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넷. 폴란드, 바르샤바 (1)
이 여행의 시작으로 왜 폴란드를 선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어째서 폴란드에 가보기로 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폴란드는 한 번도 내 관심의 중심에 서본 적이 없던 나라이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가보지 못한,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수많은 나라들은 다 두고 어쩐 일인지 나는 폴란드로 향했다. 그곳에서 내가 어떤 것들을 보고 싶은지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내가 바르샤바에 가겠다고 했을 때, 당시 나와 함께 일하고 있던, 폴란드에서 온 안나는 그 특유의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쑤욱 내밀더니
“Warsawa is boring.”
이라고 말했다. 제 뜻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보~~~~~올링이라고 한참을 길게 끌며 말하는 안나 때문에 나는 잠깐 머쓱해졌다.
“그래? 그럼 바르샤바 말고 어디로 가야 해?”
그러자 안나가 망설임 없이 정답을 말해주었다.
“넌, 크라쿠프(Krakow)에 가야 해.”
내가 계획에도 없던 크라쿠프 땅을 밟은 것은 순전히 그런 안나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해준 대로 '크라쿠프'는 아름다웠지만, 그럼에도 나는 바르샤바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별다른 애착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막연하게, 한 나라를 여행하려면 그래도 그 나라의 수도는 보고 와야 하지 않을까, 라는 내 고리타분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찾아갔던 한 나라의 수도가 별로 매력도 없고, 별로 재미도 없었던 경험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도 고집스레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비와 바람과 추운 날씨 때문에 기억 속에 그저 회색빛의 도시로 남아버린, 바르샤바에 말이다.
사실 폴란드에서 오랫동안 수도 역할을 해온 것은 바르샤바가 아니라 크라쿠프이다. 폴란드 땅에는 10세기경, 폴라니에족을 중심으로 처음 나라가 형성되었는데 크라쿠프는 그보다 더 이전인 8세기경에 세워진 유서 깊은 도시이다. 당연히 폴란드 왕국이 성립되었을 때부터 크라쿠프는 정치, 학문,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038년부터 1569년까지는 폴란드의 수도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1569년 크라쿠프에 대화재가 발생했고, 지그문트 3세는 그런 크라쿠프를 떠나고 싶어 했다.
바르샤바가 본격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건 이때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바르샤바는 한적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폴란드의 새로운 수도가 된 후,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했었다. 만약 그대로 계속해서 번영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의 바르샤바는 크라쿠프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남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르샤바의 운명은 폴란드의 운명만큼이나 다사다난해, 그 아름다움을 무사히 유지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와 연방국을 이루며 동유럽의 최강국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17세기 중후반, '대홍수'라 불리는 스웨덴과의 북방 전쟁 등을 치르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당시 바르샤바 역시 스웨덴에 의해 점령당해 수많은 보물과 예술품을 약탈당했다. 이후, 바르샤바는 재건되었으나 18세기 후반, 러시아와 벌인 헌법수호 전쟁에서 패해 다시 한번 바르샤바에는 빈민이 넘쳐나게 되었다. 1794년, 바르샤바에서 봉기가 발발하여 러시아군을 몰아내긴 하였으니 결국 이 봉기는 진압당하면서 바르샤바 외곽 지역에서만 2만 명이 몰살당하는 등 도시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07년에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바르샤바의 경제는 파탄이 나고 말았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대침공할 때는, 12만 명이나 되는 폴란드 군이 나폴레옹의 군대에 포함되었다. 폴란드 군은 뛰어난 활약을 보였기에 진격할 때는 전위대로서 러시아 군을 공격했고, 후퇴할 때는 후방에서 프랑스 군을 보호했다. 그 결과 폴란드 군은 완전히 궤멸했고 결국 바르샤바 공국의 멸망하고 말았다. 그 이후, 러시아는 바르샤바 공국 대신 폴란드 왕국을 세웠고 러시아 황제가 폴란드 국왕 자리도 겸했다. 1830년 러시아에 대한 봉기가 발발해 1년이나 이어졌고 이후 바르샤바에서는 러시아의 철권통치가 행해졌다.
이후 폴란드는 바르샤바 곳곳에 대규모 공원과 녹지를 조성하고, 여러 거리를 꽃으로 치장하는 등 바르샤바를 아름다운 도시로 가꾸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바르샤바의 좋은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 3 제국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바르샤바의 진정한 수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침공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 또한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군의 폭격기는 바르샤바의 병원, 학교, 식수 공장, 군수품 창고 등을 향해 잔인한 폭격을 가했다. 이 공방전은 한 달 가까이 이어졌는데, 그 기간 내내 독일군은 바르사뱌 전역을 무차별 공격했고 그 결과 바르샤바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결국 28일 만에 바르샤바는 항복했다. 그 후로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는 동안 1943년에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1944년에는 바르샤바 봉기가 발발했다. 그때마다 독일은 잔인한 학살을 일삼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바르샤바의 85%가 파괴되었다. 실제로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이다. 폴란드 전 인구의 16%가 이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으며 폴란드의 물적 자산 중 20%가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바르샤바의 피해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우치(바르샤바, 크라쿠프를 잇는 폴란드 제3의 도시이다.)가 잠시 동안 수도 역할을 대신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바르샤바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재건되었고, 다시 폴란드의 수도 자리를 차지했다. 1981년 바르샤바의 역사지구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어떤 한 도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나 끊임없이 ‘침공’, ‘폭격’, ‘파괴’, ‘몰락’, ‘재건’ 등의 단어를 여러 번 이야기하게 된다는 건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그만큼 바르샤바는 세계의 그 어떤 도시들보다 많은 수난을 겪은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르샤바 시민들의 노력으로 다시 이 도시를 살려내었다고 해도, 여전히 바르샤바에는 삭막함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사실이 폴란드를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을 바르샤바가 아니라 크라쿠프로 향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수난의 흔적을 보고 싶었다. 그토록 힘든 시간을 겪어온 이 도시가 그래서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꼭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바르샤바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행의 절반쯤은 날씨가 결정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나는, 갑작스레 만난 어쩔 수 없이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게다가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그 사이 북쪽으로 좀 올라왔다고 날씨도 한껏 추워져 있었다. 그래도 바르샤바에서의 첫 저녁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간단히 짐을 풀어놓고 우산을 받쳐 들고 밖으로 나가자 요상한 보라색의 빛을 뿜어 내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건물이 떡하니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언제부턴가 바르샤바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어버린 문화과학궁전(Palace of Culture and Science)이었다. 이 건물은 러시아가 폴란드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에 증여 형식으로 지어준 건물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스탈린 형식의 건물인 데다가 러시아의 지배력 아래 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에 바르샤바 시민들은 이 건물을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한다. 때문에 바르샤바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은 이 건물을 볼 수 없는 집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니 내 눈에는 별로 흉측해 보이지 않는 이 건물이 폴란드 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때문에 한때 이 건물을 철거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상징의 의미로 보존을 결정했다고 한다. 현재 이 건물에는 각종 기업들과 공공기관들이 입주하고 있으며, FM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 송수신 장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이 건물은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유럽 연합에서는 8번째로 높은 건물에 해당한다.
혼자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나오니 다행히 빗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우산을 접고 혼자 바르샤바 거리를 얼마쯤 거닐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크라쿠프 여행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고 그래서 폴란드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졌다. 때문에 빨리 이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바르샤바를 둘러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또 한 번의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