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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21. 2023

기본기에 충실한 판타지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2023

 RPG의 시초인 TRPG [던전 앤 드래곤]은 이미 몇 차례 영상화 된 적이 있다. 2000년과 2005년에 영화화되었었고, 몇 차례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비디오게임으로도 수차례 발매되었다. 다만 [던전 앤 드래곤]의 무수한 미디어믹스 중 원작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없었다. 특히 두 편의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 취급을 받기도 한다. <베케이션>, <게임 나이트> 등의 코미디 영화를 연출하고,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 등 여러 코미디 영화의 각본을 써온 콤비 조나단 골드스타인과 존 프란시스 데일리가 연출을 맡은 이번 영화는, 원작과 상관없는 판타지 영화였던 앞선 두 영화와 다른 노선을 택한다. 다만 그 방식이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여타 영화/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최근 공개되었던 비디오게임 원작 영화/드라마들은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현실의 배경과 접목시키거나(<슈퍼소닉>, <명탐정 피카츄> 등), 스토리가 명확하게 짜여 있는 게임을 고스란히 극으로 옮겨오는 방식(<언차티드>,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을 택했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그러한 방식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원작 [던전 앤 드래곤]은 몇 명의 모험가가 모여 모험을 경험하고 보물을 얻어 온다는 단순한 플롯만을 제공할 뿐, 어떤 역할의 캐릭터가 존재하는지, 어떤 캐릭터성을 부여할 것인지 등은 모두 플레이어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기묘한 이야기>을 비롯한 여러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인물들이 [던전 앤 드래곤](혹은 그것을 변형한 TRPG나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이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번 <던전 앤 드래곤>은 그러한 자유도를 맘껏 활용한다. 영화는 원작의 여러 세계관 중 ‘포가튼 렐름’을 배경으로 삼는다. 더불어 여러 클래스 중 바드, 바바리안, 소서러, 드루이드, 팔라딘, 로그 등을 각각 에드긴(크리스 파인), 홀가(미셸 로드리게스),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도릭(소피아 릴리스), 젠트(레게 장 페이지), 포지(휴 그랜트) 등의 캐릭터가 나눠 갖는다. 판타지적인 세계관에 에드긴과 홀가를 중심으로, 한때 함께 도둑질을 하고 다니던 이들이 위저드 소피나(데이지 헤드)의 계략으로 흩어졌다가, 그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뭉쳐 한탕을 노린다는 익숙한 하이스트 무비의 플롯을 도입한다. 물론 원작부터 여러 특성을 지닌 모험가들이 보물을 얻기 위해 모험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이스트 무비의 플롯이 영화에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반대로, 이번 <던전 앤 드래곤>의 이야기가 모난 곳 없이 매끄럽고 기시감이 들 정도로 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큰 단점이 아니다. 이 영화는 특별한 무언가, 혹은 이 영화만의 개성을 부여하려 애쓰는 대신 익숙함 자체를 무기로 활용한다. 최근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SF 판타지적인 설정을 현실 세계에 도입하면서 우중충한 톤의 이미지를 운용하는 것과 반대로, <던전 앤 드래곤>은 2000년대 초중반 잠시 이어졌던 판타지 영화 전성기 때의 여러 영화들, 이를테면 <해리 포터>의 첫 두 편이나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처럼 밝은 톤의 화면과 어두운 톤의 화면을 적절히 구분한다. 이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최근의 여러 블록버스터들은 짧고 변동이 잦은 제작기간 속에서 제대로 된 조명과 완성도 있는 CGI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 <던전 앤 드래곤>은 그러한 지점에서 기본에 충실하다. 중세풍 판타지 세계의 이미지는 선명하고, 이야기는 뻔하지만 군더더기 없다. 각 캐릭터들이 크게 개성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들 각각에 부여된 클래스에 맞는 모습들을 충분히 선사하며 ‘롤플레잉’의 즐거움을 일정 부분 끌어온다. 코미디 영화를 다루던 이들 답게 코미디 장면의 타율도 나쁘지 않다. 세계관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던전 앤 드래곤] 혹은 판타지 세계관의 클리셰들을 적극 끌어오며 자칫 복잡하게 다가올 수 있는 고유명사의 난립을 어렵지 않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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