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8. 2023

반짝다큐페스티발 후기

 3일 간의 반짝다큐페스티발(이하 반다페)이 끝났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이하 인다페)이 열리던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 인디스페이스가 들어왔고, 이번 영화제는 그곳에서 열렸다. 작년 다른 영화제에서 보았던 신나리 감독의 <뼈>와 일정 상 보지 못한 섹션6을 제외하고 모든 작품을 보았다. 인다페에서도 이렇게 영화를 많이 몰아 보진 않았다. 아마 반다페를 찾은 많은 관객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인다페가 아닌 영화제에서 독립 다큐멘터리의 위치는 항상 애매했다. 물론 다큐멘터리영화제는 몇 곳이 더 있다. 하지만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주축은 (최소한 영화제를 찾는 관객의 입장에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단편 섹션은 국내와 해외의 구분이 없고, 장편 섹션의 영화들은 전주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 등 다른 국내 영화제의 상영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다페의 상영작도 그렇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인다페 상영 이후 영화제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다큐멘터리의 리스트는 정말 길다. 3년 만에 열린 독립 다큐멘터리의 축제는, 여기서 이 영화들을 보지 못한다면 다른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주었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인다페가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어떤 영화들을 소개하는 창구였는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요즘 몸상태가 허락하는 날 밤하늘에서 시리우스를 찾습니다. 지구에서 보이는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보고 나면 제 마음은 기쁨으로 빛납니다. 시리우스는 실제로 별이 하나가 아니라 두개입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반짝다큐페스티발이 그런 시리우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상영하는 영화를 먼저 보내고 잘 견뎌서 여러분을 뵈러 가겠습니다.”

 개막작 <8부두>와 <붉은 곡>의 신나리 감독이 투병 중에도 영화제에 보내온 메시지다. 인다페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지금, 독립 다큐멘터리는 반짝일 수 있는 기회를 상당부분 잃었다. 인다페에서 봐온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는 실로 다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상영작이 사실상 극영화가 아닌 거의 모든 영화를 포괄하고 있는 만큼, 인다페에서도 그러한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반다페도 마찬가지다. 매번 신작을 들고 인다페를 찾던 단골 감독들의 영화는 없을지언정, 반다페는 각각의 방식으로 빛나고자 마음먹은 영화들이 있었다. 아마추어들의 놀이터와도 같은 전국 각지의 미디어센터에서 만들어진 영화들, 일기와 편지 사이에 놓인 에세이들, 들판과 바다에서 온 이미지들, 노동과 재개발과 투쟁의 현장을 스크린에 안착시킨 영화들, 8살 어린이와 100세 노인의 기록들, 같은 고민에 빠진 동년배들, 잊어선 안 되는 이야기를 가져온 영화들… 

 반다페의 폐막식은 포럼의 형식을 빌려 다섯 준비위원이 영화제를 진행한 소회를 털어 놓는 자리였다. 포럼의 주제는 “반짝다큐페스티발은 내년에도 만날 수 있을까?”였다. 다섯 준비위원은 어딘가 망설이던 생각들이 지난 3일 동안 확신으로 바뀐 것만 같은 목소리로, 반다페가 계속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의 다섯 명이 계속 반다페를 만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지만. 나에게도 3일 간의 짧은 반다페는 이름 그대로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함께한 GV들은 각각의 영화들 만큼이나 반짝이는 상황들을 만들어냈다. 상영작의 감독도, 모더레이터나 프로그램 노트 필자도, 스탭도 아닌 관객으로 참여한 영화제였지만, 2020년 봄 이후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영화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시간이었다. 짧게나마 영화제 업무에 발을 담가 본 입장에서, 상영작을 공모하는 영화제를 꾸리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 준비위원들이 다음 반다페도 열릴 수 있을 것이라 말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를 지난 1~2년 간 체감했다. 반다페가 꼭 내년에도 열려야 하는, 매년 횟수를 채워가는 영화제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공적지원금 없이 독립 다큐멘터리리스트와 관객, 극장의 후원만으로 영화제가 진행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지속가능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공적지원금을 받는 영화제들 마저도 위상과 존속이 흔들리는 와중에 이러한 형식의 영화제를 매년 이어간다는 것은,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철저한 희생을 전제하더라도 어렵다.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반다페는 다시 열릴 것이다. 이번 반다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동시에 다른 고민들도 떠오른다. 반다페를 찾은 수많은 관객이 내년에도 동일하게 영화제를 찾을 수 있을까? 지난 3년 간 부재했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기다리던 관객과 감독이 한번에 몰린 것은 아닐까? 이번 영화제의 규모는 어떠한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창작자들이 모여 만든 영화제라는 점에서 반다페는 인다페와 인디포럼 등의 초기 모습을 연상시킨다. 두 영화제는 모두 중단되었다. 중단된 두 영화제는 의욕 있는 누군가가 계속 새롭게 등장하여 영화제를 이어나가게끔 유도하는 것이 가능함과 동시에 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반다페가 인다페나 인디포럼처럼 정례화된 영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반짝’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반다페가 계속 반짝일 수 있으려면, 적절한 반짝임의 주기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다페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축제인 만큼, 당장 내년은 아닐지라도 반다페는 다시금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상상할 수밖에 없는 그 영화제는 반다페/인다페와는 또 다른 어떤 영화제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기획전이나 정기상영회 같은 형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3일 간의 반짝임을 목격한 사람들이라면, 인다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제를 만든 것처럼 다시금 축제를 열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본기에 충실한 판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