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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Aug 10. 2016

떠날 준비 중

고백하자면 삶이 피곤해질 때마다 독일을 갈망했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실감할 때마다 사회 구성원이 합리적인 대화로 각종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을까, 그런 나라는 정녕 없을까 하고 궁금할 때마다 독일이 떠올랐다.


독일을 알면 알수록-

여자라서, 가난해서, 백이 없어서 놓친지도 모르고 지났던 기회가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의무를 다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실현 가능한 이야기임을, 기초적이고 당연한 권리가 힘의 논리나 경제력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와 교육과 자연을 위해 (제발 좀)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혜를 모으려는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나라.

열심히 일한 만큼 삶이 개선되지만, 일보다 가정을, 정체 모를 전체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을 존중하는 나라.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을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라.

슈퍼에 가서, 공장에 가서 보이는 그대로 믿고 물건 값을 치를 수 있는 나라.

그 슈퍼와 공장과 지하철에 매너 있고 키 큰 훈남들이 있는 나라.

아, 다시, 그 슈퍼와 공장과 지하철에 '우리 신랑만큼' 매너 있고 키 큰 훈남들이 있는 나라.


독일에 대한 이 모든 동경과 환상을 껴안고 거창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은 그저, "아주 짧은 여름휴가"이다.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들을 사진 찍듯 방문하고, 그 도시들을 잇는 도로를 속력껏 달려 보고, 깨끗한 산과 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캠핑을 하며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전부인 데다가 실제 체류 기간은 5일이 채 되지 않는 (가기 전부터 통탄할 만큼 아쉬어지는) 그런 여행이다.


또 한 가지 고백하자면, 기껏해야 침만 흘리다 올 여행이지만 여행 준비만큼은 독일에 평생 살 만큼 하고 있다.



독일어 공부   


유창하게 말이 통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들이 무슨 종류의 대화 중인지 눈치를 챌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여행의 깊이를 좌우한다. 불안감을 확 줄여 주기 때문이다.


유창하게 말이 통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들이 무슨 종류의 대화 중인지 눈치를 챌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여행의 깊이를 좌우한다. 불안감을 확 줄여 주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접하는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이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신비로움이다.

 


점심을 먹고 식당 바로 앞 카페로 직행해서 30분 정도 공부를 하고 있다.

무료 동영상 강의에 등장하는 강사님은 지루한 스타일이지만 왠지 입고 계신 스웨터마저 독일스러워서 좋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기술부 부장님이 책상까지 내주셔서 카페에 안 가도 되는 날이 왔다.

(독일에 가야 하는 운명인가?!라고 생각했다.)


기초 독일어 책을 한 번 정도 읽고, 편안하게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입에 붙게 챕터의 대화를 외웠더니

어느덧 신랑에게, Tschüs! Schönen Tag noch! 하고 인사를 하고 있다.


아구 재밌어.



독일 역사 문화 공부


선물 받았는데, 우리 신혼집에 욕조가 없다.

그래서 욕조 하나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선물 받은 입욕제를 풀고, 독일 역사책을 읽는다.

▲ 반신욕 하며 <독일사산책> 읽기

읽다 보니, <독일사 산책> 은 독일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읽다가 '대체 이 작가는 누구길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번 책 표지를 볼 정도로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다. 독일의 역사적인 장소 곳곳의 상징물들을 가지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읽다 보면 마치 베를린을 예나를 쾰른을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를 따라, 작가가 초빙한 역사가를 따라, 때로는 루터와 괴테를 따라 나의 시선이 옮겨지고 마음이 여행을 한다. 

여러 독일인의 국민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독일의 여행지로 알려진 여러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알고 싶었는데, 궁금증이 완벽 그 이상을 풀리고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동생이 도서관에 반납하려고 하는 <안네의 일기>도 가슴을 졸이며 읽고 있다.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지난주에는 압구정에 있는 현대카드 TRAVEL LIBRARY 에 다녀왔다. 


여행 관련 자료는 비교적 잘 구비해 놓았을 거라는 생각에 가게 됐다. '독일+남부' 책들을 모아 쌓아 두고 읽었다. 독일 북부에 비해 자료가 적긴 하지만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자료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러 권 보다 보니 우리가 이동 계획을 확정하고 다니지 않을 테니 가는 곳마다 정보가 좀 필요하겠다 싶어서 가이드 북 하나를 구입하기로 했다. 


