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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J Jun 05. 2024

두 번째

반려동물? or 반려인?

올해로 결혼한 지 5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 부부는 반려 동물을 키우고 있다.


한 마리는 결혼 전부터, 와이프가 겨울계절에 키우게 된 “설”이라는 하얀 숏헤어 종의 아이이고,


장난기 넘치는 이 아이는 결혼하던 해 3월부터 모시게 된 “봄”이라는 샤미즈 종의 아이이다.


두 마리는 소위 말하는 “개 냥이”이다.

특히 첫째에 해당하는 설이는, 요구 사항이 있으면 매번 목소리("야옹, 애옹" 등)로 표현하기도 하고, 우당탕탕 뛰어다니거나 가벼운 물건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요구사항이 없는 평온한 상태에선 맹세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가끔은 이른 아침밥이 부족할 때 자고 있는 우리 몸으로 뛰어들어, 흔히 말하는

"명존세"를 날리기도 한다.


나는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고양이라는 동물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어릴 적 키웠던 동물이라곤 개, 병아리(2), 햄스터(2)가 전부였고 당시에는 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 크게 기억이 안 나는 걸 봐선 교감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저 아이들의 말로도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고양이란 동물은 오묘했다. 스스로 샤워를 하고, 어릴 때부터 소대변을 가리며, 깔끔하며 점프력이 좋으며 시끄러우며 제멋대로이며 다루기 힘든 여자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길들이고 싶고 맞춰가고 싶다는 이상한 매력이 드는 동물이었던 것 같다. 특히 캣초딩이라 불리는 어린 고양이 시절은 정말.. 돌이키고 싶지 않다.

우리 부부의 삶의 형태가 그래왔는지, 성격을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캣초딩 시절을 지나서는 이 고양이들은 꽤나 얌전해졌고, 본인이 원하는 바를 말로써 취하기도 하고, 그걸 갖기 위해 애교를 통해 쟁취해내기도 하는 등 영리하고 똘똘한 냥이들로 바뀌었다. 마치 손, 빵야를 할 줄 아는 강아지처럼 개냥이로 키워낼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원래 딩크족을 희망하는 부부였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모시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런 탓에 더욱 우리를 닮은 주니어에 대한 마음을 잠시 접어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한편, 최근에는 또 다른 생각이 최근에 스멀스멀 피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반드시 ”우리는 애 없이 사는 부부인 거야! “의 마음가짐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살기 시작한 것에 적응이 되어 갈 때쯤 오히려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부부에겐 꽤나 신기한 변화였다.

우리 부부를 매우 의지하는 동물을 키우며 이 정도면 아기도 한번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아주 작디작고

겁 없는 생각이었을 수 있겠지만) 들면서부터 생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마침 이 무렵, 운 좋게 성장해 나아가던 우리는 온전히 우리의 경제사정과 열정과 힘으로

의식주가 진행될 터전도 마련하고 소위 말해서 삶이 좀 "퍽퍽"하진 않아 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한편으론,

멋모르고 결혼한 어릴 때 우리 부부를 닮은 예쁜 손님이 찾아와 주었다면, 쓸데없는 생각 없이 또 잘 키워냈을

지도 모른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지나고 나면 또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요즘 것들의 심리상태와 맞물려

나도, 너도, 세상도 모두 힘드니 우리의 손님이 행복하게 살아갈 환경조성을 해놓지 못한다면 좀 미루는 게

맞아!라고 누구에게 위안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우리 부부만의 합리화를 서로의 눈을 보며 정의하고,

이를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도 전달하며 '우리말이 맞다고 인정해 줘!' 라며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결혼생활을 했던 양가 부모님은 이렇게들 말하셨다.

"그럼에도 키워볼 만한 게 너네들이다" 라든가, "지금 보니 하나도 힘든 게 아니었어" 라던가(하지만 이건 종종 저 놈시키 중학교 때 뭐뭐 해서 진짜 내 아들 아니었음 좋았겠다느니, 어릴 때 하도 잠을 안 자서 우울증 걸려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던 걸로 봐서 분명 거짓이었던 걸로)

부모님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기특해하는 만큼 우릴 닮은 손녀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한편, 요즘 것들의 생태계에 대해 늘 걱정하며 우리 마음을 깊이 공감해 주시기도 했다. 우리가 취업할 때 힘들어했던 것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살펴보며 같이 아파해주었던 기억에 이런 우리 마음을 깊이 공감해 주었던 것 같다.

공부-대학-직장-결혼-자녀-노후라는 의무교육을 수행하듯이 한국사회를 만들어 버린 본인세대들의 잘못도 있다며 미안해하기도 하며 딩크족으로 사는 우리의 삶을 인정하시면서.. 문득문득 너희 닮은 애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을 하기도 하며 본인들도 본인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시는 거 같았다.


부모님 말들을 잘 이행하며 자란 착한 아들딸은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우리 뜻도 맞고, 어른들 뜻도 맞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살았기에, 지금에서야 마음의 변화가 생긴 것에 어느 정도 다행이다 싶은 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유튜브에서 본 어떤 강연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의 김미경 강사 강연에 따르면, 인간은 무언가를 계속 키우고 키움 받아야 한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을 키워내고, 키워낸 자식은 이성을 만나며, 품을 떠난 서로가 서로를 키워내고 키움 받고, 또 거기서 생겨난 자식을 키워냄으로써 모든 세대가 이어진다고 했다.


이런 지극히도 동물적인 생태계가 요새는 선택에 따른 생태계로 변모함에 의문이 들었다.

어른들 또는 언론과 정치계에서 떠드는. 애를 키워냄이 애국심에 비례하는 건 절대 아니올시다라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생물이 2세를 낳는 데에 선택의 개념이 개입되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의무교육이자 숙제처럼 할 일이라기보다, 숨 쉬는 것과 같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 "선택"에 의해 고민하게 되어야 하고, 차선책이 되기도 했다가 한다는 게 솔직한 마음으로 먹먹해졌다.


나아가 행복한 삶이란 뭘까 고민되기도 한다. 내가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하고 싶은걸 아무 걱정 하던 때가 언제였지? 내가 내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내 열정으로 채우고 결과가 어떻든 행복해했던 때가 있었는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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