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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Oct 08. 2019

나를 변화시키는 조용한 기적 '정적'

#17_세 번째 위대한 개인 시리즈 , 고요하게 나를 지켜내는 힘

고전 문헌학자 배철현은 '위대한 개인'이 획득해야 할 가치를 네 권의 시리즈로 기획했다. 《정적》은 《심연》과《수련》의 뒤를 잇는 세 번째 책으로 "나를 유혹하는 외부의 소리에 복종할 것인가.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에 전율한 것인가"를 화두로 제시한다. 하루 10분의 짧고 깊은 생각, 자신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를 감지하고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수련'을 거친 사람은 '정적'을 통해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고요한 울림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정적'은 잠잠한 호수와도 같은 마음의 상태이며, 잡념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의연한 '나'로 성숙해지는 시간이다. 정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부단히 움직인다. 그래야 고요한 마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 정적이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인 것이다. 




정적만이 남았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가운데 그 고요함에 내 한 목숨을 의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세상 어딘가로 통하는 내 피는 고요하게 움직이는데도 소리 없이 해탈한 심경으로 몸을 토목으로 여기고, 하지만 어렴풋이 활기를 띤다. 살아 있다는 정도의 자각으로 살아서 받아야 할 애매한 번민을 버리는 것은,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벗어나 하늘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집착을 초월한 활기다. 고금을 공허하게 하고 동서의 자리를 다한 세계의 바깥에 한쪽 발을 들여놓아야만...... 그렇지 않다면 화석이 되고 싶다. (중략) 그렇지 않다면 죽어보고 싶다. 죽음은 만사의 끝이다. 또 만사의 시작이다.  
 
- 나쓰메 소세키의《우미인초》중에서



우연히 나쓰메 소세키의《우미인초》를 읽고 발견한 이 문단에서 곧바로《정적》을 떠올렸다. 정적. 고요. 침묵. 죽음... 소리 없는 세계를 품고 있는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상승보다는 하강의 기운. 지금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는 수많은 소리에 둘러싸인 일상을 살아간다. 침묵은 숨이 막힌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기에 소음을 찾아 듣고, 사람을 찾아 말로 내뱉는다. 아침에 눈을 떠 잠을 드는 순간에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한다. 유튜브, 팟캐스트, 음악, 게임, 전화, 카톡, SNS... 우리는 말 없는 시간에도 수많은 대화의 말 칸에 파묻혀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을 통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때마침 배철현의 《정적》이 나에게 찾아왔다. 고요한 눈으로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기를 권하는 이 한 권의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 내려갈수록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정적》은 다음의 단계를 통해 평정심을 얻는 법을 각 챕터마다 7개의 키워드를 소개한다. 여기에 덧붙여 해박하고 풍부한 고전의 예와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일러주는 것이 특징이다.


평정, 마음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시간


실패가 없는 성공이나 완벽은 존재할 수 없다. 반복을 통해 한계를 극복해 나가며 가능의 한계를 통해 완벽으로 나아간다. 완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야말로 완벽이다. 간격은 사랑의 완성이다. 상대방과의 간격을 존중하는 연습을 통해 독립적인 인간, 온전한 세계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배움은 습관이다. 정신적 깨달음은 육체적 노동을 반복하면서 완성된다. 나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가치가 배움이며, 명심은 배움의 핵심을 담고 있다. 심장에 배움을 새기는 작업이 곧 명심이다. 마음의 지도는 의도이다. 자신의 임무를 아는 자는 인생의 지도를 가졌다. 하루라는 시간을 장악하기 위하여 사색을 하고, 그를 통해 얻는 삶의 나침반, 곧 의도는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의도는 고독을 통해 숙성된 내면의 소리이며,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임무를 알려준다. 진리는 셀 수 없는 사소함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운명과 개성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지금 여기 주어진 사소한 일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신은 사소한 것들에 있다." 스타일은 삶의 태도이자 삶의 방식이다. 스타일은 나를 나답게 해주는 삶의 문법이자, 하루라는 시간을 가치 있게 재창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과는 지혜보다 지혜롭고 정의보다 정의롭다. 인과의 질서가 깨진 상태가 곧 카오스, 혼돈이다. 그러나 인과를 습득한 사람의 삶은 단순 명료하다. 우주의 원칙인 인과는 善의 열매를 맺게 한다. 


