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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화 Feb 12. 2020

천재들이 사랑한  한 여인.

이상&전영택&박태원이  사랑한 한 야인, 권순옥.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4개 부문을 석권한 세계적인 명감독  봉준호.  그의  외할아버지가  <소설가 구보씨의 1일>로 유명한 일제 강점기 때 활동한 소설가 박태원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봉 감독은  얼굴조차  못 본 외조부일 것이다.   하지만 외조부에서 외손주로 이어진 스토리텔러의  힘은 그리도   막강한 파워를 발휘하는  같다.


오늘 브런치에서는  소설가 박태원의 생애 끝무렵의 이야기와  동시대 작가 이상과 전영택,  그리고 박태원이 한 여인을 두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세 남자와 그녀의 관계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이상이 권순옥을 처음 만났던 것은 금홍이 며칠 혹은 몇 달 간격으로 가출과 컴백을 반복할 때였다. 다방 ‘제비’의 파산 이후, 친부모의 집을 다시 저당 잡혀서 인사동에 ‘쓰루(つる: 학)’란 다방을 개업했다. 금홍 대신 다방을 운영해줄 여급이 필요했던 이상은 당시 다방 ‘에인절’에서 자신과 말이 잘 통해 눈여겨보았던 괜찮은 여성을 한 명 스카우트했다. 그녀는 처녀가 아니었지만, 고리키 전집을 한 권도 빼지 않고 읽은 매우 지적인 여성이었다.   

 이상에게 금홍이 미(美)와 성(性)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면 권순옥은 지(知)적인 존재였다. 이상은 관능적인 것에만 치우쳐 있는 금홍에게 부족한 것을 권순옥에게서 발견했다. 바로 그가 늘 꿈꿔왔던 로망, 저런 여자라면 혹시 내 날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상에게 금홍의 사랑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놀림에 눌려 제 날개를 꺾어버린 채 골방에서 틀어박혀 잠이나 쿨쿨 자야 하는 박제 같은 사랑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들과 공유해야 하는, 때로는 이유 없이 억울하게 매도 맞는 그런 피학적 사랑이었다.

하지만 고리키 전집을 독파한 권순옥은 확실히 달랐다. 그녀와 함께라면 제 어깨에 날개가 돋아나 세상을 훨훨 날 것만 같았다.

 권순옥은 이상에게 ‘D. H. 로렌스의 모조품’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즉, 이상의 창백한 얼굴과 고수머리가 우선 그러했고, 즉흥적이고 무계획한 생활태도와 천재적인 작품세계가 D. H. 로렌스와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권순옥은 이상한테 농담처럼 ‘로렌스의 모조품’이라고 불렀던 것이었는데 이상은 진심으로 감격해서 친구인 정인택과 박태원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카페 단골이었던  정인택이 권순옥의 교양을 칭찬하며 추켜세우자, 이상은 제가 공연한 말을 해서 권순옥을 정인택에게 빼앗기게 생겼다며 전전긍긍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 이상이 권순옥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예감할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 말이 씨가 된 셈이었다. 권순옥은 처음에 정인택보다는 이상한테 호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상이 금홍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신과 금홍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갈팡질팡하자 그에 대한 실망이 커져만 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권순옥을 사랑할수록 이상은 금홍이 어쩌다가 집에 있는 날이면 더욱 열정으로 격렬하게 금홍을 끌어안고 사랑하게 된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바깥에서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이 귀가해서 아내를 대하는 이중심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대목이다.


  이때 권순옥을 넘보던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소설가 정인택이다. 그는 당시 여자들 중 보기 드물게 지적인 이미지의 권순옥한테 첫눈에 반해 무한 애정공세를 펼쳤다. 그녀를 이상의 다방 ‘쓰루’에서 처음 만난 이후, 정인택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그녀뿐이어서, 신문사에서 퇴근하기가 바쁘게 그녀의 일터인 쓰루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나중에는 월급을 쓰루에서 다 써버려 하숙비조차 밀려가며 권순옥에게 공을 들였다.


 카페 여급 출신이었으나, 권순옥은 금홍처럼 성적인 매력은 없었다. 대신 수수하고 정갈한, 이를테면 ‘백자’와 같은 여인이었다. 새침하면서도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 한들 말이 잘 통하는 까닭에 당시 문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했다. 아마 그래 서였나보다. 이상과 정인택, 후에 박태원까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게.


 당시만 해도 박태원은 권순옥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때만 하더라도 권순옥을 사이에 두고 이 세 모더니즘 작가의 관계가 어떻게 얽히고설킬지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으리라.


주변에서는 이상과 권순옥이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를 넘어서 서로 연모하는 관계라는 것을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런데 정인택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친구의 애인을 사랑한 정인택은 이상과 본의 아니게 연적 관계가 되었고, 겉으로는 서로 흔연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상당히 껄끄러웠을 것이다. 사실 이상이 권순옥을 사귄다고, ‘저 여자는 내 여자’라고 공개적으로 알릴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금홍이 때문이었다. 몇 달 간격, 혹은 며칠 간격으로 집을 들락거리기를 반복하는 금홍이 때문에 이상은 새 사랑을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워 정인택처럼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대시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소유하고 싶지만 소유할 수 없는 것 앞에서 갈등하듯이 이상은 권순옥한테, 너만 바라보는 정인택한테로 가라며 자꾸 그녀의 등을 떠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던 정인택이 어느 날밤, 괴로운 심경에 덜컥 자살기도를 했던 것이다. 술과 함께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목숨이 경각에 붙어있는 걸 이상이 발견해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가까스로 살려냈다.  이와 관련한 것은  이상의 소설  <환시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문득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떠오르지 않는가! 1930년대 경성에도 친구의 여자를 사랑한, 사랑에 목숨을 건 사내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비극적 짝사랑을 고해하듯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남겼고, 이상은 「환시기」를 남긴 것이었다.


