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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da Mar 06. 2017

Lisboa. 리스보아에 눌러앉기

유럽의 열두 수도 이야기 - 둘. 포르투갈, 리스보아 (2)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 그리고 발견 기념비까지 다 보았으니 이제 벨렝 지구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벨렝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세계 최고의 나타(Pastel de nata)를 먹는 일이다. 나타란,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타르트로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과자인데 제레니무스 수도원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1837년에 문을 연 이래, 제레니무스 수도원의 전통 비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나타 가게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그 '파스테이스 데 벨렝(Pasteis de Belem)'이다.


트램에서 내려 걸어오는 길에 이미 가게를 보았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명성에 걸맞게 사람이 너무 많아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한쪽 줄은 주문을 하는 곳이고 다른 쪽 줄은 주문한 과자를 받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하여,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주문을 끝내고 드디어 나타 두 개를 사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타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나타'이다. 겉은 바삭바삭한데 안은 굉장히 부드럽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우니, 내가 좋아하지 않기가 힘든 음식이다.  


그렇게 나타를 먹고 곧 저녁까지 제대로 해결했을 때, 우리는 수중에 남은 현금이 10유로 정도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행을 시작할 때, 경비의 절반은 현금으로 가져오고 나머지 절반은 여행자수표로 바꾸어 두었는데 이제 그 수표를 다시 현금으로 바꿀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벨렝을 다녀온 다음날엔 일단 여행자수표를 바꾼 후 일정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그렇게 할 계획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여행자수표를 들고 은행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 수표를 바꾸려면 E-ticket이 있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다시 호스텔로 돌아가 E-ticket을 출력하려고 해 보았으나 어쩐지 검색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일단 사이트에 오류 신고를 해놓고 답변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깨달았다. 은행에 갈 때까지만 해도 손에 들고 있던 여행자수표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는 걸 말이다. 

 

(+우리가 리스보아 여행을 한 것은 2010년 9월의 일이다. 그러니 현재 이 글을 읽어보면 지난 몇 년 사이 우리의 여행 방식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같으면 여행자 수표 같은 걸 가지고 가지도 않을 것이고, E-ticket을 굳이 출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 당시 우리는 로밍을 해 가지도 않았고, 그 나라의 USIM을 구입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인터넷의 도움 없이 여행을 했다. 두어 시간만 인터넷으로부터 단절되어도 불안함을 느끼는 지금으로서는 이전의 삶이 어떤 식으로 가능했는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입고 있던 옷, 가방, 그리고 온 방을 다 뒤져보아도 여행자수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이는 핸드폰을 붙잡고 30여 분간 국제 통화를 해야 했고(때문에 핸드폰 통화료가 얼마나 나왔다더라?) 결국 무사히 분실 신고를 마치긴 했지만, 어쨌든 당장은 여행자수표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이 날 우리가 쓸 수 있는 돈은 단 10유로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진 우리는, 일단 튼튼한 두 다리가 있으니 리스보아를 걸어서 둘러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름 긍정의 힘을 믿으며 호스텔을 나섰는데, 하필이면 리스보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진 돈은 10유로 밖에 없었고, 다음날에도 돈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도 없는 우리의 눈에, 비 내리는 리스보아는 그저 한없이 우울해 보이기만 했다. 

 





비 내리는 리스보아에서 마주친 멋진 벽화. 저 소년의 손에 쥐어져 있는 남자는 누구인 걸까?


그렇게 하루 종일 도보 여행을 한 우리가 수중에 남아 있던 마지막 10유로로 한 것은 사치스럽게도 각각 한 잔씩 스타벅스 커피를 사 마신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3유로로 빵 하나씩을 사 점심 겸 저녁으로 때운 후, 호스텔로 돌아갔는데 마침 그런 우리를 발견한 주인 할머니께서 


  “너네, 혹시 진자(Ginja) 마셔볼래?”


