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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30. 2023

시리즈의 완벽한 종합

<존 윅 4> 채드 스타헬스키 2023

 시리즈를 잠시 복기해보자. 채드 스타헬스키와 데이빗 레이치는 왕년의 액션 스타 키아누 리브스를 기용해 B급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은퇴한 킬러/경찰/특수요원/군인 등을 잘못 건드렸다 복수당하는 이야기는 수 없이 많다. <존 윅>은 그러한 영화 중 한 편이었다. 최고회의라던가 맹세의 표식 같은 세계관의 개념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콘티넨탈 호텔은 단순히 킬러들의 휴식장소 정도로만 묘사되었고, 킬러 사이에서 통용되는 직업상의 규칙과 화폐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세계관 설정이다. <존 윅>의 성공은 단순히 왕년의 액션 스타가 귀환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건푸 혹은 건발레라 불리는 특유의 총격액션을 만들어냈고, <본> 시리즈 이후 남용되던 셰이키 캠 없이 정직하게 담아냈다. 이야기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개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날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담아냈다. <본>이나 <트랜스포터> 시리즈의 껍데기만 적당히 베낀 액션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존 윅>은 새롭진 않지만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완전히 완결된다. 존 윅은 이름 없는 개와 다시 살아가면 됐었다.

 <존 윅: 리로드>와 <존 윅: 파라벨룸>은 획기적으로 세계관을 넓혔다. 최고회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뉴욕을 벗어나 로마와 카사블랑카 등으로 로케이션이 넓어졌다. 2편의 엔딩에서 호텔의 룰을 어긴 존 윅은 3편이 시작되자마자 최고회의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3편의 존 윅은 자신을 노리는 모든 이들과 맞서 싸운다. 최고회의 산하의 거의 모든 조직이 그를 노리는 상황 속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은 전작과 완전히 차별화된다. 전작이 총기중심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스타일을 선보였다면, 2편과 3편은 넓어진 세계관만큼 다양한 액션의 방식을 도입한다. 탈 것과 무기의 종류도 늘어나고, 우중충한 톤의 1편과 달리 원색의 조명을 적극 사용하여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2편이 할리우드 배우들을 중심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인종, 성별, 직업의 킬러를 보여주었다면, 3편은 마크 다카스코스, 야얀 루히안, 세셉 아리프 라흐만 등 아시아권 액션 스타들을 기용하거나 NBA 선수 보반 마르야노비치를 기용해 이소룡의 <사망유희>를 연상시키게끔 한다. 사실 이러한 연상작용은 <존 윅>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2편과 3편의 초반부에는 버스터 키튼(각각 <셜록 2세>, <제물>의 장면)이 뉴욕의 건물 한편에 등장한다. 존 윅과 그가 상대하는 이들이 수행하는 액션은 슬랩스틱 액션에서 서부극과 찬바라, 쿵푸영화를 지나 야쿠자물, 홍콩 누아르, 아시안 익스트림, 90~0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거쳐 2010년대의 동남아 액션영화나 <악녀> 같은 한국영화에까지 손을 뻗는다. 2, 3편에서 제작으로만 참여한 데이빗 레이치가 다른 한편으로 하드-바디, 슈퍼히어로, 스파이 액션 등을 선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두 감독이 각자의 방식으로 액션영화의 역사를 탐구하고 있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만 3편에서의 무리한 확장은 오히려 단점이 되었다. 나이프나 연필(!) 등 여러 근접무기를 선보이긴 했으나 여전히 총기 위주의 액션을 선보였던 2편과 다르게, 3편은 더욱 다양한 조직을 등장시키며 액션의 종류를 확장했다. 다만 다소 느릿한 키아누 리브스의 몸놀림과 다르게 한없이 날렵한 아시아권 액션 스타들의 액션은 늘어난 근접격투의 분량을 다소 어색하게 만들었다. <레이드> 시리즈의 스타인 야얀 루이한과 이코 우웨이스가 B급 SF영화 <비욘드 스카이라인>에서 CG 외계인을 상대로 어색한 액션을 보여준 것과 유사한 실패다. 장로, 심판관, 패밀리, 티켓 등 세계관이 확장됨에 따라 새롭게 쏟아지는 용어들을 뒤쫓는 것도 3편을 지루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온 존 윅의 모습은 어떨까? 무려 169분이라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가 아닌 액션영화의 러닝타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길이의 <존 윅 4>는 채드 스타헬스키의 욕심 끝에 무너져 내렸을까, 혹은 기적적으로 감독 스스로 설정한 과업을 완수했을까?

