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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May 29. 2021

한글이 두려운 사람이 글 쓰는 기적


엄마는 모든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연락해 몇 시간이고 통화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웃음소리로 공간을 가득 메우며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방으로 감정의 말을 뿜어내는 엄마가 언제부터인지 버겁게 느껴졌었다. 그 말이 주로 자신이 억울하고 화나는 이야기라 그랬을까.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내가 달리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을까. 엄마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찾았고 그게 어쩌다가 내가 된 기분만 뚜렷했다. 그는 종종 마주하고 있는 내가 벽인 것처럼 듣는 이의 상황이나 컨디션을 살피지 않고 사정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 말하고 그는 조금 후련해지는 거 같았는데 난 이유 모를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같이 살 때는 방문을 꼭 닫았다. 불쑥 들어와 감정을 풀어놓는 엄마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방문을 닫으며 내 입도 닫아버렸고 엄마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산 지 5년쯤 지났을 때 곪았던 문제들이 터져 가족 상담을 받았다. 상담센터로 함께 가던 첫 날, 1시간 동안의 심리상담은 엄마의 말로 59분을 채우고 마지막 1분은 ‘엄마는 여기서도 자기 말만 한다’는 나의 외마디 외침과 울음으로 끝났다. 이것도 소용이 없구나 실망했던 날을 지나 상담 회차를 거듭할수록 엄마를 바라보던 왜곡된 시선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특히 상담선생님이 내게 물었던 “지금의 엄마는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질문에 번쩍 번개를 맞은 거 같았다. 큰 파도 같은 감정기복을 말로 쏟아내던 쌩쌩한 젊은 엄마는 이미 지나간 과거였다. 67년생인 엄마는 상담을 받을 당시의 50대에 들어섰었다. 그는 그때처럼 감정의 말을 넘치게 뿜어내지 못했고 다 키운 자식에게 편히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고 닫힌 문을 바라보며 작아진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 대해 차곡차곡 쌓아온 슬픔, 답답함, 억울함, 짜증 등 어찌하지 못한 감정에 파묻혀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엄마도 전에 몰랐던 것을 이해하는 거 같았고 마지막 상담 후 그는 내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 편지엔 미안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돌아보면 그게 엄마에게 받은 첫 편지였는데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가 맞춤법이 어렵다는 말도 무심코 넘겼었다. 그러다 내가 쓴 브런치 글에 댓글이 달리는 걸 부러워하던 엄마는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가 글을 쓰자 그의 말이 왜 이리 많은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맞춤법을 익히려고 집에 있는 책을 아침마다 필사하더니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적었다. 빈 종이에 연필로 글을 쓰고는 나에게 물어 워드를 사용하고 컴퓨터에 저장하기도 했다. 그 후 내 이메일 주소를 묻더니 쓴 글을 보냈다며 읽어달라고 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이직화 원본.docx’이라는 문서가 보였다. 엄만 38페이지 문서 속에 빼곡히도 자신의 삶을 적었다. 맞선으로 만나 몇 개월 만에 결혼하게 된 이야기, 어릴 적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난곡동에서 살았던 시절, 서울에서는 가난했지만 친척 시골집에선 도시 누나라고 불렸던 묘한 경험 등이 적혀있었다. 잠깐씩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글로 보니 어린 엄마가 살았던 시대의 풍경이 그려지고 그 속에서 느꼈을 감정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흥미롭고 서글픈 이야기 사이로 눈에 띈 것은 맞춤법에 어긋난 단어와 문장이었다. 엄마는 맞춤법 검사기를 유레카처럼 발견하고 신이 나서 글을 썼는데 그걸로도 잡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신뢰’로 추정되는 말은 ‘실내’로 적혀있었고, 말소리 그대로 적어 맥락으로 겨우 이해되는 문장도 있었다. 띄어쓰기가 이상한 건 셀 수 없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맞춤법이 어려워서 글 쓰는 걸 두려워했던 마음을.  


엄마의 글을 읽고 무조건 칭찬해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38페이지나 쓴 건 정말 많이 쓴 거라고 나는 그 정도로 길게 못쓴다고 계속하면 글도 늘 거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겪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잘 적어줘서 눈앞에 그려지듯 이야기를 따라갔다고 칭찬해줬다. 엄마는 그 시절이 머릿속에 영상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어 글 쓰는 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쓰고 싶은 게 많아서 새벽에 일어나 글을 적고, 그게 재밌어서 시간이 너무 잘 간다고 했다. 이어서 난 가볍게 맞춤법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엄마. 나도 맞춤법 틀리거든. 맞춤법을 안 틀리는 사람은 없어. 나도 글 쓰면 무조건 검사기 돌려보고 그러는데 그걸로도 못 잡는 게 있더라고. 그러니까 쓰다가 조금 헷갈리거나 잘 모르겠으면 네이버 국어사전도 있으니까. 한번 검색해봐”


“그래? 국어사전은 어떻게 검색하는 건데? 그래도 맞춤법 검사하니까 덜 부담스러워서 글을 쓰게 돼. 이게 엄마 엄청 콤플렉스였거든. 아니 생각해봐라. 고등학교도 나온 사람이 한글을 모르는 게 말이 되니? 내가 이걸 친한 친구한테도 말을 못 해서 단답형으로 문자 보내다가 연이 끊긴 사람도 있잖아. 근데 그 검사기 알아서 훨씬 좋다.” 


엄마는 한글을 쓰는 게 두려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긴 글로 풀어내지 못해 말이 많아진 사람. 정말 두려운 건 숨기는 법이니까. 엄마는 친한 친구에게도 맞춤법을 틀린다는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글을 쓰고, 타인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내주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자식에게 첫 편지를 쓴지 5년 만에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경험으로 달라진 게 많았다. 전보다 책을 자주 읽었고 자신이 좋았던 책을 내게 보내기도 했다. 또 내가 인상 깊게 읽은 글을 보고 싶어 해 부모님 시골집에 내려갈 때마다 책을 한아름 싸들고 간다. 단답만 하던 카톡도 이젠 길어졌다. 메시지를 보내면 전화로 응답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문자만으로도 온전히 대화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처럼 글 쓰는 게 어렵거나 한글을 모르는 사람은 기록을 남길 수 없으니 그들의 삶을 대신 글로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엄마가 보내줬던 글 중에 ‘자기 속도가 느려서 학교 속도를 못 따라가는 아이’라는 문장이 있다. 엄마는 학교가 조금 느린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걸 알았고,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아이였다. 글을 쓰면서 엄마는 자신과 대화를 나눴고, 그의 글 덕분에 나도 ‘이직화’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글 쓰는 게 머리가 아프다며 쉬고 있지만, ‘이직화’라는 사람이 학교의 속도,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속도대로 오래 글을 써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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