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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쿵펀 Apr 01. 2016

회사 때려 치우고 여행 02

홋카이도 국제미아

이 글은 2012년 직장을 때려치우고 100일간 여행을 한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날씨나 지금 시간에 딱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약탐지견 분잡하게 뛰어 다님

 공항에 내 짐은 대형 수화물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나오지 않는다. 대형 수화물이 나오는 쪽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마약탐지견이 킁킁 냄새를 맡고 돌아다닌다. 귀엽긴 한데 장소가 좁아서 뛰지 않아도 될 거리를 사람과 함께 마구 뛰어다닌다.

 짐을 찾아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공항을 나선다. 나 같이 가난한 여행자를 누가 잡겠나 했는데, 세관 통화하는 데 결국 박스를 열어 보란다. pardon? do you want me to open this box? are you sure? 그냥 멀뚱멀뚱 날 쳐다본다. 영어 잘 못하나 생각하다가 결국 싸 놓은 짐을 다 열었다. 다 뒤진다. 내 속도 뒤집어진다. 자전거 분해한 것, 부품, 라면에 즉석국 다 쏟아진다. 서로 미안해지기 시작하는데 통과하란다.

조립하고 나니 꽤 있어 보임

처음에 분해해서 박스에 넣을 때는 고민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조립이 어렵지는 않았다. 여행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반은 겁주는 말들 뿐이다. 실제로 위험한 경우도 있고, 3분의 1은 자신이 다녀온 여행이 어려웠노라 자랑하는 경우도 꽤 있다.  조립 완료! 자! 이제 36번 국도를 타고 삿포로 시내로 가볼까!!

위험이라고는 없는 자전거 도로

날씨가 정말 좋았다. 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로 가는 길은 사진처럼 정말 잘 닦여 있고, 굳이 차도로 가지 않아도 길 양 옆에는 자전거가 다닐만한 길들이 있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페니어(자전거에 다는 가방) 무게도 느껴보고 날씨도 좋고 기분도 날아갈 듯하다. ‘그래 이런 자유! 내가 원하던 거야’ 라며 혼자 빙긋이 웃어 본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일본인 이케다 씨의 집에 오늘 하루 묵기로 했다. 구글 맵을 통해서 확인한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아서 저녁 식사 전에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 여행자의 사치 포카리 스웨트

달리다 보니 물을 한 방울도 안 먹었다. 편의점에서 나오는데 점원이 뭐라 뭐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계산된 돈만 내고 나왔다. 아마 힘내라는 말이겠지? ‘으아! 꿀맛이다.’ ‘역시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이런 거야’ 라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우어어어!

하늘에는 장관이 펼쳐진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한참을 달렸다. 홋카이도는 한적하고 정말 아름다운 동네 느낌이었다.  이름 모를 동상도 찍어보고 이때까진 기분이 좋았다.  

낭자 그렇게 있지만 말고 여기가 어딘지 말해보시오!

한참을 달리다가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길을 잘못 들었다. 오늘 온라인 커뮤니티, 웜 샤워를 통해 재워주기로 한 켄이치 상에게 전화를 해본다. 역시 생각대로 잘못 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방향을 바꿔서 가는데 은근한 오르막길이 나와서 정말 피곤하고 죽을 맛이다.

너..너무 맛있어

배도 고파오고, 잠도 못 잔 상태에서 페니어를 달고 달리니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결국 이러다가 큰일 나지 싶어서 급히 세븐일레븐으로 뛰어 들어가 초코바를 먹었다.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사라진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

살려줘!

 결국 나는 국제 미아가 된다. 그의 집은 주택가 한 가운데인데 생각보다 찾아가는 길이 너무 복잡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도 있고 켄이치 상이 나를 픽업하러 온다고 한다. '나를 위해 차를 가지고 와 주는 건가?' 몸이 너무 피곤했던 나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장발의 켄이치 상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아... 그래 우린 자전거 여행자였지.... 겨우겨우 도착하니 뉴질랜드 여행자도와 있었다. 나는 이제 겨우 일본 여행이 시작인데,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몇 년간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나는 풋내기라서 이야기에 거의 낄 수가 없다. 그저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봐주는 수밖에, 제가 이 여행을 시작할 때 다들 미쳤다고, 왜 그러냐고 했지만 정말 미친 사람은 여기 있었다. 하하, 친구들에게 그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


 씻고 나와서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이 사람들은 세계여행 얘기로 끝이 없다. ‘가보기 전엔 죽지 마라 ‘의 저자 이시다 유스케가 여러 명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꾸벅 거리자 서로 눈치를 보더니 자러 가기 시작한다.

얘네들도 졸렸나 보다. 여행의 첫날 일정을 힘들게 잡지 말자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내 여행의 첫날이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아무 소속도 없이, 이국 땅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서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이제 시작이다. 막상 누우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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