 전작에서 윈스턴(이안 맥쉐인)의 총을 맞고 추락한 존 윅은 바워리 킹(로렌스 피시번)의 도움으로 회생한다. 최고회의에게 처분 권한을 위임받은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빌 스카스가드)은 한 때 존 윅의 동료였던 킬러 케인(견자단)을 고용하고, 그는 코지(사나다 히로유키)와 아키라(리나 사와야마)가 운영하던 오사카 콘티넨탈에 몸을 숨기던 존 윅을 찾아온다. 현상금을 노린 추적자(셰미어 앤더슨)도 이 싸움에 가세한다. <존 윅 4>는 지난 두 영화에서 최고회의의 규율에 발이 묶여 있던 존 윅이 최종적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다. 앞선 두 영화가 끝맺음 없는 도주만을 담아냈다면, 이번 영화는 문자 그대로 끝을 향해 달려간다. 때문에 이 영화가 취하는 전략은 액션영화의 역사를 종합하려는 2, 3편의 시도를 답습하는 대신, 지난 세 편의 <존 윅>을 종합하는 시도로 선회한다. 

 이 시도는 4편에 관한 모든 우려를 충분히 잠재울 만큼 성공적이다. 새로운 인물이 대거 등장하지만, 그들은 세계관의 확장을 위함이 아니라 이야기의 종결을 위해 존재한다. 기존의 규율 외에 새롭게 등장하는 ‘결투’는 너무나도 익숙한 서부극의 그것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새로운 종류의 액션을 도입하는 대신 이전에 보여주었던 것들을 개선하고 변주해낸다. 문짝 없는 차, 불알을 물어뜯는 개, 건푸, 연필, 말, 차량을 사이에 둔 총격전, 도끼, 사무라이, 쿵푸, 클럽 총격전, 짧은 동맹, 계단에서 구르는 모습 등등. 이것들은 거대한 예술품 앞에서 벌어지는 대화, 총과 의상에 관한 설명, 현상금을 책정하는 문신 가득한 여성들, 2G폰을 사용하는 킬러, 최고회의의 과장된 소품 등 액션 외의 요소들과 어우러진다. 지난 세 편의 영화를 구성하던 요소들은 반복과 변주를 거치며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최근 사극에 주로 출연해 온 견자단은 <살파랑>이나 <도화선>에서 보여준 현대화된 쿵푸 액션을 선보이고, 적지 않은 영화에서 사무라이를 연기해 온 사나다 히로유키 또한 화려한 모습을 선사한다. 격투가 출신 액션스타 스캇 앳킨슨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출연해, 마치 마블의 킹핀이나 DC의 펭귄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선보인다. 각양각색의 스타일로 연출된 본작의 액션들은 2, 3편이 시도했던 액션 장르의 종합을 더욱 안정적으로 선보인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존 윅의 액션이다. 영화 후반부 40여분 간 펼쳐지는 파리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존 윅이라는 캐릭터가 지난 세 편의 영화를 거치며 보여준 액션의 거의 모든 것이 40분 동안 펼쳐진다. 1편과 3편의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길거리에서의 총격전을 지나, 키튼이나 해롤드 로이드의 슬랩스틱 액션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2편 초반의 카센터 장면이 떠오르는 개선문 장면이 등장하고, 존 윅의 등장을 알린 자택에서의 액션과 2편의 카타콤 장면을 뒤섞어 놓은 듯한 폐건물에서의 액션, 222계단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혈투까지, 관객이 <존 윅> 시리즈에 바라던 모든 것을 40분 동안 퍼붓는다.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기상천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하게 구성된 액션 디자인을 보고 있자면 감탄 밖에 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지나, <존 윅 4>는 서부극적인 피날레를 향해 달려간다. 존 포드 영화의 드넓은 평원을 연상시키는 요르단의 사막에서 벌어진 기마 추격전이 주는 당황스러운 웃음(우리의 존 윅은 리볼버나 장총을 애용하던 카우보이와 다르게 자동권총을 쏜다)으로 시작한 영화는, 무수한 서부극에서 보았던 ‘결투’를 향해 달려간다. 영화사에서 최초의 액션영화로 꼽히는 작품은 에드윈 S. 포터의 1903년작 <대열차강도>다. 아크로바틱한 스턴트나 격투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10~20년대 이후의 일이지만, 액션영화는 서부극에 그 뿌리를 둔다. 채드 스타헬스키가 <존 윅 4>에서 시리즈의 종합이라는 시도 외에 욕심을 낸 부분은, 기어이 사막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존 윅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지점뿐이다. 오랜 시간 복수를 위해 달려온 존 윅에게 필요한 것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온전히 애도할 자유였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그는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왔다. <존 윅 4>는 지극히 서부극적인 마무리로 존 윅의 여정을 일단락한다. 스핀오프 TV 시리즈 <발레리나>가 예정되어 있긴 하지만, 속편이 나온다 해도 이번 영화가 보여준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액션영화’는 광대한 장르임과 동시에 강력한 클리셰들이 영화의 어떤 확장을 막아서는 경향을 보여준다. <존 윅 4>는 작가주의적인 방식으로 액션영화를 변주하거나 다른 장르와 혼합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뒤섞은 장르는 오로지 액션영화의 하위 장르들뿐이다. 액션영화라는 거대한 맥락 안에서 무수한 하위 장르들이 ‘존 윅’이라는 이름 아래 뒤섞인 혼종이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다. 이번 영화는 그러한 정체성의 영화를 한계치에 다다를 정도의 밀도로 가득 채운다. 당분간 이런 액션영화는 보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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