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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직 Oct 25. 2018

아이들은 왜 달이 먹고 싶을까?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



'누가 달을 꿀꺽했을까',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 이 그림책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달을 탐내는 귀여운 꼬마 포식자들을 다룬 그림책이라는 것이다. 언급한 것 이외에도 비슷한 그림책이 많다. 마치 이본이 각양각색인 구전동화의 원전처럼, 그 많은 책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이야기의 큰 뼈대는 결국 아이들(동물들)이 '달을 먹었다'는 것이다. (혹은 먹고싶어 하거나.)



왜? 왜 아이들은 왜 달이 그토록 먹고 싶을까?



서천석 선생님은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통해 '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달님은 아가들에게 엄마를 의미한다. 젖을 먹고 자라야 하는 포유류는 엄마의 가슴을 쉽게 찾고 적절한 집착을 보이기 위해 유아기에 동그라미 모양을 자연적으로 선호한다. 아가들 엄마를 얼굴보다는 우선 가슴으로 느낀다. 달이 무언가에 의해 가려지면 속상하며, 잠들기 위해선 행복하게 달을 만나야 한다. 그림책에서 집 위로 달이 떠오르듯 엄마의 옷이 내려가면서 가슴이 조금씩 나올 때 마다 아이는 곧 입으로 들어갈 모유를 생각하며 행복해진다.


범준이도 예외없이 달을 무척 좋아한다. 돌 이후에는 '달님 안녕' 책을 좋아해서 나는 그 책을 통째로 외워, 아이가 잠들때까지 머릿맡에서 많이도 들려주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글 달. 어디어디 떴나? 범준이 머리 위에 떴지' 라고 노래를 불러주면 '엄마, 다시요'가 기본 다섯번이다.


준이가 정말 잠 못이루는 밤에는 아이를 엎고 거실 창가로 간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먼저 하늘에서 달을 찾고, 오늘의 달 모양을 살핀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면, 아이는 먼 달을 보다 스르르 눈을 감곤 긴 잠 여행을 떠나곤 한다.


범준이가 달을 좋아하다 보니 나도 달을 좋아하게 되었다. 달의 주기와 모양이 인류에게 많은 예견과 의미를 암시해 왔 듯, 달은 인간과 참 친밀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달은 눈이 부시지 않고 그 빛이 은은해서, 바라보고 싶은 만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다. 둘째, 달은 차고 비우며 그 모양이 어제와 같지 않다. 셋째, 해는 밤이면 그 흔적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지만, 달은 낮에도 우리 곁에 머무르다 드문드문 낮달의 모습으로 나타나 선물같은 기쁨을 주곤 한다.


100개의 달과 아기공룡은 달이 무려 100개나 있을 적의 옛날 이야기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기공룡은 달을 맛보고 싶은 마음을 못이겨 한입 베어 물었는데, 웬걸! 그 맛이 너무나 훌륭했다. 아기공룡은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달을 하나씩 먹어치우고, 결국 100개의 달을 모두 삼키고 말았다. 100개의 달이 자취를 감춘 하늘은 빛이 없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없어진 달의 자취를 묻는 엄마에게 아기공룡은 울음을 터뜨리며 모든 사실을 실토하고, 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아주 큰 '하나의 달 똥'을 싼다. 하나가 동그라미가 된 큰 달은 아기 공룡에게 잡아 먹히지 않는 하늘 먼 곳으로 올라간다.


범준이는 엄마 공룡이 배가 아픈 아기 공룡의 배를 문지르며 '엄마 손은 약손'을 해주는 장면에서 내가 자신의 배를 쓸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커다란 달 똥'을 싸는 장면에서는 해맑게 꺌꺌댔다. 아이에게 전달되는 엄마의 살결과 체온, 그리고 파편 된 모습이 아닌 커다랗고 둥그런 하나의 달의 모습은 서천석 선생님의 말씀처럼 매우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달을 삼켜 제 몸안에 온전히 채워 넣는 상상은 아이들의 마음을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공룡이 베어물은 달의 맛이다. 마치 엄마의 가슴처럼, 달의 성품처럼 따뜻하고 보드라울 것만 같은데, 꿀처럼 달콤하고 수박처럼 시원하단다! 달이 주는 정형성에서 벗어나 주위가 환기되고,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묘사다.


그림 또한 표지에서 보이듯 서정적인 그림체가 아닌, 마치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단편적인 그림의 나열이 아닌, 만화와 같은 연속성이 두드러진다. 나는 처음에는 유아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그림의 디테일이 너무 생소했는데, 범준이는 그 반대로 그림체에 흥미를 느껴 이 책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뒤늦게 이덕화 작가 약력을 보고 나서야, 실제로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대여 기간을 일주일이나 연장했지만, 내일은 정말 책을 반납해야 해서, 오늘 밤이 범준이와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을 읽는 마지막 밤이 될 것 같다.





글, 그림: 이덕화


홍익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단편 애니메이션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를 기획하고 감독했다.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뽀루뚜아 아저씨』로 2010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혔다. 어릴 때 언니를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풀 냄새 맡고 꽃도 따먹으면서, 햇살의 따사로움과 바람이 가져다주는 묘한 느낌을 좋아했고, 자연으로부터 받은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들을 그림 속에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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