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셋. 모스크바 (2)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모스크바의 하늘이었다. 안타깝게도 도시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를 찾아온 미열도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그러니까 전 날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어떻게든 붉은 광장으로 나가보아야 했다. 지난 여행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어떤 장소들은 그저 걸어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붉은 광장도 분명히 그러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저 그 광장에 서보는 것 자체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 터였다.
그래서 제이와 나는 다시 우산을 받쳐 든 채 거리로 나섰다. 구글맵(Google Map)은 고집스럽게 우리에게 지하철을 타고 벨라루스까야역이나 뜨베르스까야역에서 내리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붉은 광장은 아르바트 거리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일단 걸어서 그곳까지 가보기로 했는데, 막상 걷다 보니 오랜만에 후회란 감정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그 거리가 멀지 않다 하더라도 춥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고, 게다가 시간도 넉넉하지 않을 때는 그냥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쪽이 더 현명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걷기 시작한 터라, 마지막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이건 둘 다 걷기 좋아하는 제이와 나의 여행에서 종종 발생하는 사고이다. 예전에 포르투갈에서 신트라(Sintra)의 페나성(Pena Palace)을 다녀올 때도 그러했다. 신트라 역에 내린 후 남들은 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우리는 저 멀리 페나성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곳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결국 페나성까지 도착하는 데는 한 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한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가 그 찾기 어려운 길을 그냥 걸어가기로 했었다는 걸, 그러고도 길을 잃지 않고 결국 페나성에 도착했다는 걸 동시에 놀라워했다.
다행히도 페나성에 비하면, 붉은 광장을 찾아내는 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비 속에서 얼마쯤 헤매긴 했지만, 곧 저만치 눈에 익은 모양의,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보였고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붉은 광장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붉은 광장'은 긴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폭은 130m인데 그 길이는 695m나 된다. 그래서 광장이라기보다도 그냥 넓은 길이 쭉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 곳의 한쪽 면은 크렘린의 성벽으로 이어져있고 그 성벽이 끝나는 곳쯤엔 '성 바실리 대성당'이 서 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서 있는 쪽에 국립 역사박물관(State Historical Museum)이 있고, 크렘린과 마주 보는 쪽에는 국립 백화점인 굼(GUM) 백화점이 있다. 즉, 이곳은 역사적인 네 개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광장이다.
모두가 이곳을 붉은 광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원래 이곳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붉은 광장이 아니라 아름다운 광장이었다. 러시아어로 이 광장을 ‘크라스나야 플로샤디’라고 하는데 ‘끄라스나야’란 붉다는 뜻 외에 아름답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광장의 이름은 붉은 광장 쪽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름다운 광장보다는 붉은 광장 쪽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사실 원래 붉은 것이 아름다운 것 아니던가.
붉은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둘러볼 것이 너무나 많으므로 당연히 하루 정도는 꼬박 투자를 해야 한다. 붉은 광장은 199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이름은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과 붉은 광장’으로 등록되었다. 즉, 이 광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렘린 궁전이다.
크렘린이란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 요새'를 뜻하는 말이다. 즉, 크렘린이란 모스크바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지역에도 존재한다. 다만, 다른 지명 없이 '크렘린'이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모스크바 크렘린'을 가리킨다.
모스크바 크렘린의 역사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유리 돌고루키 대공이 1156년에 쌓아 올린 요새에서 시작한다. 처음엔 나무로 지어졌던 이 요새는 14세기 중엽 석조 건물로 개축되었고, 15세기에는 벽돌로 벽, 탑, 성문 등을 지음으로써 훨씬 더 견고한 성채로 거듭났다. 붉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성채 안에는 각 시대별로 크고 작은 아홉 개의 궁전과 성당, 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소련 시대의 많은 위인들이 크렘린의 벽 묘지에 묻혀 있는데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과 유리 가가린도 이곳에 묻혔다. 블라디미르 레닌( Vladimir Il'ich Lenin)의 묘는 붉은 광장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의 관저 또한 이곳에 있다.
하지만 붉은 광장에 도착한 여행객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것은 크렘린보다도 성 바실리 대성당이다. 사실 크렘린은 그 규모가 워낙 거대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크렘린인지 평지에서 보아서는 잘 구별할 수도 없다. 그에 비해 아홉 개의 둥근 지붕이 색색의 빛깔을 자랑하며 서 있는 성 바실리 대성당은 저 멀리서도 우리들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다.
