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ul J Apr 07. 2016

비행 에피소드 #2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10시간 정도 되는 바행에서는 보통 두 번의 밀서비스가 제공되는 데 첫번째는 이륙 후, 두번째는 랜딩 하기 세시간 정도 전이다.    그 사이의 시간이 짧지는 않아서 중간시간에 간식거리들을 찾으시는 승객분들이 많다.


바에 간식들을 준비해 놓긴 하는데 이코노미에서는 보통 스낵, 음료수 종류라 허기를 달랠 수는 있지만 포만감을 느끼실 만한 종류는 없는 것 같다.



랜딩 5시간 전.



뒷갤리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 이코노미의 캄캄한 객실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왠 중년 여성분께서 팔을 잡아 나를 세우시고는 혹시 첫번째 밀의 음식이 아직 남아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리고 옆 좌석에서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쌍둥이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두운 객실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자니 가져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데운 지 4시간이 경과한 밀은 안타깝게도 제공할 수 없다. 한번 가열한 밀은 따로 냉장보관을 할 수 없기에그 사이에 음식이 상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춡출하시죠? 첫번째 밀은 시간이 너무 지나서 드릴 수가 없는데 혹시 다른 간식거리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승객 분에게 돌아온 말은 아이들과 유럽 일주를 한달 정도 했는 데 그동안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지 아이들이 식사를 제대로 못했는데 기내식을 잘 먹길래 혹시 더 있나 여쭤 봤다고 하셨다.  



문득 유럽에 4일간 스테이 했던 때가 떠올랐다. 매일 스테이크, 파스타, 피자를 먹으니 맛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마지막 날은 매콤한 게 너무 먹고 싶어서 팀원들과 호텔 근처마트를 찾아가서 컵라면을 사먹고는 아 이제 살겠다 했던 그 때.



오늘 같은 팀 크루가 나 먹으라고 챙겨 준 컵라면이 있는 데 그거 주면 되겠구나.!



혹시 컵라면 괜찮으시면 그거라도 우선 드릴까요 저한테 마침 두개가 있는데 하고 말하니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반가워 했다. 나는 대장이라도 된 마냥 아이들을 데리고 앞 갤리로 돌아와 내 자리에 앉혔다.



많이 배고팠겠다. 잠깐만 여기 앉아서 기다려 금방 익혀서 줄께. 누나도 저번에 유럽가서 컵라면 먹었었다? 역시 매콤한 게 최고야 그렇지?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유럽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다 보니 컵라면은 금새 익었다. 제일 작은 쟁반과 포크를 하나씩 나눠 주고 그 위에 컵라면을 올려 주니 너무너무 맛있게 먹었다. 서로 말한마디 없이. .



뜨거우니까 호호 불어서 천천히 먹으렴!


그동안 안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렇게도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뭐 대단한 음식 해준 것도 아니고 물만 부어서 익혀 준건데 맛있게 먹으니 어찌나 뿌듯 하던지. 안먹어도 누나는 배부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귀여운 녀석들!


힌참 정신 없이 먹더니 배가 불렀는 지 세상 다 가진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음료수를 따라주니 누나 고맙다고 잘 먹었다며 와락 안아주는 사랑스러운 꼬꼬마 승객들.


텅 빈 컵라면 그릇을 남기고는 좌석에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과자 몇봉지를 어머니랑 같이 먹으라고 쥐어주니 아이들이 환한 얼굴로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등석 포지션 이기에 랜딩 후 아이들에게 잘가라고 인사을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 입맛에는 맞았겠지만 좋은음식을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준 두 형제에게 고맙다. 언젠가 '우리 어렸을 때 비행기에서 컵라면 끓여준 승무원 누나 있었는데' 라며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 되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전한 비행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