 30-40년이 지난 지금은 아이들을 낳자는 운동을 하고 있으니 정부 정책이 백년대계는커녕 한 치 앞도 못 보는 한심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에서 홍보해도 요즘 스마트한 젊은 부부들은 아이 하나를 평생 양육하는 비용을 계산기를 두드려서 산출하고는 아이를 갖지 않으려 한다.

내 세대에는 지금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과거같이 생기는 대로 아이들을 낳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 자녀 1-2명씩은 당연히 가지는 걸로 생각했다.  물론 계산기를 두드리지는 않았다.  지금 젊은 부부들처럼 덜 영악해서가 아니고 계산기 두드리기가 겁나서였다.

지금의 급여 수준과는 상대도 안 되는 박봉으로 살기도 막막했던 시절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서 평생 아이 하나 양육하는데 몇 억 내지는 몇 십억이 든다고 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상실감은 치유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 경우도 첫아이가 생겼을 때 아무런 재산이 없었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으니 월급이야 확실히 나온다는 것 말고는…  그래서 기쁜 와중에도 혼자 있을 때는 걱정도 앞섰다.  무슨 돈으로 이 아이를 키워야 할지 그러면서 결의도 다지게 되었다. 이 아이를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키워야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쓸 지출을 최대한 줄여서 이 아이에게 큰 혜택을 주리라고.

이렇게 요즘 상식으로는 무책임하고 아무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아서 길렀지만 힘든 와중에도 그럭저럭 아이에게 많은 물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었다.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 생각하고 계산기를 두드려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 월급이 갑자기 올라간 것도 아니고 또 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럭저럭 부족함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2년 터울로 둘째 아이가 생겼을 때도 특별히 나에게 큰 수입이 생긴 것은 없었다.  월급 외에 다른 수입이 크게 생길 것도 없었고 오히려 아이가 둘이 되자 육아에 전념하느라 아내는 다니던 직장까지 사직하여서 수입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 당시 활황을 보이던 주식시장과 우리 사주 때문에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덕분에 아이들 둘은 경제적으로 부러움 없이 풍족하게 살았다.

그렇다고 이 아이들에게 지출을 하느라 나의 생활이 허리띠를 졸라맬 만큼 궁핍하지도 않았고 나 역시 아이들 없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족한 삶은 누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유능함으로 아이들이 큰 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고 우쭐했었다.

그런데 이런 교만한 나에게 하나님이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우매했던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유능함이 아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축복이라는 것을.

내 아이들은 자기가 먹을 것만이 아닌 부모가 먹을 것까지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두 살 터울인 두 아이가 태어나서 기르던 약 3-4년의 기간 동안 나의 첫 재산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축적되었다.  계산기를 두드려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우리 부부가 쓸 돈을 아이들까지 포함한 4명이 쓰니 말도 안 되게 궁핍해졌어야 했었는데…


인생이란 것이 미리 계산기 두드려서 계획 세워보았자 절대 그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전혀 생각과는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이다.  미리 계산기 두드려보고 감당이 안 되니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교만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물론 돈을 벌 능력이 없으니 부모들의 돈으로 양육될 수밖에 없지만 이 아이들로부터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유형무형의 축복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늘이 아이들을 이 세상에 내보낼 때 부모한테 모든 짐을 지우지 않고 각자 아이들이 먹을 것을 챙겨서 보낸다.  거기에 더해서 그 부모들이 풍족해야 아이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니 부모들 먹을 것까지 바리바리 싸서 내보낸다.


역사를 보면 부자나라들이 계속 바뀌어오게 되는데 이렇게 변화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사람이다.  60-70년대 우리나라를 변화시켰던 한강의 기적도 우리의 근면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역시 여기에도 베이비 부머 시대의 많은 젊은 인력들이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이나 기술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에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를 유망한 시장으로 보고 많은 기업들이 투자하고 진출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 역시 젊은 노동 가능 인구들이 많은 전형적인 항아리 형태의 인구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람 수만 많아서는 안되고 교육이 잘되어진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어마어마하다.  내가 알기로는 베트남의 교육 열기가 거의 우리나라 수준이라 한다.

그렇다고 국가 경제를 위해서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재산인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양육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들로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젊은 시절 가장 혐오했던 말을 요즘 나는 굳게 믿는다.  다만 바뀐 것은 아이들은 자기 먹을 것만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부모 먹을 것까지 가지고 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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