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디자인 아웃풋이 나오기까지 시안 작업을 하고 관련자들과 의견을 모아 공감되는 의견으로 방향을 정하고 다시 리뷰를 거처 최종 시안 작업이 완성된다. 그렇게 시안이 완성되면 최종 결정권자의 간택을 받는 시안이 최종 파이널 시안이 된다. 이번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결정권자에게 하는 최종 시안 리뷰에서 '시안의 개수가 많은 것이 과연 결정권자가 시안을 결정하는 것에 더 좋은 선택일까?'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또 어쩔 수 없이 많은 시안을 리뷰할 수밖에 없을 경우 많은 것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인지심리학은 사용자뿐 아닌 모든 인간에게 적용가능하다. 시안 리뷰에도 인지심리학이 필요한 이유다.
시안이 많아 결정하기 어렵다
힉의 법칙(Hick's Law)
01 리뷰하는 시안이 많으면 좋은 걸까?
02 선택지가 많아 결정하기 어렵다! '선택의 역설'
03 인지심리학 '힉의 법칙'
04 시안 리뷰에도 인지심리학이 필요하다
시안 작업을 할 때면 두 가지 부류의 디자이너가 있다. 시안의 개수를 최소로 집중해서 작업하는 디자이너와 시안의 개수를 최대한 많이 작업하는 디자이너. 나는 실무에서 실제로 두 부류의 디자이너를 수도 없이 봐왔고, 나 또한 두 부류 중 하나다. 내 경험상 시안이 적을수록 또는 많을수록 어느 한 방향이 정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안의 개수를 전략적으로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에이전시에서 주니어 시절 내가 많은 시안을 작업해 컨펌을 요청하면 디렉터는 "네가 자신이 없어서 시안을 이렇게 많이 잡았구나"라는 피드백을 들었다. 시안을 많이 작업하면 칭찬을 받을 줄 알았지만 디렉터의 눈에 그 많은 시안은 아이디어 부재의 면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디렉터는 목표와 부합하는 아이디어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시안 한 두 개만을 원했다. 이후 디렉터는 "시안작업 많이 하지 말고 한 두 개만 집중해서 가져와"라는 피드백을 주었다.
에이전시에서는 클라이언트에게 시안리뷰를 할 때 많은 시안을 원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는 명확하게 아이디어가 보이는 시안 2~3개 정도만을 원했다. 오히려 시안이 4개 이상일 때는 빠른 결정을 하지 못했다. 또는 "그래서 어떤 걸 고르라는 거예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 반대로 인하우스에서는 많은 시안을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성실한 디자이너로 인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네가 안 놀고 열심히 작업했구나!'같이 1차원적 사고를 하는 디렉터도 있었다. 이는 문화의 차이인데 크리에티브 조직은 시안의 개수가 아닌 아이디어에 집중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조직은 시안의 개수에 연연한다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없는 많은 수의 시안은 그리 의미가 있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디어가 많은 수의 시안은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한 번은 15~20개 정도의 시안을 리뷰하러 가는 디자이너를 본 적이 있었는데, 결국 디자인을 의뢰한 부서에는 아무 시안도 선택하지 못했다. 시안에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고 조형적 형태를 다수의 스타일로 보여주는 방식은 그리 권장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은 공감을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디어가 결정되고 그 아이디어의 조형적 형태를 다수의 시안으로 작업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시안 리뷰에서 중요한 건 개수보다 설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개수가 많으면 선택의 폭이 더 넓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 때문이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판단력이 흐려져, 선택지가 적을 때보다 안 좋은 결정을 내리거나 만족도가 낮아지는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개념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 컬럼비아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진이 진행한 잼 실험이 있다. 식품점에서 잼을 시식할 수 있도록 하고 실험 조건을 두 가지로 나눴다. 한쪽에는 24가지의 잼을, 다른 한쪽에는 6가지의 잼을 진열했다. 실험 결과, 24가지의 잼을 진열했을 때 시식한 고객이 더 많았지만, 6가지의 잼을 진열했을 때 실제 구매율이 10배 이상 높았다.
최종 시안 리뷰 시 많은 시안을 가져가는 디자이너는 자신이 이렇게 많은 시안을 준비했다는 보여주기식 의도가 다분하다.
다수의 시안을 스토리텔링 방식이 아닌 1차원적 형태로 리뷰 한다면 최종 결정권자가 시안을 결정하기 어렵다.
힉의 법칙은 선택지의 수와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수록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선택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겠지만, 부득이하게 다수의 시안을 보여줄 때는 시각적 단순화 가 중요하다. 시안을 보여줄 때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더 중요한 시안을 시각적으로 강조하여 우선순위를 두어 보여주면 선택하는 사람이 더 수월하게 선택할 수 있다.
시안도 우선순위가 있다. 분명 더 중요하고 어필하고 싶은 시안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시안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인데 대부분 아이디어가 보이지 않을 때 그렇다.
우선순위를 정해 강조하고 싶은 시안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고 나머지 시안은 강조하고 싶은 시안을 보조하면 된다.
그리고 시안은 한 화면에 하나만 볼 수 있게 리뷰하는 것이 좋다. 다수의 시안을 한 화면에 보여주는 것은 각각의 시안의 임팩트를 떨어트린다. 보는 사람이 한 화면 하나의 시안에 집중할 수 있게 구성하면 좋다.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면은 리뷰 마지막에 보여줘도 된다.
실제로 주니어 시절 당시 디렉터는 시안 리뷰 전날 클라이언트에게 최종 시안을 어떻게 보여줄지 많은 고민을 하고 디자이너들과 토론했다. 시안 작업도 중요하지만 시안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