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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위한 표준화(AI, Design System)

by Shaun

디자인에 창조력이 필요하다는 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단지 디자인뿐이겠는가! 디자인을 설계라는 큰 개념으로 정의하면 사실 우리가 사회에서 계획하고 설계하는 모든 것에 창조력이라는 힘이 필요하다. 내가 주니어 시절 디자인을 할 때 창조력은 스타 시니어 디자이너의 독점이었다. 주니어보다는 시니어의 아이디어가 인정되는 프로젝트가 많았고, 실제로 시니어의 아이디어가 더 실용적이고 완성도가 있었다. 그리고 스타 시니어 디자이너의 아웃풋은 그만의 디자인 철학을 항상 반영하고 있었다.


UI 플랫폼 디자인에서 디자인 시스템이 이슈가 된 지 7~8년이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AI 열풍으로 위기감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디자인 시스템이 처음 이슈가 됐을 때 효율성과 협업의 관점으로만 인식 됐는데, 사실 디자인 시스템은 작게는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의 표준화이면서 크게는 창조를 위한 표준화다.






디자인 표준화의 시작,
'바우하우스'






규격화 또는 표준화의 시작

인류는 언제부터 규격이라는 기술을 발명하고 정의하게 되었을까? 근대 대부분의 혁신적인 기술들은 전쟁을 통해 개발되었다. 미국의 과학기술이 현재 최고인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때 개발한 기초과학의 힘이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서 전쟁에서 사용되고 증명된 기술들은 다시 경제발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레이더, GPS, 프라이팬의 코팅 기술, 인터넷 등 우리 사회 전반의 과학 기술들은 전쟁을 위해 개발된 기초과학의 산물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 보다 더 높은 무기 기술을 요구한다. 화살은 소총을 이길 수 없고, 단발 소총은 연발 소총을 이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을 이이기 위해서는 적 보다 더 높은 전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격화 또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이었던 때가 있었다.


1765년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그리보발 장군은 어디에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머스킷 총의 부품을 개발했다. 규격화된 부품의 머스킷총은 수리비용은 물론 제작 비용도 절감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당시의 모든 기계 장비들은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에 부품도 제작각이었다. 몰트와 너트의 규격도 없었고, 모든 부품이 단 하나의 장비를 위해서 만들어졌다. 방아쇠도 총열도 원래 제작된 총에만 맞을 뿐 다른 총에는 맞지 않았다. 규격화된 머스킷 부품은 전장에서 다른 머스킷 총의 부품으로 수리가 용이해 전장에서 적 보다 고장 난 소총의 빠른 수리와 생산이 가능했다. 당시 규격화된 머스킷 총의 부품 기술은 적 보다 우위에 있는 전쟁 기술이었다.


요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보도를 접하면 전장에서 군인들이 여러 가지 무기 부품을 개조해 새로운 무기로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 또한 표준화(규격화)라는 기술이 있기에 가능하다.


무기 개조 또한 창의력이라는 힘이 필요하다. 이는 전장의 군인들의 메타창조다. 좀 더 설명하자면 드론과 폭탄이 대상창조라면 드론 공격(폭탄)은 그 둘을 합친 메타창조다. 이 둘의 차이에 대해서는 바우하우스를 통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




디자인 표준화의 시작,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 바우하우스다. 바우하우스는 그렇게 오랜 전통과 인지도가 있는 학교는 아니었다.(1919년 설립, 1933년 나치 정권에 의해 강제 폐쇄) 바우하우스가 근래 유명해진 건 디터람스에서 다시 애플의 스티브잡스의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1960년 독일의 디자인 브랜드 브라운은 바우하우스(Bau Haus) 정신을 계승한 울름조형대학(Ulm School of Design)과의 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들은 당시 한창 떠오르기 시작하던 미드 센추리(Mid Century)의 모던한 무드와 어울릴만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구상했고, 디터람스는 이 점에 반해 당시 잘 알려진 회사가 아니었음에도 즉시 입사를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디터람스는 브라운의 임원 자리까지 올라가 경영 일선에 참여하면서 독일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이름 알렸다.


그런 디터람스의 디자인을 모방한 사람이 바로 애플의 스티브잡스다. 그는 디터람스의 모든 제품 디자인을 모방했고, 새롭게 해석하면서 현대적인 심플을 완성했다. 그리고 애플이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계승하는 것처럼 포장했다.


