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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Jan 27. 2020

29. <자객 섭은낭>

원제: 刺客聶隱娘
감독: 허우 샤오시엔
출연: 서기, 장첸, 츠마부키 사토시
제작연도: 2015

 2016년 1월 9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자객 섭은낭> 개봉 기념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마스터클래스 속 몇몇 문답을 필기한 것.


Q. 촛불 등 영화의 조명과 인물들을 바라보는 카메라가 시종일관 움직이는 모습에서 형식미가 느껴졌으나, 러닝타임 내내 반복되면서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으로 궁 안에서의 촬영, 조명 기본 세팅을 이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다.


A. 당나라 시대에는 촛불과 기름등 만으로 불을 밝혔다. 시대를 재현하기 위한 고증을 위한 선택이었다. 촬영 부분에 있어서는 촬영 감독인 마크 리 감독에게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마 마크 리 감독이 <해상화>이후 레일을 깔고 촬영하는 것에 중독되어 그런 것 같다.(웃음)



Q. 영화에서 시점은 곧 연출자의 태도와 같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카메라의 위치, 피사체로부터의 거리나 움직임의 방식은 하나의 시점을 형성한다. <자객 섭은낭>에서는 그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혼재하고 불명확하다는 인상이 있다. 시점이 주관적인 경우와 객관적인 경우는 영화의 화자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나아가 영화에서 시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A. 내 영화의 대부분의 시점은 전지적 시점이다. 관객들이 인물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자객 섭은낭>의 경우엔, 위의 답변과 마찬가지로 마크 리 촬영감독에게 촬영을 일임했기 때문에 크게 할 말은 없다. 그와 30년 가까지 작업했기에 그가 촬영한 영상이 오케이면 오케이인 것이다. 촬영뿐만 아니라 미술도 미술감독에게 일임한다. 그와도 20년을 작업했기에 서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신 나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각본과 배우에게 집중한다.



Q. 감독님의 전작들을 보면 캐릭터에 관련된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그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캐릭터의 축이 구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자객 섭은낭>에서는 일상적인 장면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장면들이 서사와 관련된 기능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인지 궁금하다.


A. 전작들은 대부분 현대물이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때문에 일상적인 장면들만으로도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자면, 내 영화에는 배우들이 밥을 먹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현장에서 밥 시간에 직접 만든 밥을 소품으로 촬영한다. 배우들이 가장 배고플 시간에 직접 만든 상하지 않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배우들의(심지어 아역들까지)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 낼 수 있고, 밥 먹는 일상적인 장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차이들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객 섭은낭>은 현재가 아닌 당나라 시대가 배경이고,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밥을 먹는지 정확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이번 영화에서는 당나라 사람들이 애용했던 목욕을 일상적인 장면으로 채택하여 넣었다.



Q. 69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첫 무협영화를 연출했다. <자객 섭은낭>이라는 무협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A. 사실 무협영화들을 좋아한다. 특히 중화권의 영화들 보다는 일본의 무협영화들을 좋아한다. 그 동안 중화권 무협영화들은 화려하긴 했지만 리얼리즘이 부족했다. 때문에 이번 <자객 섭은낭>의 무술팀을 꾸리는 데도 애를 많이 먹었다. 소개받은 무술감독이 생각하는 비주얼과, 내가 구상한 비주얼의 차이가 컸다. 또한 더 늦기 전에 무협영화가 찍고 싶었다. 사실 예전부터 무협영화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무협영화라는 장르가 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장르이지 않나. 때문에 오래 걸린 것도 있다. 일단 한 번 찍고 나니, 이제는 <흑사회>같은 조폭 영화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Q. 영화의 비율이 1.33:1, 1.78:1, 1.85:1로 변화한다. 1.33:1의 화면비에선 수직적으로 배치된 자연물과 구조물 등이 프레임에 잘 담겼고, 비좁은 비율로 인해 인물들이 굴레에 붙들려 있는 상황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1.33:1의 화면비가 인물 표현을 위한 것이었다면, 초반 회상 장면에서는 1.78:1을 선택한 이유가 굴레에 영향받지 않는 자유로운 회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한 것인가? 그리고 가성공주가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1.85:1의 화면비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A. 현재는 필름에 시대에서 디지털의 시대로 넘어갔다. <자객 섭은낭>은 필름으로 촬영해 디지털로 변환한 영화이지만 말이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의 화면비는 만화에서 컷마다 가로세로의 비율이 다른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 영화 안에서의 자유로운 화면비 변화는 디지털 시대에 알맞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1.85:1의 화면비는 가성공주가 연주하는 악기가 가로로 길기 때문에 선택했다.



Q. (김동호 위원장) 연출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A. 가급적이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시나리오를 어떻게 찍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라. 사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에 문학적인 글과 솜씨가 담길 필요는 없다. 그보다도 본인이 영화로 찍고 싶은 이야기, 인물, 화면이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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