가이드 북은 비교해 보아도 역시 론니 플래닛.

그동안 짬 날 때 했던 번역 알바로 번 달러가 Paypal 에 조금 있어서 <LONELY PLANET e-BOOK>을 사서 아이폰, 아이패드에 모두 장착 완료했다. (뿌듯..)


책뿐 아니라, 각종 여행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이미 마음은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다.

                


일정 짜기


한 도시에서 며칠 간 지내는 여행이 아니라 작은 마을들을 여러 군데 지나가는 여행이라서 동선을 짜기가 어렵다. 지도를 뽑아볼까, 구글맵에 별 표시를 해볼까 하다가 괜찮은 어플을 하나 발견했다. 

여행 일정 짜 주는 위시빈이라는 사이트인데, 일정표와 지도가 통합 연결되어 있고 항목 별로 예산도 자동 계산이 되어서 상당히 훌륭하다. 

"독일에 Bahn 하다" 라는 제목으로 일정을 짜 보았다.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때마다 입장료나 관광지 정보를 추가하는 중이라 일정표가 좀 복잡해졌지만, 실제로 다니면서 실현 가능한 일정으로 많이 바뀔 것이다.



준비물 목록  


풍경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줄 '안경'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운전 시 눈부심을 막아 안전을 지켜 줄 '선글라스' → 하나 잃어버려서 좌절 중이었는데, 우연히 하나가 공짜로 생겼다!

로맨틱한 밤을 만들어 줄 '와인 따개와 (플라스틱) 와인잔'

여행지 곳곳을 우리 만의 라이브 카페로 만들어 줄 '소형 블루투스 스피커'

푸른 풀 밭, 평화로운 강가를 만나면 바로 펼치고 앉을 수 있는 '돗자리 or 담요 등 깔 것'

아니, 아예 이불 펴고 잠을 자거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캠핑을 할 수 있는 '텐트 등 캠핑장비' → 남동생한테 빌림

핸드폰이 떨어지지도 않고 선을 복잡하게 연결할 필요 없이 커플 사진을 찍어 줄 '샤오미 블루투스 셀카봉'



운전 연습  


이래 봬도 1종 면허 소지자이지만,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한 건 올해 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20km/h로 달리면서도 무서워 덜덜 떨고, 운전하다가 큰 사거리에서 스트레스받아 울고 했던 내가 신랑 아닌 다른 사람까지 보조석에 태우고 날개 단 듯 돌아다니며 운전 연습을 하고 있다.

아기가 생기면 운전이 필수라길래 큰 맘먹고 시작하긴 했지만, 여름에 세운 단기적인 목표는 독일의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이랄까.

                              

▲ 핸드브레이크 켠 채 시내 달리기
▲ 가족 다 태우고 제천 놀러 가기
▲ 거제도 왕복


결혼은 하고 죽어야겠다고 내 차에 타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운전해서 거제도 다녀오겠다 했더니 혼자 운전은 힘들 거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버스 예약을 추천했던 친구도 있었다.

모두의 우려를 뒤로 하고, 이제는 주차 위반 딱지를 받는 경지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엄마 면허증 갱신하러 가는 길에 따라가서, 국제 운전 면허증까지 발급을 받았다. 

센스 없는 서울시 경찰청장님께서 무지하게 큰 이름 서명을 해 두어 실망스러웠지만.. 영광스러운 일이다.


▲ 국제 면허증 발급 받고, 선글라스를 두고 왔다 ㅠ


오늘은 PP 카드 기한을 연장 신청한 후 빨리 보내달라고 했고, 신랑이 렌터카를 결제 중이다.

가장 저렴한 건 폭스바겐.

우리 마음을 아는지, 조금만 더 추가해서 BMW를 빌리라고 추천한다.

나는 역시 벤츠가 끌리는데.. 


▲ BMW 를 추천해 주는 렌터카 사이트


▲ 결국 Benz 로 선택할 것 같다.


렌터카도 Paypal로 바로 USD 결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안된다니 환전 수수료에 카드 수수료까지 여러 번 나가는 것이 아깝다. 이제 겨우 보릿고개를 넘은 우리 집 가계부는 꾸준히 떨어지는 환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금 환전할 여유를 줄 생각은 없어 보이고 말이다. 


휴가철의 한가운데에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휴가를 떠난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자니 나도 어서 떠나고 싶을 뿐이다. 


운명처럼 우리를 부르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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