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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9. 2020

31. <인사이드 아웃>

원제: Inside Out
감독: 피트 닥터
출연: 에이미 포엘러, 필리스 스미스, 리차드 카인드, 빌 헤이더, 루이스 블랙, 민디 캘링, 케이틀린 디아스
제작연도: 2015

 <인사이드 아웃>은 현재까지는 픽사 스튜디오의 마지막 걸작이다. 2010년의 <토이 스토리 3>와 2015년의 <인사이드 아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이 디즈니 공주 서사를 변형하며 페미니즘적 요소를 선보이고, <도리를 찾아서>(2016), <인크레더블 2>(2018), <토이 스토리 4>(2019)가 월드와이드 10억 불이 넘는 흥행을 거두며 성공하긴 했으나, 2000년대의 픽사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어딘가 아쉬운 작품들 뿐이었다. 이는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카 2>(2011), <카 3>(2017), <몬스터 대학교>(2013) 등 속편을 연달아 내놓으며 비평적 실패를 겪고, <굿 다이노>(2015)처럼 흥행에 크게 실패한 작품도 있었다. 게다가 <코코>(2017)이나 <토이 스토리 4> 등에서 점점 보수성을 드러내는 한편 비백인 인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장난감을 통한 주체성의 강조 등을 통해 보수성을 은폐하고 있다.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월-E>(2008) 등에 각본으로 참여했고, <몬스터 주식회사>(2003)과 <업>(2009)를 연출해 성공시켰다. 그가 연출한 두 작품은 소위 '픽사 르네상스'로 불리던 시기의 핵심과도 같다.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인 <인사이드 아웃>은 그동안 장난감, 물고기, 벽장 속 괴물, 청소 로봇, 곤충, 자동차, 쥐 등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통해 인간의 정서와 행동을 사유하고자 했던 픽사가 아예 감정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라일리의 머릿속 기쁨, 슬픔, 소심, 버럭, 까칠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가. 어떤 사건들을 거쳐 지금의 '나'가 존재하는가. 사춘기라는 이름의 시기는 개인의 정체성이 자리 잡는 변태 과정이다. <인사이드 아웃>이 탐구하는 것은 바로 그 과정이다. 빙봉이라는 이름의 상상의 친구가 등장하는 것, 그것과 작별하는 과정의 울림은 애벌레가 성체가 되며 허물을 버리고 날아가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과 같다. 라일리의 머릿속 세계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가족에 대한 것은 물론 좋아하는 가수나 소설, 영화 등 취향의 영역에 속한 것, 친구와 연관된 것, 살아온 지역에 관한 것 등이 뒤섞여 있다. 그렇다고 어떤 꿈의 세계처럼 라일리의 머릿속이 그려지진 않는다. 라일리가 본 것들은 기억 구슬에 저장되고, 그중 쓸모없는 기억들은 머릿속 세계의 저 밑으로 내려가며, 종종 떠올리는 기억은 다시금 소환된다. 꿈은 (프로이트의 분석처럼) 그 기억들이 변형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라일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몇 개의 세계관은 머릿속 세계의 거대한 섬들로 표현된다. 영화는 기쁨과 슬픔이 감정을 컨트롤하는 구역을 벗어나 복잡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아낸다.

 그 과정에서 라일리의 머릿속 세계는 한 번 뒤집힌다. 깊은 곳에 저장된 기억 구술들이 깨지기도 하고, 섬들이 동력을 잃고 추락해 부셔지기도 한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사라진 라일리는 무감각한 우울의 세계로 향한다. 그리고 빙봉으로 대표되는 그의 유년기의 기억을 발판삼아 기쁨과 슬픔이 복귀하자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내는 섬들이 세워진다. 한 명의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렇다. 파괴와 생성, 과거의 청산과 유지, 무의지적 기억의 작용, 그리고 그것들의 반복과 변주가 정체성을 형성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모두가 겪었고, 계속 겪을 것이며, 언제라도 겪을 수 있는 그 치열한 과정을 그려낸다. 우리의 정체성은 물결치는 파도가 어느 순간 단단한 돌과 같은 장력을 생성하는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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