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칼부림, 서현역 칼부림 등 최근 칼부림 사건이 전국에서 우후죽순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칼부림 예고라는 글을 올려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어떤 이유로 그들은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대중들을 향해 칼을 휘두른 것일까?
출처 : JTBC 뉴스
출처 : JTBC 뉴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분노에 가득 차 범행했다."
신림동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 조씨는 범행 동기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기에 수많은 언론사에서도 본 사건과 관련한 취재를 진행하고 방송들을 송출했다. 나 또한 이 사건이 궁금해서 여러 방송을 찾아보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피의자 조씨에 대한 정보들을 살펴봤다.
조씨가 게임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무기로 전투를 벌이는 1인칭 게임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 취업과 결혼을 실패했다는 이야기.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 한 게임 유튜버를 비난하다가 모욕죄로 인해 고소당한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전과 3범에 소년부 송치 전력이 14건이라는 이야기 등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정보들을 찾다 보니 언제 터져도 터졌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보를 조금 더 찾아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의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가 범행을 저지른 전날, 그는 마치 자신이 범죄를 계획했던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컴퓨터에 남아있던 범죄를 준비하며 검색했던 기록을 모두 지웠다. 그런데, 다음 날 범죄를 저지른 후 경찰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자 근처 계단에 앉아서 마치 체포를 기다리는 듯 거만한 자세로 아무런 위협행동을 하지 않고 순순히 경찰에 체포당했다. 행동의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흔적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면서 한쪽으로는 '나 잡아가시오' 하는 행동을 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에게서 합리적인 일관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느낌이었다.
장애인복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혹시, 이 사람 경계성 지능인 아닐까?"
'경계성 지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은 IQ 점수 기준 71~84점으로 지적 장애인과 비지적 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에 분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지적 장애인으로 속하지는 않지만 보통 사람들보다는 지능 지수가 낮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또래 연령에 비해 학습능력이 느리고 , 적절한 상황 판단이나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감정 표현이나 의사소통에 서투른 특징을 보인다.
이 때문에 학교나 학원에서 그리고 또래 관계에서 학습 부진, 사회성이 없는 아이로 불리기도 하고 심할 경우 왕따,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는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있어도 정확하게 그 상황에 대해 자신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표현하지 못해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경계성 지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전체 인구의 12~14%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지 않는가?
문제는 이러한 '경계성 지능인'은 대부분 학교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어 학교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학교에서 선생님의 눈 밖에 날 가능성이 높고, 상황에 대한 적절한 판단 및 대처가 되지 않다 보니 또래 관계에서도 원활한 사회생활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도 떨어지게 된다. 뒤 돌아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던 것 같다.
혹시, 칼부림 사건이 피의자, 조씨도 이러한 과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 그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고 조사 과정에서도 밝혀지는 진술들에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답변들을 내놓는 것이 그가 경계선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중앙일보 뉴스
우연의 일치일까? 뉴스 영상을 찾아보던 중 조씨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는 그냥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이 나에게는 그가 그냥 처벌을 경감받기 위해 한 말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해서 그가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이 쓰인다.
출처 : KBS 시사 직격
한 조사에 따르면 법원 소년부에서 심판을 받는 보호 소년의 37%가 지적 장애 및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회에서 포용하지 못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은 이렇게 옳지 못한 방향으로 표출되기 쉽다는 것을 반증하는 통계이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우려되기도 한다. 자칫, 경계선 지능인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인식하는데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오히려, 피의자 조씨가 경계선 지능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사회가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을 보살피는데 실패하게 되면 이러한 왜곡된 '조커'를 만들게 된다는 것에 있다. 물론 살인과 같은 끔찍한 사건에 대한 처벌은 강력해야 하고 엄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처벌함과 동시에 사회적 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예방' 또한 중요하고 생각한다.
피의자 조씨가 살인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악마로 태어난 것일까?
토끼와 거북이 이솝우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발이 빠른 토끼는 교만한 나머지 시합 중간에 잠에 빠져버린다. 걸음이 느린 거북이는 성실하게 조금씩 결승선을 향해 걸어 나간다. 결국 잠에 들어 버린 토끼를 지나쳐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게 되는 이야기이다.
토끼와 거북이
갑자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계선 지능인'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다. 바로 '느린 학습자'이다.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학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학습의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한 번이면 학습하는 것을 수 차례의 반복학습을 통해 배우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학습하고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느린 학습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와 학습을 병행한 결과 일정 수준의 학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고 자아존중감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올해 정부에서는 전국의 느린 학습자 전수 조사를 실시하여 이런 학습자를 교육 제도로 포용하기 위해 노력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하였으며 느린 학습자의 실질문맹개선과 정보평등을 위해 일하고 있는 '피치마켓'에서는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적정 도서를 출판하고, 일반-특수학급 통합 독서 동아리를 운영하고,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특수교육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통의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가장 간편한 방법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해의 대부분은 무지에서 나온다. 느린 학습자, 경계선 지능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부터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선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느린 학습자의 공부> 등의 관련 책들이 있다. 이러한 책들을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혹시 자신의 주변에 조금 느려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조금 천천히 지켜봐 주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하나씩 해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인생이 일등과 꼴등을 가려야 하는 경주라면, 이런 느린 학습자를 기다리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나의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낙오되는 것은 그의 게으름과 불성실함, 능력 없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 일등과 꼴등을 가리는 경주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생은 여행과 같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조금 느리게 가는 사람들도 조금 빠르게 가는 사람들도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