그렇다면 바우하우스는 무엇을 위해 세워졌을까? 독일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독일의 미래 산업을 위해 건축의 날개 아래 모든 예술을 담는다는 철학으로 바우하우스를 설립했지만 바우하우스는 여러 진통을 거치며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철학으로 성숙됐다. 당시 유럽은 혼돈의 시기였다.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 생산은 사기이며 완성도 또한 조악하다는 비판이 거셌다. 예를 들어 '공예는 예술인가, 기술인가?'의 논쟁은 영국에서 기계가 아닌 사람이 다시 정성 들여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미술공예운동으로 이어지고 기계 생산을 위한 '표준화는 창조성의 적인가?'라는 논쟁은 결국 집단적 창조를 위한 '표준화'로 이어졌다. 기술을 활용한 공예품의 대량 생산은 표준화가 필수다. 마치 지금의 AI 논쟁과 유사하다. AI을 활용한 비주얼, 시안 등의 대량 생산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표준화'를 통한 디자인은 창의적인가?

당시 독일공작연맹의 무지테우스의 규격화, 즉 '표준화'의 선언은 대량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다. 표준화를 통해서만 일반적이고 확실한 취향에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일 제품이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외국에 더 많은 수출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예술을 위한 예술'에 헌신하는 예술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시 바우하우스의 창립자 발터 그로피우스는 이 표준화 논쟁이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예술과 기술의 통합' 선언을 통해 수공업과 기술의 결정적 차이는 '표준화'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수의 예술가들은 표준화 선언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예술가는 본질적으로 감정이나 격렬한 개인주이자이며 동시에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창조자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일정한 형태나 규격을 강요하는 원리에는 결코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수출용 예술'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치, 현재 AI를 활용한 생성형 비주얼과 사람이 직접 제작한 비주얼의 상대성을 보여준다.




집단적 창조를 위한 '표준화'

아무리 창조가 개인의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창조는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창조는 생물학적 개인이 아닌 문화적 개인에 의해 완성된다. 즉, 사회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표준화'의 산물들을 기초로 새로운 편집. 즉 창조를 시도한다. 개인의 내면에서 비밀스럽게 진행되던 창조 과정을 방법론적으로 구성체화한 것이 바로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다. 집단적 창조가 가능하려면 표준화는 필수다.


[창조적 시선]에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메타 창조를 위해 표준화는 필수라고 주장한다. 디터람스의 디자인이 대상 창조라면 애플의 디자인은 메타 창조다. 즉 디터람스가 개발한 표준화된 디자인을 애플은 편집을 거처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으로 창조했다. 메타 창조를 위해서는 표준화는 필수다.


앞에서 말한 디자인 시스템을 통한 UI 디자인은 메타 창조다. 많은 디자인 조직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은 효율과 협업 이전에 집단적 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효율과 협업만을 위한 디자인 시스템은 큰 의미가 없다.


AI 또한 마찬가지다. 효율과 비용절감이 아닌 표준화를 통한 집단적 편집을 통해 창조가 가능하게 성장시켜야 한다. 그래야 집단내 소통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편집의 차원'이 높아지며 해체와 재구성의 편집 과정이 끊임없이 전개될 수 있다.


기술을 통한 표준화는 스타 디자이너에만 의존하는 개인적 창조에서 편집을 통한 집단적 창조로 디자인 트렌드를 이동시키고 있다.






바우하우스 tip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은 ‘아메리칸 모더니즘’과 고층 빌딩 디자인의 선구자로,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디자인 철학을 최초로 강조한 인물이다.

루이스 설리번의 건축 디자인

이 사상은 당시 장식 위주의 빅토리아 양식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으며, 바우하우스 운동의 이념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분쟁 시 이 사상을 반전시켜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로 바꿔 부르면서 디자인에 엄청난 힘을 실어 줬다. 바우하우스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도 설리번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수용했다. 그는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원리를 고수해 왔다”라고 밝혔고, 실제로 바우하우스에 기능 마이스터(공예가)와 형태 마이스터(예술가)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후 기능 마이스터 보다 형태 마이스터의 영향이 커진다.


철학적 배경

바우하우스는 윌리엄 모리스나 아르 누보와 같은 수공예 중심의 미술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와 연결되어, 기능 중심 설계가 예술적 가치를 해친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기능을 철저히 탐구할수록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 생각은 곧 산업 디자인과 현대 건축의 기초가 된다.


발터 그로피우스

“우리는 예술과 기술의 새로운 통일을 원한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바우하우스 선언(1919)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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