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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31. 2020

32.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정재영
제작연도: 2015

 독특하다. 시간여행을 한 것도 아닌데, 두 명의 등장인물이 다시 만나 같은 장소를 거닌다. 영화감독 함춘수는 실수로 하루 일찍 수원에 도착하여 할 일이 없다. 하릴없이 수원 행궁을 거닐다가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는 윤희정을 발견한다. 다행히 함춘수라는 영화감독을 알고 있는 희정은 커피 한 잔 하자는 춘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커피를 마시다 희정의 작업실로, 일식주점으로, 희정의 지인이 하는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공격과 방어와도 같은 대화가 계속되다가, 우연의 일격으로 춘수는 넉다운 당한다. 여기까지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회색 바탕의 노란 글씨가 떠오른 뒤 카메라는 다시 행궁을 비추고 춘수와 희정을 따라간다.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의 크레딧까지 데칼코마니 같은 1부와 2부를 가지고 있다. 허나 홍상수 감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데칼코마니의 속성(양면이 완전히 같다는 사실)이 틀렸음을 알려준다. 양면의 묻은 물감의 차이가, 종이를 접던 손의 압력의 차이가 양면의 미세한 차이를 만든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그 때’와 ‘지금’의 미세한 차이를 상황의 반복으로 보여준다. 1부와 2부가 시간적 전후관계가 있지는 않다.

 2부의 함춘수는 솔직하다. 자신의 결혼 여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털어놓으면서도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다. 1부의 함춘수처럼 번지르르한 말로 희정의 작품을 칭찬하는 대신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아 상대를 짜증나게 만든다. 술에 취해 수영과 영실 앞에서 팬티까지 벗어버리는 함춘수는 가식이 없다. GV이후 숙취에 찌든 짜증만이 가득하던 함춘수는 피곤해도 즐거워 보이는 함춘수로 변화했다. 2부의 함춘수는 1부의 함춘수에 비해 ‘맞아’보인다. 사실 1부와 2부의 함춘수가 크게 다른 게 있을까. 기름진 머리도, 후줄근한 옷차림도, 영화감독이라는 명함도 모두 그대로이다. 달라진 것은 몇 개의 대사뿐이다. 1부의 함춘수가 언제나 틀리고 2부의 함춘수도 언제나 맞지는 않다. 그들 모두 ‘틀린 그 때’와 ‘맞은 그 때’, ‘틀린 지금’과 ‘맞은 지금’이 존재한다. 결국 맞다 틀리다를 결정하는 것은 순간의 말과 행동이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김민희라는 형상으로 인해 홍상수 영화세계에 어떤 분기점을 만들어낸다. 같은 배우를 반복해서 기용하는 그의 영화들에서 캐릭터의 이름은 사라지고 배우의 얼굴만이 남는다. 이 영화는 김민희가 홍상수의 영화에 처음 출연한 첫 작품이며, 그는 2020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신작 <도망간 여자>까지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을 제외하면) 모든 홍상수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다. 물론 그 사이 홍상수의 영화에 처음 얼굴을 비춘 배우가 김민희뿐은 아니다. 하지만 김민희는 이 영화 이전까지의 홍상수 영화에서 떠도는 형상들이었던 유준상, 김상경, 이선균, 김태우가 아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클레어의 카메라>(2017), <풀잎들>(2018)애서 떠돌아 다니는 것은 그간의 지질한 남성들이 아닌 고독한 김민희이다. 그가 처음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어떤 분기점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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