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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2. 2020

75. <레디 플레이어 원>

원제: Ready Player One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타이 쉐리던, 올리비아 쿡, 벤 멘델슨, 마크 라이런스, T.J. 밀러, 사이먼 페그
제작연도: 2018

 <레디 플레이어 원>은 황홀하다. 140분의 러닝타임 동안 무수한 팝컬쳐 레퍼런스가 쏟아진다. 이것을 일일히 기술하는 것만큼 이 영화를 지루하게 설명하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나는 '메카 고지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아키라 이후쿠베가 작곡한 <고지라>(1954)의 테마곡이 변주되어 흘러 나오는 순간을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쏟아진 수많은 레퍼런스 장면 중 가장 사랑한다. 물론 그 밖의 것들도 놀라웠지만 말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VR기기를 사용한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한다. 오아시스 속에서는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 덕분에 관객인 우리는 [오버워치]의 트레이서와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가 함께 달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고, <매드 맥스 2>(1981)의 V8 인터셉터와 <백 투 더 퓨쳐>(1985)의 드로리안, <배트맨>(1989)의 배트카, <아키라>(1988)의 가네다 바이크가 <쥬라기 공원>(1993)의 T-렉스와 <킹콩>(2006)의 킹콩을 피해 경주하는 장면을 볼 수 있으며,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수많은 게임을 인용하고 영화 자체가 게임의 형식을 차용했음에도 <레디 플레이어 원>이 게임의 형식을 적절하게 가져왔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즐길 거리가 무한대에 가까운 오아시스 안에서 즐기려는 거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지만, 영화가 주된 소재로 끌어오는 이스터에그라는 형식, 그리고 이스터에그가 드러나는 방식 등은 너무 단순하다. 영화를 보면서 종종 '게임을 흥미로워하긴 하지만 게임을 많이 해보지는 않은 사람'이 각본과 연출을 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어니스트 클라인의 원작 소설에서 '이스터에그 찾기'를 극 중 게임의 메인 퀘스트로 만들어버리면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스필버그의 영화는 두번째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한 미션인 '<샤이닝> 속에서 제임스 할리데이의 첫사랑을 구출하기'를 상당히 어설픈 미니게임으로 만들어버린다. 텍스트 기반 게임을 차용한 원작에서 <샤이닝>으로 소재를 변경한 것은 스필버그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아쉬움을 고려하더라도, <레디 플레이어 원>은 여전히 놀라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사실 이 영화보다 블루레이에 수록된 메이킹 영상이 가장 흥미로웠다. 현실 장면을 필름으로, 오아시스 내부의 장면을 디지털로 촬영했다는 사실의 익숙한 흥미로움은 물론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미술팀에서 자작한 가상 세트에 스필버그가 VR기기를 쓰고 들어가 실시간으로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내고, 가상의 카메라를 통해 가상의 세트를 촬영해보는 메이킹 영상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제작과정에서 오아시스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영화 속처럼 '햅틱 슈트'를 입고 모든 촉각적 자극을 느낀다거나 다수의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스필버그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은 영화제작을 빌미로 제작된 오아시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러한 경험을 관객에게도 어느 정도 제공한다. 3D안경을 쓰고 <레디 플레이어 원>을 관람하는 행위는 VR고글을 착용하고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웨이드의 행위와 유사하다.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나마 제공한다는 점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이 주는 감흥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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