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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지 May 29. 2020

2년을 함께한 디자이너의 퇴사

직원의 꿈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존경하는 멘토님이 계시는데 처음 직원을 뽑을 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대표는 회사를 성장시켜 직원들이 꿈꿀 수 있게 해야 하고, 직원은 회사의 성장에 맞게 능력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 새가 자라는데, 둥지가 너무 작으면 안 되니까 둥지는 커지는데, 새가 그대로면 그 크기가 버거우니까.


어쩌면 내 첫 직원은 작당모의보다 성장 속도가 빨랐는지도 모른다. 




직원이 들어오면 그 직원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 첫 직원을 뽑을 때 정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좋은 직원이 들어왔다.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업무능력, 작당모의를 아는 정말 많은 사람들은 늘 디자인에 대한 칭찬을 했는데 정작 본인은 매우 겸손하다. 또 작당모의를 다니는 내내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무척이나 성실하다. 그리고 같이 일하면서 한 번도 서로 큰소리를 낼 일이 없었다. 성격이 좋다. 정말 많은 장점이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 친구들 주변 대표님들이 모두 우리 디자이너를 알고 있었으니까.


회사 생활을 3년 정도 했는데 회사에서 이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직장동료를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좋은 직원이었다. 직원이지만 동업자의 마음으로 일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심으로 작당모의를 아낀다는 확신이 드니까 직원이 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새겨들었다. 우리 제품에 대한 이해가 깊고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는 현명한 친구였어서 의사결정에도 참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직원이 없을 때는 주말에도 마음은 늘 일 생각뿐이었고, 조급했고 불안했다. 그때는 워라벨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그런데 첫 직원이 들어오고 나니까 오히려 야근을 시키고 싶지 않아 나도 야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월차가 생기고, 두 번째 직원이 들어올 때는 창업 2년 만에 처음으로 여행도 떠났다. 또 직원을 뽑으면 작당모의가 성장한다는 것에 대한 경험으로 6개월에 한 명씩 직원이 늘어 지금은 다섯 명이 함께한다. 여러모로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3월 첫 직원이 할 말이 있다더니,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작당모의 홈페이지를 관리하다 보니 퍼블리싱에 관심이 생겨 학원을 다녔고, 이제 좀 더 전문적으로 퍼블리싱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금방 싫증 날 줄 알았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더 재밌다고 그리고 다음 달에 자격증 시험도 2개나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달 동안 매일 퇴근하고 1시간 거리에 학원에 가서 주 5일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동안 피곤한 기색 전혀 없이 그렇게 일과 공부를 다 해낸 것이 너무 기특하고 대단해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28살에 퇴사하고 남들이 말리는 창업을 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그때 아무도 응원을 안 해줬다. 그래서 내 첫 직원이 딱 그때의 내 나이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싶었다. 작당모의만큼 그 직원의 꿈도 소중하니까. 나중에 작당모의는 안 해도 이 직원은 더 오래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평소에 워낙 말과 행동이 진중해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얼마나 맘고생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그 사람을 2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하기로 생각하면 정말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자기의 마지막 업무는 작당모의에 해가 되지 않도록 자기의 후임을 최선을 다해서 뽑겠다고 했다. 눈물이 울컥할 만큼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퇴사한 지난 회사의 대표는 내 퇴사 의사를 존중해 주지 않았다. 퇴사하는 그날까지 28살의 한계를 지적하며, 5년 뒤를 생각해보라며 퇴사를 말렸다. 사실 처음에는 그래 내가 일을 잘했지 하고 생각했는데, 벌써 퇴사한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잊을만하면, 전화를 걸어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는 게 나중에는 기분이 나빴다. 나는 작당모의를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직원과 제품을 책임지고 이미 작당모의 제품을 믿고 구매하는 고객들이 계신데 그 사실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한 번은 미팅을 가서 전화를 받지 않으니까 다짜고짜 회사 고객센터로 전화해 내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CS 직원을 힘들게 했다. 다시 생각해도 참 별로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대표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쉽지만 직원의 선택을 존중했다. 나는 직원이었을 때도 대표인 지금도 회사도 직원을 선택하고 직원도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본인도 회사에 해가 가지 않도록 퇴사가 결정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말했다고 했다. 예의 바른 이별 통보였다. 하지만 그날 밤 악몽을 꿨다. 새로운 디자이너가 들어왔는데, 색깔이 맞지 않아 고통받다가 깬 꿈이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괜찮다고 말해도 내 무의식은 불안했나 보다. 그만큼 그 직원을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 그 두 달 동안 퇴사를 차근히 준비했다. 주니어 디자이너 한 명과 경력직 디자이너 1명이 충원되었다. 그리고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인수인계 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준비했다. 석 달은 참 빨리 흘렀다. 보내려고 하니 그동안 못해준 것만 생각나서 퇴직금이라도 두둑하게 챙겨줬다. 딱 10만 원만 자기가 원하는 거 사고, 나머지는 제주도에서 스스로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거 사 먹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제주도에 가서 한 달 동안 작당모의를 다니면서 만든 것들을 포트폴리오로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 더 공부해 취업을 한다는 데, 진심으로 응원한다.


작당모의 식구들한테는 작당모의 제품을 반값에 주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작당모의 제품을 왕창 쟁여갈 만큼 작당모의 제품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다. 작당모의를 거쳐간 모든 사람이 작당모의를 떠나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이 작당모의 안에서 충분히 만족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작당모의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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