하고 물어오셨다. 진자란, 체리와 설탕을 아구아르덴트라는 리큐어에 담가 만든 포르투갈의 전통주이다. 맛이 달콤하긴 하지만 그 도수가 무려 20도 정도나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포르투갈까지 왔으니 진자를 한 번 마셔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직접 담그신 진자를 주시겠다니, 우리는 흔쾌히 Yes-! 를 외쳤고 그러자 할머니께서 작은 잔에다 진자를 한 잔씩 따라주셨다. 그리고 그 진자를 홀짝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재잘거리고 있자니, 이번엔 또


  “너네 수프 먹을래?”


하고 물어오셨다. 마치 우리가 하루 내내 먹은 거라곤 커피 한 잔과 빵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계시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고 ‘감사합니다!’하고 할머니가께서 건네주신 수프를 먹었고, 덕분에 가난했던 그 날의 허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다음 날에도 눈을 뜨자마자 다시 한번 은행을 찾아갔다. 하지만 어제 우리에게 E-ticket을 갖고 오라던 그 여자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고, 대신 다른 남자 직원이   


“여기서는 여행자 수표를 취급하지 않아.”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맞은편에 원 익스프레스가 있으니 거기를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젠 대체 왜 그런 이야기를 안 해준 거야!라고 투덜거리며 원 익스프레스로 가보았으나, 그곳에서도 더 이상은 여행자수표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이쯤에서 정말로 피곤해지기 시작한 우리는


“그럼 대체 어디서 이걸 바꿀 수 있는데?!”


라고 물어보았으나, 그건 자기들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그나마 10유로라도 있었지, 오늘은 10센트도 없는데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건가? 우리가 리스보아를 떠나기 전에 여행자수표를 바꿀 수 있긴 한 건가? 그나마 다행인 건 신용카드라도 있으니 돈이 없어서 리스보아에 발이 묶이는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때 곁을 지나가던 남자가 흘끗 우리를 쳐다보고는 툭- 한 마디를 던졌다.  


“호시우 광장에 가봐.”

“응?”

“거기 가면 환전소가 되게 많아. 그중에 아무데서나 가서 바꾸면 돼.”


  ......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왜 여태까지 아무도 안 해줬냐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남자가 시킨 대로 호시우 광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엔 정말로 환전소가 굉장히 많았고 그중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이걸 좀 바꿀 수 있겠느냐 했더니, E-ticket은 무슨, 여권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린 왜 그 전날 돈을 못 바꿨던 걸까? 전날 바로 수표를 바꾸었다면 하루를 그냥 그렇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여행자 수표를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침부터 분실 신고를 하느라 그렇게 애먹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제이의 핸드폰비가 몇 십만 원이 넘게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 앞에서 전날 우리에게 E-ticket을 갖고 오라고 했던 그 여자는 리스보아의 악마(!) 임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린 후, 다시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날 우리가 돌아보기로 한 곳은 알파마(Alfama) 지구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리스보아는 총 여섯 개의 지구로 나눠지는데 이미 우리가 다녀온 '바이샤 지구'와 '벨렝 지구'가 가장 유명하고, 그다음으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알파마 지구일 것이다.  


1755년, 리스보아에서는 강도 8.5~9.0의 끔찍한 대지진이 일어났다. 만성절 날에 일어난 이 지진은 포르투갈 왕국을 덮친 전대미문의 재앙이었다. 이 지진으로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다시피 했고, 리스보아에서 발생한 사망자만 몇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이 지진 이후, 도시는 완전히 재건되었기 때문에 리스보아의 건물들은 대체로 그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때 유일하게 피해를 당하지 않은 곳이 바로 알파마 지구였고 덕분에 이 곳은 여전히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리스보아의 골목골목을 달리는 트램


알파마 지구를 가려면 일단 28번 트램을 한 번쯤 타보는 것이 좋다. 물론 걸어서 알파마 지구까지 못 갈 것도 없지만, 이 28번 트램은 평범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리스보아를 상징하는 명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알파마의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을 달리는 이 28번 트램은 여전히 현대화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더욱더 정이 간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워낙 유명한 트램이기 때문에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는 것이다. 그 점만 빼면, 리스보아의 옛 정취를 느끼는 데 안성맞춤인 매우 재미있는 트램이다.