부동,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준비는 최선의 실력이 나오도록 자신을 몰입하게 하는 시발점이다. 우리는 묻는다. 오늘을 위하여 어떤 준비를 했으며, 내일을 위해 오늘 하루 어떤 준비를 하였는가. 그러므로 위대한 개인은 삶의 디자인을 선택하고 목숨처럼 아낀다. 디자인은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나만이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할 때, 그 디자인은 독창적이고 독보적이다. 거룩한 '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이 곧 디자인이며, 현재의 나를 통해 실현하는 합일의 예술이다. 나만의 고유는 나를 온전하게 만들며 나를 만족시킨다. 매일 새롭게 발견되는 변화는 고유한 보석이다. 중심이 변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무너져버린 사람이다. 중심 안에 사는 자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유롭다.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안주하는 자기중심이 있어야만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마음의 내성은 끊임없이 유혹하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날 버려야 할 감정을 씻어내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평정이 바로 내성이다. 무위는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아니다. 무위는 정교한 인위다. 오랜 연습과 훈련, 시행착오와 수정을 통해 자기 점검과 변화를 거쳐 도달하는 세렌디피티다. 창조는 곧 무위의 실천이며, '더 하기'가 아니라 '안 하기'와 같다. 즉,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판타지아는 감정을 현혹하는 허상들이다. 무의식적으로 매료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면 헤매기 마련이다. 불가피하게 몰려오는 인생이라는 파도와 판타지아를 제어하기 위해 사람은 자신만의 마음속 안정장치가 필요하다.


포부, 내가 나에게 바라는 간절한 부탁


대오는 우주라는 무한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수고다. 진리는 무한정하며 인간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은 앎에 대한 호기심, 앎을 확장하기 위한 수련, 앎을 통해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이다. 앎은 자신의 세계가 불완전하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지식은 우연히 주어진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편견과 왜곡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타심이며, 인간만이 자비를 자발적으로 발휘한다. 교육은 공부를 통해 자비를 발견하고 발휘하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 각자가 지닌 재능은 존재의 핵심이다. 재능은 사람마다 독특하고 유별하며 자신의 영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의미는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며, 목적은 재능을 나누는 것이라고 하였다. 재능을 방치하고 무시한다면, 공동체의 해가 될 수 있는 무서운 것이다. 의무는 자발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위한 원동력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고유의 의무를 다한다면 인간의 탁월함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새로운 길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나타난다. 과거에 안주하며 위험을 회피할 것인가, 경계를 넘어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는 용기 있는 자의 선택에 달렸다. 교육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다양한 선택 속에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찾도록 도와준다. 자유인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찾아 추구하는 사람이며, 교육은 이를 위해 필요하다. 열망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오래된 자신과 묵묵히 경쟁하는 자이다. 자기와의 경쟁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어야 신적인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 


개벽, 나를 깨우는 고요한 울림


카오스, 즉 '혼돈'은 없음이며 동시에 있음이다. 눈물은 과거의 자신을 분리하고 떼어내는 행위이며, 마음의 가식, 이기심, 집착 등을 강제로 떼어내어 새로운 출발을 촉구한다. 눈물은 분리이자 시작이며 죽음이자 생명이다. 인간만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동물이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장소에 몰입하는 신적인 인간은 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시간이라는 원칙 안에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그러므로 '지금과 여기'에 몰입하기 위해 정복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의견, 선택, 욕망, 회피를 포함한 행위들이다. 조절할 수 없는 것은 늙음, 재산, 명성, 고위직이다.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정복하려는 욕심은 어리석다. 행복은 스스로를 조용히 변화하려는 자신에게 승복하는 내적이며 사적인 용기이다. 부사는 삶의 태도를 담은 단어이다. 흔히 사람들은 '무엇'이라는 명사에 집착하려 하지 '어떻게'라는 부사에 소홀하다. 그러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보낼 것인가가 명사보다 더 중요하다. 절제는 자기 보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고결을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이다. 복이 있는 사람의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신을 지키는 절제, 즉 중용이다. 상대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인격과 숭고함을 지키기 위한 힘이 절제라 할 수 있다. 세상은 태어나기 전에도 존재했으며, 죽은 뒤에도 존재할 것이다. 시작과 끝은 큰 의미가 없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시작한' 그 중간이 진정한 시작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인간은 한정된 사긴에 최선을 발휘한다. '지금'보다 더 시급한 시작은 없다. 침묵은 자기 훈련이자 자기 절제이다. 인생의 어려움이 닥칠 때, 큰 시험은 숨겨진 잠재력을 일깨워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도해준다. 궂은 길, 먼 길을 지름길로 생각하고 우직(迂直)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키퍼는 우주의 질서가 무너진 '혼돈의 세계'를 '그릇의 깨짐'으로 설명했다. '그릇의 깨짐'은 회복을 위한 시작이다. 내 안의 그릇을 깨트릴 시간, 곧 자신을 발견하고 구축하는 과정이 회복인 것이다. 






다이몬은 '천사'이자 '악마'이다. 혹은 신, 천재, 힘, 운명... 모든 의미를 포함하며 새로운 시선을 요구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8개의 화두가 곧 다이몬이다. 다이몬은 '스스로 완벽한 자'가 되도록 훈련시켜주는 혹독한 과정이자 시련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에 달려 있다. 어제와 다른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적은 오늘도 기꺼이 입을 다물고 마음의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고요한 정적 안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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