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자인을 할 때 전체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전체를 표현할 수 있는 각각의 부분에 대해 고민한다. 그 각각의 부분들은 전체와 연결되는 정체성과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에 부합하는 각각의 부분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설득력을 잃는다. 전체를 디자인하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디자인 툴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 메모장을 실행한다. 메모장은 아트 작업이 아닌 콘셉트를 설정하는 작업이다. 각각의 부분들은 콘셉트에 부합할수록 전체의 스토리가 단단해지고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아트 또한 콘셉트를 닮아 간다.
콘셉트는 전체를 관통한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각각의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각각의 부분들은 하나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며 하모니를 이룬다. 예를 들어 디자인을 할 때 로고와 패턴, 비주얼, 슬로건, 컬러, UI 등의 요소들을 따로따로 디자인하지 않는다. 하나의 전체 안에서 각각의 부분들이 디자인된다. 로고의 콘셉트 따로 패턴의 콘셉트 따로 디자인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각각의 부분들이 정체성과 일관성이 결여되어 하모니를 이루 못해 전체의 이야기로 인식할 수 없다. 디자이너는 전체를 먼저 디자인(설계)하고 각각의 부분(요소)들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자인 전체의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그에 반면 각 부분만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각 부분들을 따로 놓고 보면 그럴듯한 아웃풋이 완성된다. 하지만 각 부분들이 정체성과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아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니 전체의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설득력이 없는 디자인은 의미가 없다. 디자인의 설득력은 콘셉트에서 나온다. 콘셉트가 명확하고 목적에 부합할 때 비로소 디자인은 의미가 있다. 의미 없는 디자인인도 이쁘고 아름다울 수는 있으나 목적에 맞게 작동하기 어렵다. 디자인은 인식의 작동이다. 작동하지 않는 디자인, 큰 의미 없다.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는 1967년 6월에 발매된 비틀스의 여덟 번째 앨범 타이틀이다. 4개의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3200만 장이 판매된 이 앨범은 비틀스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서전트 페퍼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록 사상 최초의 콘셉트 앨범'이란 수식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일관성이다.
비틀스의 콘셉트 앨범이 발매되기 전까지 기존의 앨범들을 단순히 싱글 곡을 여러 개 엮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무관한 곡들의 모음을 앨범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에 반면 비틀스는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를 가지고 앨범을 만들었다. 이 앨범의 구성은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라는 가공의 밴드가 결성 2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을 연다는 설정이다. 이 앨범의 첫 번째 곡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떠들썩한 소리로 시작되고 멤버 소개와 박수, 함성 소리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런 연출은 당시 듣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판매 또한 특정한 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당시 앨범 시장은 싱글 앨범을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비틀스는 이 앨범 중에서 한 곡도 따로 판매하지 않았다. 그만큼 전체성을 중요시했다.
콘셉트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관점'이라고 정의한다. 비틀스의 서전트 페스트 앨범은 전체를 관통하는 표현의 가능성을 추구했고, 앨범뿐만 아니라 공연의 연출이나 패션, 말과 행동, 곡을 만드는 과정 등 창작자의 인생 전부를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어내는 것이 이제 음악 산업의 상식이 되었다.
전체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하나의 콘셉트 아래 각각의 부분들을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콘셉트는 디자인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콘셉트는 디자인에서 모든 사람에게 명확한 판단 기준을 부여한다. 하나의 디자인이 나오기까지는 무수한 의사 결정의 연속이다. 그럴 때 콘셉트는 판단 기준이 된다. 판단 기준이 없다면 각자의 취향과 선호도에만 의지하게 되어 합리적인 결정이 어렵다. 그리고 두 번째는 디자인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콘셉트가 없다면 큰 방향성부터 세세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일관되게 만들 수 없다. 명확한 콘셉트가 결여된 브랜드와 상품이 어딘가 조화되지 못한 짝짝이 같은 인상을 주는 이유다.
콘셉트는 의사 결정의 판단 기준이 되고,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가치의 설계도'다. 콘셉트를 설명할 때 '의미'와 '가치'라는 단어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의미와 가치를 먼저 디자인(설계) 해야 한다.
참고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