우리는 이 28번 트램을 타고 가다가 산타루치아 전망대(Miradouro de Santa Luzia)에서 내렸다. 전망대에 서서 그리고 앉아서 바다를 보고 놀다가 산타루치아 교회도 발견했다. 우리는 이 교회를 제대로 보지 않고 돌아서 왔는데, 사실 이 교회를 돌아가면 나오는 조용한 뒤뜰이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니 알파마 지구를 찾았다면 우리처럼 전망대만 보고 돌아오지 말고 교회와 그 뒤뜰까지 함께 보시길.

 

알파마의 골목길에는 오밀조밀 주택들이 어깨를 붙이고 서 있다. 창 밖으로는 종종 빨래가 널려 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다. 한때 내가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빨래를 너는 행위 등, 아파트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을 하지 말자.'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 경고문을 볼 때마다, 우리네 일상이 어째서 우리의 위신을 떨어뜨린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집 밖에 빨래를 넌다는 것은 이 도시에 내리쬐는 햇볕의 축복을 자랑하는 일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알파마 지구를 헤매다가 만난 벽화


알파마 지구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야 올바른 길인지, 어느 곳으로 가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 그런 것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 또한 없다. 그저 발길 내키는 대로 걷다 보면, 아까 내가 걸었던 길이 다시 나오기도 하고 아직은 내가 걷지 않은 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알파마 지구에서 겪은 것도 그런 마법이다. 문득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것 같단 생각이 들었고,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서 일단 최대한 골목 밖으로 빠져나가 보자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걸음 채 옮기지도 않았는데, 딱 한 번 골목을 더 돌자 눈 앞에 시원한 광장이 나타났다. 그 광장이 너무나도 눈에 익어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그 광장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하루에도 서너 번씩 지나치곤 하던 호시우 광장이었다. 역시 길은 길로 통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알파마 지구까지 둘러보았다면 가 볼만한 곳이 한 군데 더 남았다. 그것은 호시우 광장에서 리베르다드 대로(avenida da liberdade)를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에두아르도 7세 공원(Parque Eduardo VII)'이다. 리베르다드 대로는 포르투갈어로 '자유의 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길이가 1.1km에 달한다. 하지만 거리 가득 플라타너스가 우거져 있어서 걸어 다니기에 참 좋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은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리스보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그런데 이 공원은 영국식도 아니고, 포르투갈식도 아닌, 프랑스식 공원이라고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이 공원이 어떤 나라의 식이냐 하는 것보다, 이 공원에 오르면 리스보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에두아르드 7세 공원. 도시의 높은 곳에 조성되어 있어 리스보아를 내려다보기 좋다.

 

비스듬하게 경사로 만들어진 이 공원에서는 우리 오르면 오를수록 더 넓은 리스보아를 바라볼 수 있다. 




포르투갈에 도착한 이후, 하루 동안 신트라(Sintra)를 다녀온 것 말고는 내내 리스보아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여행자들은 잘 다녀오지 않는 북동쪽의 살다냐(Saldanha) 지구까지 둘러보며 우리는 리스보아에서 마음껏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게으름을 부리는 사이, 어느새 리스보아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그래서 예전에 마드리드를 떠나기 전날, '플라멩코'를 보러 갔던 것처럼 리스보아를 떠나기 전에는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Fado)'를  들으러 가기로 했다.


파두(fado)란, '운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음악이다. 16세기 뱃사람들의 노래에서 비롯됐다고 하는데 매우 슬프고 애수 어린 느낌을 준다. 그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곡들이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다. 파두는 파디스타인 여가수가 세 명의 반주자와 함께 공연을 한다. 사실 나는 스페인의 플라멩코를 봤을 때와 같은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그보다는 훨씬 더 조용하고 잔잔한 공연이다.  


그렇게 파두 공연을 보는 것으로 리스보아의 여행을 마무리 한 우리는,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한번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테주 강변가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우는 테주 강 앞에 앉아 있노라니 세상 끝에 나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나와 있었는데, 다들 조용하게 밤의 강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국의 밤. 조용한 바다. 그 앞에 한참 동안 앉아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간 후의 내 삶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제이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그녀에게 묻지는 않았다. 여행이 막바지로 치닫을수록 우리에게는 각자의 생각에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고 리스보아는 바로 그런 시간을 선사해 줬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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