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의 표면적 차이점보다는 그 깊이 숨겨진 트렌드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디자이너인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점적으로 오갔던 내용은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흔히 질문을 받는 토픽이라서 꼭 나의 생각을 글로 한번 써보고 싶었다.
이 글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와 아닌 자, 즉 디자인 비전공자에 대한 얘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차이점에 대해 사람들이 토론하는 것의 시작이 디자이너의 역할이 얼마나 다양해지고 중요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디자인이라는 단어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에 대한 해석이 변화하는 동시에, 필요로 하는 능력이 진화하고 있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친구는 요즘 디자이너로 채용되는 디자이너들의 배경과 전공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친구가 나에게 말해준 점은 매우 흥미로웠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디자인 비전공자가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굳이 디자인을 전공해서 디자이너가 되는 것보다는 다른 전공을 통해 지원하는 사람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은가 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학생이 디자인을 혼자 배워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열정을 보이면 디자인을 전공해서 디자이너가 되는 사람보다 더 회사 입장에서 흥미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링크드인 통해, 인턴쉽이나 신입 디자이너로 채용되는 친구들 중에 컴퓨터공학, 심리학 등 디자인이 아닌 다른 전공에서 채용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한 말이었다.
때문에, 디자인을 전공한 내 친구 말론, 후배들이 "어떻게 하면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될 수 있을까요? 다른 친구들은 심리학이나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로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서 온다는데..."라고 물어보면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포트폴리오의 형태도 비슷비슷해지는 이 시국에, 취업을 앞둔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을 고민하는 지금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아니, 솔직히 이해가 되긴 했지만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좀 더 얘기를 듣고 싶었고, 대화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리액션은, "디자인 비전공자가 디자이너로 채용이 됐다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었겠지.. 그리고 아직도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전공자들인데?"였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나처럼 학부 땐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을 HCI라는 융합학문으로 지원한 사람들은 디자인 비전공자로 분류되기엔 살짝 애매한 점이 있다. 오히려 이처럼 디자인에 "입문"한 사람들은 더 이상 디자인 비전공자가 아닌 다른 전공에서 디자인으로 전향한 디자인 "전공자"로 분류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사람에 따라 어떻게 이해하고 인용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배운 디자인은 pixel-perfectness 나 craftmanship 보다는 problem solving과 communication에 집중되어있다. 반대로 옛날부터 그래픽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각종 -ism과 산업디자인을 정석으로 배웠던 디자이너들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gap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gap은 내가 지금 현재 디자인을 할 때 많이 중요하지 않다. (분명, 좋은 디자인을, 그리고 좋은 사용자 경험 (UX)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이는 UI와 Interaction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스킬을 있어야 한다)
예전에 소규모 디자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옛날 중세시대의 미술부터 산업디자인, 스큐어모피즘 등 여러 가지 내가 아직도 이해 못하는 단어와 컨셉들이 많이 오갔다. 두 시간 남짓 동안 대화를 침이 튀기도록 열변을 토해가며 대화하는 다른 디자이너들의 얘기를 최대한 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머릿속으로 스쳐간 것들은 "이게 나에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지..."와 같은 비슷한 생각들이었는데 솔직히 제일 공감이 되지 않았던 점은, 요즘 디자이너들은 이런 것을 배우지도 않고 디자인에 대한 역사도 모른 채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친구가 고민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와 비슷한 케이스로 타전공에서 디자인 관련 석사를 하고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정석으로 디자인을 배워온 사람들보다 취직하기 쉽다는 점이었을까? 아니면, 디자인 학부와 석사를 나온 사람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타 전공에서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이미 디자인을 학부 때 전공한 사람들은 취직을 안 하고 굳이 왜 또 석사를 디자인으로 하는 건가?라는 궁금증도 던져보았다.
분명 여기 미국에는, 타국에서 디자인 전공을 한 많은 학생 및 현업 디자이너들이 대학원을 통해 미국에 취직하는 방식이 흔하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학부가 컴퓨터 공학이면서도 1년 또는 2년짜리 미국에서의 석사를 통해 취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미국이란 나라에만 해당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혹시... 내 친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디자인이라는 학문이, 그리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옛날에 비해선 너무 generalize 해지지 않았나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왜냐하면 요즘 HCI 같은 프로그램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래의 UX Design/Product Design 직장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옛날에 흔히 말하는 "디자인"에 대한 기초의 스킬이 (foundational skill) 부족함은 당연하고, 2년짜리 석사라고 쳐도 1학년 1학기부터 인턴쉽을 찾기 때문에 사실은 몇 달 동안 배운 것을 가지고 인터뷰를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Visual Design 수업에서 흔히 배우는 color theory, typography, layout 등을 몇 달에 걸쳐 배우지도 않고 각종 디자인 툴을 사용해 표현해 낼 수 있다면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학부로 컴퓨터 공학을 했던 친구가 디자인 석사를 진학해서 3개월 동안 디자인을 배우면 포트폴리오에는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포장한다. 이런 것을 예전부터 정석의 길을 걸었던 디자이너를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인턴이 옆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다면 stereotype은 더 굳어지기 마련이다. 장인정신의 Craft에 중심을 둔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그들이 겪어온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그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할까?
솔직히, 이것은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진화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기 때문에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기엔 너무 철없고 무지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겪어야 할 성장통이 아닌가 싶다.
디자인 시스템 (Design System)들이 활개 치면서 디자이너들이 pixel-perfect 하게 손수 작업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줄었고 component들을 짜집기 하면서 UI를 찍어내는 것에 목매달기보다는, 유저의 입장에서 서서 그들이 제품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지라는 고민들을 더 중요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케치에서 pixel하나하나를 옮기는 시간보다 유저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2년이라는 석사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좀 더 design process나 user research, product thinking이나 communication에 대한 집중을 하는 것도 말이 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Visual Design에 대한 컨셉들을 필요할 때 그때그때 참고해도 된다는 생각도 존재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하자면, 디자이너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가 아니다. 즉, 디자인 전공자 또는 비전공자를 나누면서 생각하는 게 애초에 접근이 잘못된다는 거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디자인 툴들을 멋지게 미친 듯이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자신이 코딩을 못해서, 빠른 시간 안에 UI Design을 못하는데 남이 만들어 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난 디자이너임을 판단할 수 없고 자신이 디자인이 아닌 다른 전공에서 넘어왔다고 해서 작아질 필요도 없다.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디자이너로써 맡겨진 프로젝트 또는 제품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고 유저들의 니즈에 대해 끝없이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 디자이너인 것 같다. 또한, 회사의 목표가 무엇인지, 팀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며 비즈니스도 생각해야 하며 자신의 강점이 뭐가 됐던 살려야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툴을 사용할 줄 알며 어느 정도의 감각적인 디자인을 해야 하는 사람이 더 원하는 목표에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머릿속에 있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들과 그동안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자니 생각보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Hopefully,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지금까지 그랬듯, 항상 진화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신이 어떤 제품에서 일을 하고 어떤 스타일의 팀 멤버를 만났는지에 따라 필요한 역량들이 달라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어떤 툴에 집중하거나 예전에 있었던 디자인들에 대해 목을 메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변화에 대해 대응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기르는 동시에, 항상 유저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팀과 회사의 strategy에 최고로 기여하고 할 수 있는지를 더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