정인택의 자살기도 이후 권순옥의 마음도 달라졌다. 그녀는 금홍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보다 저한테 목숨을 건 정인택을 운명의 남자로 받아들였다. 이상은 금홍이라는 요부한테 단물을 쪽 빨린 채 부러진 날개를 가진 탓에 날아오를 수도 없었지만, 정인택은 달랐다. 권순옥은 당시 엘리트 여성들이 가졌던 로망, 즉 프롤레타리아에 휴머니즘을 접목해 세상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모더니즘에 갇혀있는 이상이 아니라, 바로 정인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멋지게 날아오를 수 있는 건강한 날개를 가졌다고 믿었다.


결국 권순옥은 정인택을 선택했다. 겉으로는 두 사람을 열렬히 축복해주던 이상, 속마음은 진심이었을까? 아니었다. 이상은 술기운을 빌려 매우 괴로워하는 뒤끝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공복에 술을 마시고 취해 정인택이 입원해 있는 병원 계단을 오르다 말고 비틀거리며 쓰러져 다음과 같이 횡설수설 취중진담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정군이 누워서 으흠, 으흠, 하고 숨이 넘어갈 때 나는 정말 아찔했어. 인제 아까운 친구 하나 잃었구나 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더군. 나한테 그 아이에 대한 연정을 이야기했더라면, 내가 순순히 양보했을 텐데, 그깟 게 무어라구 술김에 약을 먹을 게 무어야. 딱한 친구야 정군은… 그렇지만 이왕 약을 먹었으니 꺼지는 게 좋아. 살아난대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인물이거든. 정군은 차라리 꺼지는 게 좋단 말야. 꺼져야 할 인물이란 말야….”

 함께 가던 일행은 그의 말을 행여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서 이상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은 시니컬하게 그 손을 뿌리치고, 껄껄 웃으며 같은 말을 자꾸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1935년 8월 25일, 마침내 돈암동 흥천사에서 정인택과 권순옥은 결혼식을 올렸다.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손꼽히는 김동인과 박종화, 조용만, 정지용, 양백화, 박태원, 김소운, 구본웅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모두 결혼식에 참석해 두 사람을 축복했다. 정인택의 장난 섞인 부탁으로 그 결혼식에서 이상은 사회를 봤다.


  이상이 세상을 떠난 후, 정인택은 회고담에서 다음과 같이 이상에 대한 고마움과 각별한 인연을 표현했다.

  <이상이 그 야윈 어깨에 명재경각의 저를 짊어지고 밤 깊은 종로거리를 헤매던 일,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그때 이상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고, 내 아내도 없고……>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더욱 기막힌 인연은 권순옥과 구보 박태원과의 인연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박태원은 권순옥과 부부의 연으로 맺어질 인연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의 아내와 남편의 친구 사이로 잘 아는 관계에 머물 인연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몹쓸 장난질을 했다.


 평소 프롤레타리아 성향을 갖고 있었던 권순옥은 6.25 전쟁 직후 남편 정인택과 함께 두 딸을 데리고 월북했다. 그런데 월북 직후 정인택은 안타깝게 병사를 하고 말았다. 그 후 권순옥은 홀로 두 딸을 키우다가 극적으로 박태원을 만났다. 박태원은 가족들을 모두 남한에 둔 채로 납북되어 북한으로 끌려간 상황이었다. 객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 내지는 동병상련이었는지는 모르나, 어쨌든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극적으로 만나 재혼을 했다.


정인택의 둘째 딸 정태은은 계부 박태원을 자상하고 좋은 아버지로 기억했다. 작가 박태원의 북한 내 활동을 기록한, 북한의 문학계간지 『통일문학』에서 그녀는 박태원에 대해 자세히 기술했다. 이 글에서 정태은은 월북 직후, 친부 정인택이 갑작스레 병사하자 친모 권순옥과 박태원은 재혼하게 되었고, 계부 박태원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박태원은 말년에 뇌출혈로 인한 전신마비와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창작의 열정을 끝내 놓지 않았다고 한다. 권순옥은 병환 중인 그를 극진히 간병했고, 그래서 탄생된 작품이 「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1, 2부와 「갑오농민전쟁」 1~3부다. 이 모든 집필 작업을 권순옥과 함께 했다. 권순옥은 눈이 보이지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남편을 대신해 그의 구술을 채록해 원고를 작성하고, 1986년 박태원이 「갑오농민전쟁」을 미완의 상태로 사망하자, 작품의 결말을 직접 창작까지 해 완성시켰다고 한다.


비록 문인은 아니었지만 권순옥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주역이었던 세 남자, 즉 이상, 정인택, 박태원과 아주 특별하고도 기묘한 인연으로 얽혀 기꺼이 그들에게 뮤즈가 되어준 여인이었다.    <글 :  홍지화/  소설가>


#박태원  #소설가구보씨의1일 #이상  #전영택



더  궁금하신 내용은 홍지화의 인문에세이 <한국문단의  스캔들>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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