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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y 04. 2020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

#23_논픽션 대가의 글쓰기 과정에 대하여


(263) 운이 좋아 비로소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 만들었다, 뭔가 쓸만한 걸 안전하게 확보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두 번째 원고가 끝나갈 때쯤이다. 이건 더없이 반가운 느낌이지만 희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수명이 약간 연장된 듯한 느낌, 내달 중순까지는 살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일 따름이다. 두 번째 원고를 소리 내어 낭독하고 (읽을 때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잡음을 쳐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째 퇴고를 거친 다음에는, '네 번째 원고'를 위해 단어와 어구에 연필로 네모를 친다. 집필 과정에서 내가 즐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네 번째 원고 작업이다. 나는 네모 안의 단어들을 대체할 다른 말을 찾아 헤맨다.


존 맥피는 '네 번째 원고' 작업을 가장 즐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모 안에 들어갈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온갖 유의어와 동의어, 사전의 뜻풀이까지 샅샅이 찾아 헤맨다. 끝없는 퇴고의 작업, 그 속에서 적확한 단어와 문장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싸움, 그는 홀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완성된 문장 앞에서 승리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찰나, 그는 다시 고통에 빠져든다. 이러한 고통과 살아 있다는 안도감을 반복하며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논픽션의 대가라 불리는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는 1975년부터 프린스턴에서 가르쳐온 글쓰기 강의록이다. 이 강의는 그의 삶에 엄격한 구조를 부여했으며, 강의하는 학기 중에는 집필을 전혀 하지 않고, 집필 중에도 강의를 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윤작'이라고 부르며, 강의와 집필을 교대로 해온 덕에 집필에 더 큰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중요한 테마는 보존이다. 즉 있음과 없음, 머무름과 떠남, 존재와 무(無) 사이의 끝없는 긴장이다. 맥피에게 모든 것이 이전 세계의 연대기다. 그에게 배움이란 세계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그것을 사랑하고 음미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알맞은 구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의 글쓰기 작업은 연쇄에서 시작된다. 'ABC/D'라고 적어 놓은 종이를 게시판에 핀으로 고정한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테마조차, '누구'에 관한 생각조차 없다. 애초에 모든 것이 추상적일 뿐이다. 먼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시작해서 자료를 모으고 거기서부터 구조를 잡는 것이 일방적인 방법이지만, 맥피는 『대사제와의 조우』라는 책을 쓰면서, 위의 구조도를 활용한다. 네 명의 인물을 한 편의 글을 담은 프로파일을 써보기로 한 것이다. 한 인물 (D)가 다른 세 인물 (A, B, C)와 각각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D를 드러낸다.



(291) 글쓰기는 선별이다. 글을 시작만 하려 해도 언어에 존재하는 100만여 개의 단어 중에 한 단어, 딱 한 단어를 택해야 한다. 이제 앞으로 나아간다. 다음 단어로는 뭐가 올까? 다음 문장, 다음 단락, 다음 절, 다음 장은? 다음 사실 꾸러미는? 이렇게 무엇을 넣을지 선택하고 무엇을 안 넣을지 결정한다. 기본적으로 작가에게는 한 가지 기준만이 있을 뿐이다. 내 흥미를 끄는 건 넣고, 내 흥미를 끌지 않는 건 안 넣는다는 것. 비록 투박한 평가 방식이지만 이것이 여러분이 가진 전부다. 시장 조사는 잊어라. 무슨 글을 쓸지에 대해 절대 시장 조사를 하지 마라. 가는 길에 도사린 온갖 중단, 재출발, 망설임, 기타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있을 만큼 흥미를 가진 주제에 대해 써라.



맥피는 구조에 집착한다. "강하고 견실하고 교묘한 구조,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게끔 만드는 구조를 세워라. 논픽션의 설득력 있는 구조는 픽션의 스토리라인과 유사하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독자가 구조를 눈치채게 하면 안 된다. 구조는 글감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글감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한 편의 글이 어딘가에서 출발하여, 어딘가로 가서, 그 자리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맥피는 다양한 예시와 도표와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한편, 도입부를 쓰기 전까지 구조의 틀을 잡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패턴이 보이지 않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럴 땐 모든 것을 중단하는 것도 좋다. 차라리 좋은 글머리를 찾아 머릿속을 뒤져라. 그리고 바로 써라. 도입부를 쓰라. 쓸모 있는 도입부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잘 쓴 도입부는 글의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여 글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일단 도입부를 찾고 구조를 세웠다면 이제 자유롭게 쓸 일만 남았다. 사실, 좋은 도입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맥피는 자기 눈에는 항상 어디서 끝을 맺을지 보인다고 했다. 구조에 집착한 결과임이 확실하다며, 사람들이 이게 끝이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냥 안다."라고 말할 것이다.


(120) 초고를 쓰고 다시 수정하고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이제 더 이상 해볼 게 없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언제가 끝일까? 그냥 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다. 내가 아는 건, 이보다 더 잘할 순 없다, 다른 사람이면 더 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여기까지다, 하면 거기서 끝낸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글쓰기에 관한 풍부한 경험에서 다양한 예시를 걷어 올려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편집자들과 발행인, 그리고 인터뷰를 한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대화하듯 풀어낸다. 그들이 지닌 노하우와 습관, 일하는 방식, 그리고 표정까지, 그들을 향한 애정을 피력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보다 그들이 평소 하는 일을 관찰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상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사소한 몸짓이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295) "산문 작가가 자신이 쓰는 것에 대해 충분히 안다면 아는 내용을 생략할 수 있으며, 충분히 진실되게 쓰고 있다면 독자에게는 이렇게 생략된 내용이 작가가 말한 것만큼이나 강렬하게 느껴질 것이다. 빙산의 움직임이 갖는 위엄은 그것의 8분의 1만이 물 위에 나와 있다는 데 바탕한다." 이 두 문장은 헤밍웨이의 논픽션 저서인 『오후의 죽음』(1932)에 실린 것이다. 이는 픽션에도 손쉽게 적용된다. 헤밍웨이는 이 개념을 '생략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글을 쓸 때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참조 틀을 활용한다. 참조 틀이란 글을 쓸 때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인유한 사물이나 사람을 뜻한다. 또한, 사실 확인이 필요할 때는 팩트 체크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노트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뭘 하고 있으며 어디에 실리는지를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젊은 작가라면,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작가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려면 일찍부터 모든 장르의 글을 써봐야 한다. 많이 써라. 자신이 어떤 장르에 가장 잘 어울리며, 어디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려면 기꺼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257) 내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모조리 자신이 없고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갇혔다는 느낌이 든다면, 절대로 써내지 못할 것 같고 작가로서 재능이 없다는 확신이 든다면, 내 글이 실패작이 될 게 빤히 보이고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면, 당신은 작가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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