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르게이 Apr 01. 2018

천천히 걷고 속삭이는 사람들

세르게이 연재일기_산티아고


< Samos >

D+26

423.3 km

477,430 STEP



성당 안은 엄숙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가도 모르게 속삭이게 되는 장소이다. 청장은 실내 체육관 처럼 높고, 기둥 사이사이 동상들이 서있었다. 군데 군데 켜져있는 초는 그 무게를 더 했다. 살금 살금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나무 바닥이 삐그덕 소리는 낸다.


신부는 십자가 모양이 있는 커다라고 하얀 천을 두르고 나왔다. 신부님의 거대한 복부가 옷의 일부를 받쳐 들고 있다.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신부의 목소리가 온 성당 내부에 웅장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모자를 벗어 내려 놓고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이어지는 젊은 신부의 연설은 이전 신부의 것에 비해 다소 가볍게 느껴졌지만, 사방에 높게 뻗은 기둥과 동상들이 그의 말에 귀기울인다.


흰색과 금색의 조화는 신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천국이나 신계따위의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 앉은 한국인 신부님은 스페인어를 알아들으시는지 종종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셨고, 메모도 하시면서 말씀을 들으신다. 나는 한국인 신분님을 따라했다. 그가 무릎을 꿇을때 같이 꿇어 앉았고, 자리에 있어설때 같이 일어섰다.


기둥 그림자에 가려 어둠속에 묻힌 저 동상은 검을 하늘 높이 들고 있다. 왼발은 목이 잘린 사람의 머리를 밟고 있다. 동상은 발 밑의 머리가 가소로웠는지 눈을 살짝 감듯 뜨고 있다.


한편 빛이 가장 잘빛추는 곳에 있는 예수님동상은 마치 참을 수 없는 불의를 보듯이, 무언가를 지긋이 바라보며 양손을 다소곳이 모아 다리에 올려 놓았다.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고맙다’, ‘그리스도’, ‘여러분’ 세가지 단어 뿐이 었지만, 신부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신부는 한국에 신부와 다르게 오르간이나 피아노, 라디오 등 에서 나오는 반주없이 목소리로만 노래를 부른다. 깊게 파인 눈을 지긋이 감고 소리에 집중하는 신부의 모습은 깊은 고뇌가 가득해 보인다.


태어날때부터 천주교 였던 나는 당당히 천주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베드로라는 이름이 있다. 12제자중 1번인 베드로라는 이름을 내가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 중 갑자기 사람들이 서로서로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덩달아 앞 뒤에 있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덕분에 예쁘장한 프랑스인 교회 동생과 손을 잡았다. 신앙 가득한 교회 오빠가 됐다.


배불룩한 신부님과 젊은 신부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세사람이 함께 퇴장한다. 퇴장하는 동안 녹음된 오르간 음악이 흘러 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세사람 중 마지막 사람이 보이지 않을때 즈음 성당 불이 꺼지고 흘들리는 촛불이 간신히 성당 내부를 밝혔다. 노래는 한동안 지속됐고, 사람들은 한둘씩 성당을 빠져나갔다.


성당을 나온 뒤에도 엄숙함이 남아, 한동안 천천히 걷고 천천히 움직이며 나도 모르게 속삭이고 말을 아꼈다.

작가의 이전글 귀걸이 / 1000k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