이 성당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군주라 불리는 이반 4세가 1552년, 카잔 한국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정식 이름은 포크로프스키 성당인데, 1588년에 증축한 부제실에 당시 열렬한 숭배를 받고 있던 성 바실리를 모셨기 때문에 나중에는 성 바실리 대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불리게 되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의 가장 큰 특징은 16세기 유럽의 어느 건축과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모양을 가진 성당이란 점이다. 이 성당은 높이가 약 46미터나 되는 중앙의 첨탑과 그것을 둘러싼 여덟 개의 탑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네 개는 다각탑이고 나머지 네 개는 원형탑인데 그 지붕 모양이 꼭 양파처럼 생겼다. 이 아홉 개의 탑은 무질서하게 세워져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묘한 조화가 느껴진다. 또한 지상에서는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최대 여덟 개의 탑 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모스크바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거나 크게 관심을 두어본 적이 없는 이들, 그래서 크렘린이나 붉은 광장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이들이라도 성 바실리 대성당의 형상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성당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 테트리스가 시작될 때 배경에 등장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붉은 광장에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건물은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1755년, 러시아의 시인이자 과학자였던 미하일 로모노소프가 지은 것으로 원래는 모스크바 대학교의 학과 건물이었다. 이후, 현재의 건물로 재건축되었고 러시아 영토에 살았던 선사 시대 유물부터 로마노프 왕조(1613년부터 1917년까지 304년 동안 러시아 제국을 통치한 왕조)까지 전 역사에 걸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초기에는 국가 소유의 건물이 아닌 개인의 기부금으로 유지되는 형태였지만 10월 혁명 뒤에 국가에 귀속되어 개편되었다고 한다.
붉은 광장에 있는 나머지 하나의 건물은 바로 굼이다. '굼'이란 러시아어로 '종합 백화점'을 의미하는 정식 명칭의 약자이다. 굼은 언뜻 보면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왕궁이나 유럽의 거대한 기차역 정도로 보인다. 그 규모도, 건물의 아름다움도 흔히 내가 알고 있고 또 생각해왔던 백화점과는 너무나 다르다. 하긴 이 백화점은 제정 러시아 시대인 1893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 백화점과 비교하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실제로 굼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세상엔 특히 유럽에는 아름답다고 소문난 광장이 많이 있지만, 붉은 광장만큼 역사적 건물들로 둘러싸인 광장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반나절이란 시간은 당연히 이 건물들을 다 둘러보는 데는 부족했고, 때문에 우리는 크렘린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모스크바를 떠나야 할 시간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붉은 광장을 뒤로하고 돌아서다가 잠깐 굼에 들렀다. 특별히 필요한 건 없었지만, 괜히 그곳에서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매장 한 곳에 들러 아이펜슬을 하나 샀다. 왠지 이쪽이 마트료시카보다도 더 나에게 자주 모스크바를 떠올리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모스크바의 교통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고, 비행기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하신 터였다. 마침 비슷한 시간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택시를 타고 가라고 소개까지 해주신 아주머니는 마냥 무뚝뚝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매번 필요할 때마다 우리에게 마음을 써주셨다.
그 당부에 맞춰 비행기가 떠나기 전, 한참이나 일찍 숙소를 나섰다.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여전히 모스크바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스크바를 만나려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데, 맑은 하늘을 한 번 안 보여주다니 어쩌면 이렇게 야속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짐을 이고 지고도 우산을 받쳐 들었는데, 모스크바 사람들은 그냥 비속을 걷고 있었다. 이 정도 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한 사람들이 별로 없는 나라에서 한 달쯤 떠돌다 보니,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참 많은 미소를 받았는데. 모스크바에서는 누구도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누구도 우리에게 제대로 시선조차 않았다. 그들은 그저,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를 지나쳐갔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상상 속의 모스크바가 지금 내 눈 앞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막연하게 나에게 늘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 정도로 여겨졌던 상상 속의 모스크바, 그래서 그 날씨만큼이나 눈빛도, 표정도 한없이 차가울 것만 같던 그 상상 속의 모스크바 말이다.
다행히 공항까지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때문에 공항에 머물 시간이 길어진 우리는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문득 아프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내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이 도시에선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제이에게 카메라를 넘겨주고 사진 한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모스크바에서 찍은 거의 유일한 내 사진으로 남았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23박 24일간의 여행이었다. 나름 짧지 않은 여행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그저 아쉬움만 가득했다. 신기할 만큼 서울로 돌아온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 같은 것은 없었다. 때문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머지않아 내가 또 여행을 떠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이 어디가 되든, 또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회사에 사표를 내밀고 비행기를 타게 될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