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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 J Oct 29. 2017

비행 에피소드 #3

아이러니, 아이러니



"손님,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저희 어머니께서 숨쉬기 힘들어 하시는데 어디 빈좌석 없을까요?"

"바로 빈좌석 찾아보겠습니다. 혹시 어디가 불편하신 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심장이 안좋으세요. 부탁드립니다."

"혹시 의료진 필요하시면 기내방송으로 찾아봐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의사입니다."

"아.. 그렇다면 정말 안심입니다. 다른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몇일 전,  편찮으신 어머니와 비행기에 올라탄 승객분과 내가 나눈 대화이다.



승무원으로서 가장 걱정되고 마음이 많이 쓰이는 승객은 아무래도 몸이 편찮으신 승객분인것 같다.

튼튼하고 건장한 승객분들도 장시간의 비행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아기들은 기압차이로 귀가 아프다며 애처롭게 운다. 하물며 비행기를 타는 것이 직업인 승무원들도 다리가 퉁퉁붓기도 하며 비행이 가끔은 체력적으로 버겁고 힘들때가 있기에 건강이 안좋으신 승객분들은 얼마나 비행이 곤욕스러우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가 게이트와 멀어져 달리기 시작하고 굉음을 내며 하늘 가까이 닿아가면, 승무원들은 온전히 팀원들과 의지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중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힘들고 매번 어려운 순간은 환자 승객이

발생한 순간일 것이다.  


초기승무원의 유래는 간호사가 비행기에 타면서 부터 이다.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최우선순위인 현재의 승무원 업무와 어느정도 일맥상통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승무원은 필수적으로 CPR같은 기본적인 의료상식을 배우게 된다.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기에 전문적인 처치는 어렵겠지만 그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고 그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유지되거나 조금은 호전되도록 도울 수는 있다. 더불어 비행기에 타고 계신 승객분 중 의사 혹은 간호사가 없는지 즉각적인 기내방송을 하는 것도 환자가 발생했을 떄 승무원이 꼭 해야하는 일 중에 하나이다.


해외여행객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최근 항공업계는 아주 호황을 누리고 있다. 승객수가 많아진 만큼

기내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빈도도 많이 늘어난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새로 라인에 올라오는 신입승무원들 중에는 간호사 출신이 종종 보이는 것 같다. 환자승객이 없는 무난한 비행이라 하더라도 의료인 출신의 동료와 함께 비행을 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비록 신입승무원이라 하더라도.


이번에 만난 승객분도 사전에 비행동의서를 받을 만큼 심한 질환이 있는 승객이었지만 아드님이 의사이기에 마음을 조금은 놓을 수 있었다. 밤샘 비행이라 그 승객분에 대하여 모든 승무원들과 공유를 하고 주무시는 동안에도 돌아가며 주의깊게 승객분의 상태를 살폈고 필요하신 것은 없는지 수시로 챙겨드렸다.


대부분의 승객이 주무시는 조용한 새벽에 승무원은 모든 승객분들을 살피며 밤을 지샌다.

그저 비행기가 뜬 이후에 밀 서비스를 하고 비행기가 착륙하면 끝이 나는 업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비행 시간 내내 주무시는 승객분들의 안부를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임무기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머 낮밤이 바뀌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특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여행의 피로감으로 인해 예민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으신 승객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더욱 민감하게 승객분들을 살펴드려야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피로로 빨갛게 된 눈을 바짝뜨고 객실에 나가 환자승객을 보며 생각했다.



"의사의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니... 의사로서 부모님의 건강을 조금 더 보살펴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면서 참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본인이 환자를 돌보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병을 완치 시켜드릴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속상하실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객실을 한바퀴 돌고 점프싯에 앉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의사 승객분에게 느꼈던 것과 같이 승무원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은 할인율 높은 가족티켓을 가지고 자주 해외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나 부터도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많이 하지 못한 것 같다. 장거리 비행을 다녀온오프날은 쉬느라 정신 없고 하루 이틀 쉬고나면 또 비행의 연속. 스케줄 근무로 휴가를 내는 것도 녹록치가 않다. 어쩌면 당연히 승무원 부모님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못 누리게 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의사의 부모님이 지병이 있으신 것에 내가 의문을 가진 것처럼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는 승무원의 부모님 또한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참 아이러니 할 것 같았다.   



해가 어스름히 떠오르는 새벽녘, 창가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승객분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깊어지는 생각도 끝이났다. 하지만 직업에 대한 아이러니, 그 여운은 내 머릿속에 꽤나 오래 남아있었다. 특정 직업에 대한 기대감이 아이러니 함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 

더 늦기전에, 아까운 이 시간들이 모두 지나가고 사라져 버리기전에 부모님과의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한 승객으로 부터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비행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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