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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Apr 28. 2017

 내가 사는 공간 - 집

내 집 같이 해 놓고 사는 것이란

돈이 없으면, 힘이 없으면,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해.
난 반드시 우리 집을 되찾을 거야.

마음껏 뛰놀던 정원을 빼앗기고,

산꼭대기 아파트로 이사 온 후 했던 다짐.

방 안 작은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보며

엄마의 한 숨소리를 못 들은 척,

불 끄고, 혼자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철 없이 아버지를 원망하던 초등학교 6학년 꼬마인 나.


100평짜리 마당이 딸린 집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나.

태어나면서부터 있던 것들은, 그냥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냥 좋아하던 마당을 빼앗긴 것이 서글퍼서,

벌게진 눈동자로 강인하게 삶을 버티는 엄마를 보는 게 괴로워서,

누군가를 원망이라도 해야 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하던 아빠를 미워했다.

모든 게 아빠 탓이라고 하면 이 상황이 설명이 되는 것 같아서였다.


이제 서른보다 마흔에 더 가깝고,

직장 일하며 가정을 꾸리며 돈 벌며 남들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부모의 하얗게 센 머리칼에도 건강하신 것을 위로 삼고,

자매들끼리라도 돈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아가면서,

내가 했던 그 다짐이 얼마나 유치하고, 현실감 떨어지며, 부끄러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밀라노에 살고 있다.

그 집을 되찾아 엄마에게 안겨드릴 만큼 부자도 못 되었다.  

구글 맵을 통해 본 그 집은 리모델링으로 아파트형 빌라가 들어서, 옛 모습은 1도 남아있지 않았다.

매년 실하고 달달한 대추가 주렁주렁 열리던 그 나무도 사라졌다.

마루와 자동차 안의 향기를 담당하던 모과나무도 없고, 덩달아 목 안 가득 향긋함을 주던 모과차도 사라졌다.

개 집 옆 더덕을 캐던 흑갈색의 흙을 파헤쳐 고추장 더덕구이를 해 먹고프다.

여름날 돗자리 깔고 돌판에 구워 먹던 곱창의 지글거리는 소리가 침 고이게 한다.

내 머릿속 그 추억에 스스로를 묶어놓고 살았다.

그 집은 그렇게 누군가의 돈에 밀려 사라졌고, 또다시 누군가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었을 텐데,

정작 나는 예전의 집에 나를 가두고 현실의 집은 신경 쓰며 살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맘인 나는,

글이 약간 단조의 느낌이 나지만, 난 시종일관 allegra 한, 즐거운 사람이다.

스트레스 잘 반사시키고,

이 세상 사람을  재미있는 사람, 재미없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정도로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복잡보단 단순 심플을 지향하는 그런 삶을 사는 인간이다.


집에 대해 다시 깊은 생각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내 몸속에서 태어난,

우리 집에서 가장 작지만 제일 존재감이 뚜렷한 딸아이를 위함이었다.

이 아이가 기기 전엔 꼭 마루 바닥이 깔린 집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밀라노의 대부분 집은 타일 바닥 아니면 대리석 바닥이다.

내 부모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유년을 심어줄 좋은 공간을 내 아이게도 주고 싶었다.

마루를 깔기엔 월세집은 적당하지 않았고, 그래서 집을 사버렸다.

 

집을 구매하자 생각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물리적으로 우리 집엔 마루가 깔렸다.

나는 기기 시작한 아이를 위해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바닥을 닦아야 했다.

내 아이가 깨끗한 바닥에서 논다고 생각하니 청소도 수고롭지 않았다.

남편 왈 내가 가진 취향이 집 안 분위기를 해치는 것이라 하니, 집 안은 남편의 스타일로 채워져 갔지만,

모던하고 깔끔하니 불만은 없다.

그렇게 나는 시간과 공을 들여가며 내 아이에게 집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집 구매라는 비싼 돈을 들여 우리만의 특별한 공간을 다시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특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우리 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속 뜻에는 "내가 사는 공간"임을 내포한다.

누구와 공간을 나누던지 혼자 사용하던지, 집은 내 마음과 정성이 들인 만큼 그 의미도 모습도 달라진다.

지금 생각하면 하루를 살더라도 내 집 같이 해 놓고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월세인 집에 비싼 마루를 까는 것은 오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주변을 정갈하게 잘 정리하고, (주의할 점은 절대 그 공간을 정비하는 일이 나를 압도하면 안 된다. 그건 우상숭배(?)같이 위험한 일이다. 보통 나처럼 자기 집을 구매한 후 많이 나타나는 증상인데,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그 필요에 따라 개조하는 것은 확실히 삶의 질을 높인다.


나는 이제 어릴 적 내가 욕망했던 그 집을 추억만 쏙 빼고 내 마음에서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이제 집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을 정도로 많이 돌아왔고 정신적으로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물리적인 집이라는 공간이

그날 저녁의 음식 냄새,

내 아이의 동동거리는 발소리,

가족의 평안한 숨소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느낀 "내 집 같이 해 놓고 사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공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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