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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둥둥 May 04. 2024

부르트고 울퉁불퉁한 엄마의 손가락

세상에서 가장 값진 손

봄이 찾아오기 전에 잠시 만난 남자가 있었다. 그 애를 '만났다'고 표현하기가 너무 짧고 애매해서 잠시 스쳤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는 내 손이 작다고 하면서도 "되게 고생한 손 같아."라고 말했었다. 말랑말랑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본 것 같이 부드럽고 하얀 그의 손에 비해 내 손은 다부지고 주름이 져 있다. 부드러움 따위는 없고 손에 주름이 좀 있고 땡땡한 손이다.  


‘고생한 손’이라는 말이 잠시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엄마 손을 보며 다시 떠올랐다. 엄마는 오랜 식당 일로 무리를 해 회전근개 수술을 하고 1년 반 정도를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허리 시술도 두 번이나 했고 발에도 관절염이 있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식당일을 하면서 손에 관절염이 생겨 울퉁불퉁하다. 최근에는 장갑을 끼지 않고 일하다가 손이 많이 상해서 왔다. 거기에 쉬는 날엔 자꾸 산에 가서 뭔가를 뜯어오는데 나물을 손질하다 보면 손에 가시가 박히는듯 하다.


한 번은 가시가 박힌 게 잘 안 보여서 몰랐던 엄마는 자꾸 따끔거리는 부위가 있다며 봐달라고 했다. 상처가 있지 않느냐고. 그저 일을 하다 옆 손가락 마디도 다쳤으니 그것처럼 상처가 크게 있어 따가운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알고보니 가시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나는 나물 손질할 때 장갑을 끼던지, 나물을 그만 뜯어오라고 잔소리하며 거뭇하게 박혀 있는 가시를 손톱으로 빼내 주었다.


엄마 손은 왜 이렇게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거야. 속상하게. 그놈의 나물 좀 그만 뜯어 오지. 식당일 말고 다른 일 좀 하지. 용돈벌이 식으로 벌면 될 텐데 뭘 그렇게 하루에 열 시간씩 일 시키는 식당을 가서 고생을 하는 걸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7년 전에도 엄마의 부르트고 구부러진 손가락을 안쓰러워했었다. 하지만 그 손이 있었기에 학원도 다니고 매일 아침마다 아침밥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거친 손이 안쓰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엄마의 손모양을 쏙빼 닮았다. 부르트고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한 것 빼고 모양과 거칠기가 비슷하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몸 쓰며 일하는 것들을 꽤 많이 했다. 바리스타, 주방보조, 하우스키퍼, 고기공장 팩커, 타일 몰딩, 오피스 청소, 편의점, 식당 서빙... 나열하고 보니까 내 손도 부드럽지 않은 이유가 유전도 있겠지만 일의 영향도 있겠구나 싶다.


결국 엄마 손도, 내 손도 '고생한 손'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손이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청소와 설거지를 부지런히 해서 엄마 손이 좀 쉴 수 있게 해야지.


독립도 하고 시집도 가고 해서 걱정을 덜어야 할텐데. 언제 갈지는 몰라도 일단 열심히 살자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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